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직접 경험하기 전 그림책은 유아용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읽어보니 메말라 버린 감성을 깨우기에는 그림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난 후 매달 한 권씩은 꼭 챙겨서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 일환으로 이번 달은 파올라 퀸타발레의 어떤 날은을 가져왔다. 봄에 어울리는 노란 꽃들이 만발한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개나리가 피는 지금 읽기에 딱 좋은 그림책이다.

파올라 퀸타발레의 어떤 날은 어린아이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일상들을 그림으로 엮은 책이다. 스토리가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줄거리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점점 더 심리적으로 단단해져 가는 방법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말하고 있다. 첫 페이지에는 아이가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시작하며 이후 그것을 지켜본다.

살다가 보면 가끔 어떤 일을 망칠 수도 있고, 친구와 비밀이 생기기도 한다. 점점 자신만의 세계가 생기면서 두려움도 극복하고, 한때 친구였던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이별했던 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점차 자신만의 공간을 넓히면서 많은 경험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글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과히 적거나 가볍지 않다.

상황에 따른 삽화가 두 페이지에 걸쳐 하나가 등장하는데 너무나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어서 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슴 두근거릴 만큼 행복하고 설레는 일도, 실패를 딛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닌 자신이 잘하는 것에 몰두하는 모습들을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 책의 한글 제목은 어떤 날엔이지만, 원제는 공간 만들기(Making Space)이다. 특정한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기보다 점점 외부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마음의 공간을 말하고 있다. 매 페이지마다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주체적이라는 것. 삶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역시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어린이가 읽기에도 좋지만 감성과 자신감이 바닥난 성인이 읽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특히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나이 대를 가지신 분, 자녀를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희생한 후 스스로를 잃어버려 되찾고 싶은데 어디에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들에게 꽤 좋은 처방전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삶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기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늘 적당히 포기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꽤 큰 자극이 되었다.

"하루의 끝에서 반갑게
밤을 맞을 수 있을 거예요"
성공한 인생을 산 누군가의 조언이 아닌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을 똑똑똑 두드리는 매 페이지들은 도전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사르르 녹이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인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아이의 성장이 아닌 인생 전반의 여정을 저절로 연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성인이 이 책을 읽으면 맨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위의 문구가 훨씬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파올라 퀸타발레의 그림책 어떤 날은의 노란색 표지를 벗기면 같은 그림체이지만 고풍스러운 하드커버 표지가 나타난다. 마치 세상에 첫발을 갓 내디디는 어린아이의 샛노란 색부터 고풍스럽고 단아한 어른의 마음까지 다다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의 번역가들이 눈에 익어서 찾아보니 이전에 소개한 할머니의 팡도르를 번역한 분들과 동일인이었다. 그 책을 포근하게 읽으신 분이라면 이 책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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