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문어의정원님의 서재
  • 내 인생의 가우디
  • 유승준
  • 25,200원 (10%1,400)
  • 2026-03-19
  • : 520


40대라는 나이에 일러스트를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가끔은 내가 긋는 선 하나에도 '이게 맞나' 싶은 조급함이 들 때가 있다. 마감을 쫓고 트렌드를 살피느라 정작 나만의 색깔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내 인생의 가우디』는 건축가 가우디의 결과물보다, 그가 그 결과물을 만들기까지 품었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했다. 그가 고집했던 그 화려하고 기괴한 곡선들이 사실은 자연을 닮으려는 치열한 노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창작자로서 참 부러웠다. 레이알 광장의 가로등 하나를 만들면서도 "왜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는 대목에서는 뜨끔했다. 관행이나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본질을 파고든 그의 고집이, 화면 속에서 곡선 하나를 비트는 내 손끝에도 조금은 옮겨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옥상에 대한 그의 집념이다. 남들은 '죽은 공간'이라 생각하며 방치하는 옥상을 가우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카사 비센스의 옥상을 수채화처럼 꾸민 그의 시선을 보며, 내 인생에서 별 볼 일 없다고 느껴졌던 지루한 시간들도 어쩌면 나중에 가장 근사한 작품이 될 '옥상' 같은 순간들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은 가족이 사는 작은 나라"라는 그의 따뜻한 문장을 보며, 내가 그리는 그림과 소설도 누군가에게는 작은 안식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본다.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고작 20% 남짓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내 의뢰인은 서두르지 않는다"며 신의 시간을 기다렸던 그 여유가 참 근사하다. 완성이 아니면 실패처럼 느껴지는 세상이지만, 가우디는 과정 자체가 이미 위대한 건축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내 작업도 당장 완벽한 결말이 나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쌓아가는 이 시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작품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언젠가는 꼭 바르셀로나에 가서 내 눈으로 직접 가우디의 곡선들을 마주하고 싶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서서 그의 건축물들을 보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쌓고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조금 더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내 작업실은 나만의 작은 성당이 될 테고, 나는 매일 나만의 곡선을 그려나갈 것이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