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은 유명하여 다들 한 권 이상은 가지고 있지만 내용이 어려워 읽히지 않는 활자의 무덤의 전형적인 예이다. 보이지 않는 사슬을 깨뜨리기 위하여 이번에 아르떼에서 출간한 원칙 없는 삶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소로가 쓴 수많은 글 중 불온한 자유를 사유하는 그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명성에 걸맞게 한 줄 한 줄이 명언이었으며 꽤 깊은 고찰을 해야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면 제목의 의미와 그 내용을 살펴보자.
아르테에서 출간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원칙 없는 삶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5부까지는 총 28개 챕터는 소로가 마지막 6부는 3개 챕터는 에머슨의 추도사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의 원칙 없는 삶은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닌 본질과 비본질을 나누자는 의미이다. 즉,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쓴 규칙이 아닌 자신의 본질에 대하여 사색한 후 스스로가 만든 그것에 따라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서 살라는 말이다. SNS의 발달로 점점 스스로의 가치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아닐까 한다.
그의 주장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자면 진정으로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문명, 진정한 소통을 하지 않는 사회, 자연과의 연결 등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먼저 진정으로 배우려 하지 않는 부분부터 살펴보자. 그는 단순하게 있었던 사실이나 진리를 배우는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객관적인 사실을 배우고 이해한 후 그것을 현재의 나의 삶에 관계 연결을 시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찬란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렇게 연결되지 않은 역사는 어둠의 시대일 뿐 헛된 일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소통에 관한 부분이다. 호메로스가 붙여 준 '말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자격을 증명한다는 말로. 그냥 아는 사람과 지인의 만남에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똑같이 행동한다면서. 사교가 성찰을 통한 내면 소통이 아닌 오로지 물리적 접촉만을 목적으로 하며 만났을 때에도 스스로를 과장하고 중요한 존재인 척하기에 급급할 뿐이라고 말한다. '말하는 인간'은 말과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이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한다. 이를 굳이 증명하려는 행위를 하는 게 이미 단순하게 모였을 뿐 진정으로 연계되지 않았다고.
그는 고독과 침묵에 관하여 꽤 자주 언급한다. 침묵은 의식이 있는 영혼이 자기 자신과 교감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사실, 고독과 침묵에 관해서는 꽤 많은 철학자들이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오로지 고독과 침묵만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하며 침묵은 소리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이를 위하여 매미에게 바치는 아나크레온의 송가를 인용한다. 모든 선율은 침묵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동맹 관계라고 하면서.
다음으로 돈을 숭배하는 것 또한 신랄하게 비꼰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번다는 소로의 말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돈은 직업과 물질주의를 나타낸다. 소로는 직업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켜야 한다고 한다. 또한 물질주의의 허영심은 너무나 작금의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타인을 상대할 때 혹은 반대의 경우에도 그 사람의 본질보다는 재산을 가지고 가치 판단하는 것에 대한 질타이다.
마지막은 자연과의 연결이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자원의 집합체가 아닌 인간의 도덕적, 영적 성장의 동반자로 바라본다. 자연은 인간에게 진리와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스승이며,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잃어버린 조화로운 삶의 원칙을 상기시킨다. 자연과의 연결은 쉴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도덕성을 고양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실은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닌 자연의 우위에서 그것을 다루려는 삶이기에 그가 시사하는 바가 더 크게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인 인디언 조 폴리스의 마지막 인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그가 공동체에게 필요한 학교를 지키는 과정이다. 이들도 시위라는 방법을 택했지만 매우 평화적으로 진행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조가 그 상대자인 신부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여 지능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즉, 책임감과 지혜가 겸비된 시위로 조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학교도 지켜낸다. 얼마 전 모 여대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도록 진행한 시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조와 함께 소로는 그의 집으로 배를 타고 간다. 꽤 자연 깊숙이 살고 있던 조였는데 그의 집 근처에 오자 소로가 묻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기쁘냐고. 이때 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디에 있든 똑같아요.'라고. 이렇게 장소에 따라 흔들림이 없는 그의 모습은 내면의 안정성과 자족의 자긍심을 잘 드러내었다. 게다가 그의 삶을 살펴보면 스스로가 정한 원칙에 의거하여 잘 살아가고 있었기에 더욱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의 가정 환경에 대하여 묘사하는 부분이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지역에 살지만 그의 집에는 상태가 만족스러운 면도날, 아내의 가슴에 달린 은색 브로치, 대형 지도, 시계 그리고 신문이 있다. 이는 자연 속에서 철저히 자연인으로 살고 있는 그이지만 필요한 문명은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비친다. 다시 말하자면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면서 현대 문명을 자신들의 삶에 공존시키는 자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묘사이기에 점차 과학이 더 급속도로 발전하여 혼란스러운 현대인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는 듯하였다.
소로는 이 에피소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내가 본 조 폴리스의 마지막 모습이다'라고. 이를 단순한 이별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책의 뒤로 가면서 조의 말을 인용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즉, 자신만의 규칙과 자율성을 지키면서 현대 문명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은 지속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했다. 만약 이것이 조와의 만남에 대한 끝 즉 단절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후에 조의 삶을 언급하며 그의 삶에 적용시키지 않았을 테니까.
조 폴리스의 마지막 인사는 겨우 3장 분량의 에피소드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이렇게 스스로 사고하여 쓰인 사건과 단어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힘이 지닌 도서였다. 다만 스스로에게 아쉬웠던 점은 신화에 무지했기에 은유적으로 끌어온 신화의 의미를 다 몰랐던 부분이다. 아르테에서 출간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원칙 없는 삶은 어느 날 각 잡고 후루룩 읽을 도서가 아니라 한 챕터씩 매일 읽고 성찰을 해야 하는 삶의 지침서이다.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적극 추천하며 별 다섯 개가 부족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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