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이 글을 잘 쓰지 못해서라기 보다 글 속에 녹아든 특유의 정서가 적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오해하지 마시길. 여기에 다른 나라도 많이 포함되니까) 이번 책도 제목의 독특함이 아니었다면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도서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렴풋하게 아는 철학자는 의료계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이었는데 제목에 버젓하게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타이틀을 달고 출간되었는지 밀리언셀러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의 스피노자의 진찰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학병원에서 능력이 좋아 교수로 임명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내과의 마치 데쓰로.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의 여동생이 암 투병 중 사망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치매 환자여서 여동생이 낳은 아들 류노스케를 어쩔 수 없이 맡아야 한다. 마치는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초등학생 조카를 키우기는 어려워 과감히 그만두고 한적한 병원으로 이동한다. 이곳에는 그를 포함하여 의사가 총 다섯 명 정도 되는 작은 병원이지만 암 수술까지 할 정도의 실력 있는 인물들이 근무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곳을 찾는 환자들이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며 병 자체도 말기 암, 치매, 뇌경색으로 인한 뇌출혈 등 불치병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니 이 병원에서는 잘 치료하는 것이 아닌 고통을 덜어주고 죽음에 편안하게 이르게 해 주는 것이 목적이다. 마치 데쓰로는 학창 시절부터 의사이면서 책상에 각종 철학서적이 빼곡한 독특한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여동생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곳으로 온 후 더욱더 자신이 타인에게 행복하게 해 주는 것에 집착한다.
어느 날 이곳에 자신이 근무하던 대학 병원에서 마치에게 내시경을 배우기 위해 의사가 파견된다. 사람 자체보다 빠르고 정확한 치료에 중점을 두던 곳에 근무하던 그녀는 도무지 마치의 의료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모두가 앞을 향해 달려갈 때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자신들과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치가 환자를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깊게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한다.
나쓰카와 소스케의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극적인 클라이맥스도 없고,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로맨스도 없다. 어떻게 보면 그날이 그날 같은 호수에 가끔 바람이 다녀가는 정도의 흔들림만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감동에 휩쓸려 가슴이 뜨거워지지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번 손에 잡으면 결코 놓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도 평범하여 등장인물 중 하나를 나로 교체하여도 큰 문제가 없는 일상적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 병원의 환자들은 대부분 우리가 언젠가는 도달할 고령자이며 성격 또한 각양각색이다. 더는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 환자인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묵묵하게 집에서 병수발을 드는 아내,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이 어려운 아버지를 돌보는 마음은 따뜻하지만 말은 거친 아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식도 정맥출혈로 매번 실려오는 가난한 일용직 아저씨는 사회보장제도는 자신 같은 사람이 이용하면 민폐라며 항상 자신이 가진 돈 안에서만 치료를 받고 도망가 버린다.
혈압 160이면 몸 상태가 가장 좋다며 180은 아주 조금 높을 뿐이니 기존의 약에서 더 복용량을 늘릴 필요가 없다며 매번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는 아저씨 등등 모두 어딘가 꽤 고집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환자들이다. 이런 그들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 마치 선생이다. 즉, 몸의 치료도 완벽하게 할 수 없는데 그들의 가진 재산과 마음까지 봐가면서 치료에 임해야 한다. 병원 내부 일에 왕진에 이제 중학생이 된 조카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도 임무를 가진 의사라고 해야 할까.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거의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마치는 여동생의 죽음을 보며 의학의 힘이 굉장히 미미함을 느꼈다고 한다. 게다가 인간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생물이어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고. 이렇게 손을 잡아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풍경은 바꿀 수 있으며 이런 행동이 어둠 속에 갇힌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와 안심을 준다고. 이것을 그는 '어둠에서 얼어붙는 이웃에게 외투를 걸쳐 주는 일이야'라고 말한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을 만큼 어려운 스피노자의 철학이기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살았는데 이 책으로 인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흥성으로 말하자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이기에 어느 날 생각지 못한 시간에 '에티카'를 손에 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차갑고 냉혹한 세상에 작지만 은은한 온기를 가진 촛불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밀리언셀러 작가 나쓰카와 소스케의 스피노자의 진찰실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가끔은 즐거움보다, 성공보다, 묵직한 무게감을 동반한 진지함은 없지만 삶의 방향을 비춰주는 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도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계절이면 더 마음이 더 추워지는 누군가에게 외투를 덮어줄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만드는 도서라면. 우리는 매일 행복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치는 보여준다. 행복은 나의 것을 찾을 때보다 남의 것을 구할 때 나에게 다가온다고. 삶을 마감할 때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나길 소망하며 오늘의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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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