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앙마님의 서재
  •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 줄리애나 배곳
  • 16,200원 (10%900)
  • 2025-03-14
  • : 1,675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끔은 우주가 지금은 그런 것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듯 어떠한 종류의 책만 줄기차게 던져주는 시기가 있다. 요즘 내가 반드시 접해야 한다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자주 SF 소설이 자주 들어온다. 그야말로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다고나 할까? 오늘 손에 잡은 책도 그 일환인데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긴 제목의 도서이다. 표지나 제목이 에세이처럼 느껴지지만 이 작품은 SF 철학 소설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는 SF 단편 소설집이다. 총 열다섯 개의 이야기가 모여 있으며 그중에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역노화와 포탈이다. 역노화는 읽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포탈은 내용에서 책의 제목을 따와 더욱 신경 써서 읽었는데 마지막 줄을 읽고는 다음 장으로 페이지가 선뜻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럼 두 작품의 줄거리와 읽고 난 후 생각을 나눠보자.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사람이 죽을 때에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그대로 죽든지 아니면 시간을 역순으로 돌리든지. 주인공의 아버지는 후자를 선택한다. 평소에 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아 왕래가 없던 하나뿐인 딸에게 이 소식이 전해진다. 내키지 않지만, 이를 대신해 줄 도우미를 구하는데 엄청난 금액이 필요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 우리가 80년을 살 때는 80년을 살아야 하지만, 역으로 갈 때는 단 며칠 만에 어린 아기로 돌아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주인공은 참기로 한다.



70대의 아버지, 60대의 그, 50대의 모습, 40대로 넘어오던 어느 날 작은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에 둘은 대화를 나눈다. 몸만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도 역순으로 간다는 대화. 즉, 마흔다섯 살에 딸을 낳은 그는 마흔네 살이 되면서 딸의 존재 자체가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 순간 두려웠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멈추거나 되돌릴 방법을 찾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30대를 지나 10대에 이르렀을 때조차도 그에 대한 미움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한 주인공.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시간까지도 자신에게 사과하지 않는 아빠에게 미움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기가 되어 사라지기 직전 무렵 그녀는 모든 것이 상관없다는 듯 그를 용서하겠다고 하며 그의 작음 몸을 안아 준다. 




현실에서는 작품 속 내용과 같은 역노화는 일어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 알츠하이머류의 병을 대입할 수 있다. 어제의 부모님과 나의 관계와 오늘의 관계에 전혀 변화가 없는데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더는 부모님에게 더는 자식이 아닐 수 있는 상황과 동일하다. 상대의 존재가 실존이 아니라 기억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서로가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느껴져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주인공인 나는 여성이고 남자를 좋아하는 척하지만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는 남자이지만 남자를 좋아한다. 서로 큰 비밀을 공유하며 타인에게 이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열심히 도와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다. 이들의 마을에는 포탈이 여기저기에서 꽤 많이 존재하는데 비선형적이다.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열리는 경우가 있고, 눈을 씻고 찾으러 다녀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어떤 이는 호기심에 손을 넣었다가 그 안에 있는 무엇인가에 잡아먹혀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생성만 비선형적인 게 아니라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주인공과 그녀의 친구는 포탈을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드디어 그곳으로 손을 넣어보기로 한다. 막상 손을 넣었더니 그곳에서 만져지는 건 자신들이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온 마을 곳곳에 나타나는 포탈은 우리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우주의 구멍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으로 이것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감정은 슬픔, 두려움, 소망, 수치심 등등 다양하며 이 모든 감정들이 포털을 만들어 낸다. 그렇다. 포털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 손을 넣는 행위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들여다보겠다는 용기이다. 다만, 이때 담대한 마음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포탈에 잡아먹힌 인물처럼 자신의 감정에 빠져 폐인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주인공과 친구는 지금까지 자신들의 성 정체성에 관하여 타인을 속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인물들이다. 이제 이것을 숨기고 가리지 않기 위하여 드디어 한 발을 내디디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그렇다고 포탈 안을 들여다보고 용기를 얻어 바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하여 커밍아웃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며, 후폭풍이 있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이를 막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플루엔셜에서 출간한 줄리애나 배곳의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대성당의 레이먼드 카버가 환생하여 SF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우주나 시간 같은 큰 개념을 다루면서도 사랑, 상실, 기억, 용서 같은 카버적 테마를 우주적 스케일로 펼쳐 보이는 감정극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나 앤드루 포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 역시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우주에구멍을내는것은슬픔만이아니다 #줄리애나배곳 #인플루엔셜 #SF소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