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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님의 서재
  • 정물화 속 세계사
  • 태지원
  • 15,300원 (10%850)
  • 2025-03-13
  • : 55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흑사병은 자본주의를, 구텐베르크는 르네상스를, 후추는 잉카 제국의 멸망을, 신교도 탄압은 스위스의 명품 시계를, 청어 배를 가르는 칼은 주식회사와 중앙은행을, 악마의 음료 커피는 시민에게 선거권을 가져왔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두 지점 사이를 그림 한 장을 통해 질문하고 답을 얻는 책이 바로 아트 북스에서 출간한 태지원의 정물화 속 세계사이다. 단순히 눈요기를 위해 그려진 정물화 한 장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아트북스에서 출간한 태지원의 정물화 속 세계사는 한 점의 명화가 건네는 소리 없는 음성을 통하여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을 알려준다. 제목처럼 작품은 모두 정물화이며 그 속의 대상은 단순히 정렬해 놓은 것들을 그린 것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당시의 시대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예술의 장르에서 역사라는 장르로의 변화를 독자는 겪을 수 있다. 총 열다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기는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차례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챕터당 연표가 따로 적혀 있으며 말하고자 하는 작품의 주인공이 지나온 시기에 발생한 역사적 사건을 모두 연표에 작성되었다. 이는 단순히 어떠한 사건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인류 역사의 전체의 맥락에서 3차원으로 그림을 감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하나의 챕터는 그 시대의 흐름을 완벽하게 바꾼 주인공이 담긴 정물화 한 점으로 시작하여 이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지도, 당시 시대의 복장, 기타 배경이 담긴 명화 여러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야기는 정물화의 설명에서 시작해 작가의 생애와 역사적 사건, 그리고 그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각 장의 끝에는 시대를 송두리째 바꾼 계기와 그로 인한 변화가 조명되며 독자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섬세하게 이끈다. 특히 장면 전환이 물 흐르듯 매끄러워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틈 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인의 바보 같은 일화까지 곁들여져 있어 흥미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있다. 그러면 인상 깊었던 부분을 살펴보자.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동한 하르먼 스테인비트의 정물화에는 해골이 등장한다. 동시대 화가들도 해골, 썩은 과일, 시든 꽃 등을 곁들인 그림을 자주 그렸다. 모두 인간의 죽음과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이런 그림들이 유행한 배경에는 흑사병이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이 병은 크림반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몽골군이 시체를 성 안에 던졌다는 세균전 일화도 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어, 나쁜 공기 때문이라고 믿거나 신의 벌로 여겨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유대인을 희생양 삼아 집단 학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흑사병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줄어든 인구 덕에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고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도시로 옮겨 부르주아 계급이 되었다. 흑사병은 경제적 변화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인식을 남겼다. 해골을 그린 바니타스 정물화는 그런 감정을 담은 것이고 오늘날까지 해골은 크롬하츠 같은 브랜드를 통해 허무와 허영의 상징으로 계속 소비되고 있다. 이런 식의 전개로 흑사병은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폴 세잔이 그린 검은 시계가 있는 정물은 에밀 졸라를 위해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그림의 중심엔 시계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시계가 신교도 탄압과 연결될까? 그 시작은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이다. 당시 프랑스는 가톨릭 국가였고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신교도인 위그노가 등장한다. 장 칼뱅은 모든 직업은 신의 부여라고 말했고 그의 가르침을 따른 위그노는 근면하고 절약 정신이 강해 자본주의와도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들을 위협으로 여겨 탄압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앙리 4세가 내린 낭트칙령을 루이 14세가 폐지하면서 찾아왔다. 신앙의 자유를 잃은 위그노들은 프랑스를 떠나 유럽 곳곳으로 흩어졌고 20~30만 명에 이르는 이들 중 상당수가 숙련된 장인이었다. 이 중 일부가 정착한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 제작 기술을 발전시켜 파텍필립, 롤렉스, 차펙 같은 명품 시계를 탄생시켰다. 프랑스는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스위스는 위그노의 정착 덕분에 정밀 기술 산업이 번창했다. 정물 속 시계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역사와 신념의 산물인 셈이다.


후안 그리스의 신문과 커피분쇄기가 있는 풍경은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혁명의 씨앗이 된 커피의 상징이다. 커피의 기원은 7세기 에티오피아 목동 칼디의 일화로부터 시작된다.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먹고 흥분하자 자신도 먹어본 그는 각성 효과를 경험하고, 이를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알린다. 이후 커피는 수도승들 사이에 퍼지고 15~16세기에는 이슬람 전역으로 확산된다. 그들의 커피하우스 카베 카네스는 대화와 게임, 그리고 점차 정치 토론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이 커피하우스는 결국 권력자들에게 위협이 되어 금지되지만 커피는 유럽으로 건너간다. 초반에는 악마의 음료로 외면받았으나 교황의 “이 맛있는 음료를 이교도만 마시게 둘 수 없다"라는 발언 이후 유럽에서도 유행하게 된다. 프랑스의 카페는 계몽사상가들이 모여 정치 토론을 벌이는 장소가 되었고 감시와 금지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기운을 키웠다. 결국 프랑스 대혁명, 나아가 루공가의 치부에 등장하는 2월 혁명까지 이끈 셈이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시민의 선거권을 이끈 주역이었다.



유독 정물화가 네덜란드에서 발달한 이유는 후원의 구조 차이 때문이다. 로마에서는 교황과 귀족의 주문으로 미술이 제작되었지만, 네덜란드는 상인이 직접 그림을 구매하는 시장 중심 구조였다. 이로 인해 종교화보다 대중 취향에 맞춘 현실적인 정물화가 유행했고, 그 안에 시대상과 국민성이 자연스럽게 담겼다. 한 점의 그림을 통하여 유명 화가가 숨겨 놓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물들을 찾아 과거를 읽고 싶다면 아트북스에서 출간한 태지원의 정물화 속 세계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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