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전영애 작가의 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목과 달리 괴테뿐만 아니라 헤르만 헤세,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실러, 프란츠 카프카, 그림 형제까지 독일 문학의 큰 획을 그은 여러 인물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1장과 2장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독일 문학을 번역하게 된 과정과 그에 따른 삶의 지혜를 전한다. 개인적으로 1장에서 등장한 요한 하인리히 마이어라는 스위스 화가의 이야기는 다른 도서에서 괴테와의 우정에 관하여 다룬 것을 본 것이 생각나 반가웠다.
3장은 아이를 둔 부모라면 반드시 읽었으면 할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는 자녀를 양육하는 지혜가 등장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4장이다. 그녀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번역하는 과정을 그렸는데 거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본 것을 그대로 따라가며 그 현장에서 바로 번역할 수 있음이 축복이었다고. 독자로서 괴테가 그리고 그녀가 걸어간 그곳을 그대로 여행하며 이탈리아 기행을 읽는 느낌이 어떨까 상당히 궁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 소개를 보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그 연령대가 아닌 더 많은 세월이 쌓여 축적된 지혜에 대한 호기심에 책이 오자마자 열었다. 촌철살인 같은 문장이 난무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상당히 부드럽고 조심스럽고 겸손한 문장 하나하나에 첫 장을 펼치던 마음과 달리 읽는 나도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무척 조심스럽게 넘기게 되었다. 어느 문장 하나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담기지 않아 스스로도 열린 마음을 활짝 유지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인상 깊었던 부분 몇 가지만 집어내서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괴테의 인생관이었다. 그는 파우스트에서 말한 것처럼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새로움을 접할 때 느끼는 전율 상태를 평생 유지하며 살았다. 짧게 정리하자면 법학자이면서 글을 쓰고 색채학을 20년간 공부하고 거기에 더불어 지질학, 해부학, 음향학 그리고 식물학을 죽을 때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 평생 배우는 자세를 꽤 부러우면서 닮고 싶은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내용은 이것이 아니다.
그는 난간이 눈앞에 닥치면 그것을 부드럽게 넘어가거나 하는 등의 요령을 피울 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우직하지만 어떻게 보면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그는 대학을 두 번 입학한다. 한 번은 시인이 되기 위해 또 다른 한 번은 법학자로. 첫 번째 대학에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썼던 작품에 대하여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정말 아깝게도 모든 작품을 불태웠다. 이후 그는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비판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독일 문학을 있는 대로 다 읽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는 그가 꼬마인 시절의 일화이다. 꼬마가 저녁마다 연극을 보러 가서 직접 쓴 희곡을 무대 위에 올려 달라고 청하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올라가지 못했다. 꼬마가 이런 일에 거절을 당하면 울분에 차거나 잊을 법도 하지만 그는 프랑스 대극작가인 라신, 코르네유를 전부 읽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거칠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해결 방안이었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이렇게 축적된 경험이 그를 독일의 대문호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대부분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만 찾는 편이다. 나부터도 이렇게 많이 살았다. 그 결과는 자명했다. 문제가 발생하여 해결은 했지만 시간이 지났을 때 남는 것은 전혀 없었다. 괴테의 방법은 현대인이 보기에 미련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자신의 미래를 위한 자양분은 미련하고 비효율적이어야 쌓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부터도 단순하게 문학을 읽은 것보다 역사적 배경, 작가의 일생과 성향을 공부하고 읽은 것은 기억이 꽤 오래가며 다른 곳에 활용도 많이 하는 편이니까.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실러와 괴테의 우정이었다. 이들의 우정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공유해온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윈윈을 한 관계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말이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주체가 완전히 달랐다고나 할까? 각자는 생긴 대로 그대로 있었지만 상대를 보면서 스스로 배워야 할 부분을 깨우쳐 발전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이 말이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자는 지속되기 어려운 관계이다.
왜냐하면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의 크기가 같아야만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는 자유로운 관계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어 더 깊고, 더 길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 이 현상의 바탕은 다름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나에게 없는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이루어지기 굉장히 어려운 관계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달리 보자면 나이를 먹었기에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관계이지 않을까 한다.
마지막으로 괴테와 관계는 있지만, 그의 이야기가 아닌 그림 형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림 형제는 그림 동화로 유명하지만 독일에서는 이것보다 독일어 사전을 만든 것으로 더 유명하다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그 배경을 모르면 그냥 그 사람들이 이런 일을 했구나 하며 아무런 감흥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잠시 그들에게 그림 형제가 국민 영웅과 같은 대우를 받는 이유를 잠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 독일은 같은 유럽이면서도 야만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 있었다. 이게 길게 이어지다 보니 그들의 언어 또한 유럽에서 멸시받기 일쑤였다. 내용인즉슨 자신들의 언어는 모두 라틴어에서 왔지만 독일어는 아니라는 것. 이에 그림 형제가 연구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사전이 나왔으며 그 결과 독일어도 라틴어의 한 분파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덕분에 미개한 야만인의 언어에서 바로 귀족적 언어로 등극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성경 다음으로 그림 동화를 많이 읽는다고 한다.
전체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림 동화의 일부 내용을 보자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야하기 그지없고, 노간주나무는 잔인하기가 입에 담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작품에서 교훈이 깔려 있어 꽤 묘한 작품이다. 언젠가 이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그 단어들을 파헤쳐 각각이 의미하는 은유의 대상이 무엇인지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이 책을 읽으면서 진하게 느꼈다. 그리고 카프카의 우화집까지 챙겨보고 싶었달까.
작가의 인생과 독일의 대문호들의 작품과 삶을 섞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될 지혜를 전해주는 도서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 미래의 자신에 쓰는 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1년 뒤, 3년 뒤, 10년 뒤, 30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칼날 같은 어투가 아니어서 편안한 마음에 읽을 수 있으며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모두 읽어도 좋을 책이다. 특히 학부모라면 필독서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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