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문어의정원님의 서재
  • 만화의 원리
  • 오바 와타루 외
  • 21,600원 (10%1,200)
  • 2026-02-27
  • : 30,800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웹소설을 쓰고, 웹툰 시나리오 작가로의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내가 오랫동안 존경해 온 세 명의 거장, 오바 와타루, 모리 카오루, 이리에 아키가 공동으로 집필한 <만화의 원리>다. 이 책은 출판 만화의 작법을 다루고 있지만, 그 본질을 파고들다 보면 현재 내가 당면한 '세로 스크롤 연출'에 대한 해답이 곳곳에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오바 와타루: 컷 분할은 곧 시간의 설계다

오바 와타루의 파트에서 가장 깊은 깨달음을 얻은 지점은 <첫 분할의 결정은 시간의 결정>이라는 문장이었다. 페이지 만화에서 정보를 배분하는 3단 구성의 원리는 웹툰에서 스크롤의 속도를 제어하는 핵심적인 장치가 된다.

전통적인 칸 나누기 기법을 공부하며, 웹툰의 여백 역시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독자가 정보를 처리하고 감정을 고조시키는 '호흡의 구간'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독자가 멈추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구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 시나리오 속 정보량이 스크롤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2. 모리 카오루: 지속 가능한 수수한 기술의 힘

서문에서 언급된 <기술은 수수하다. 그러나 수수함에는 지속성이 있다>는 말은 창작자로서의 태도를 다시금 점검하게 만든다. 화려한 기교보다 중요한 것은 독자의 마음속에 은근히 스며드는 탄탄한 기본기다.

일러스트레이션 측면에서도 실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얼굴을 크게 그리려면 손목만이 아니라 어깨까지 활용하여 프로다운 선을 그려야 한다>는 조언이나, <작은 인물일수록 생명력을 담아 제맛을 내야 한다>는 지침은 내 작업 방식에 즉각적인 변화를 주었다. 특히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 내에서 인물의 얼굴이 가지는 압도적인 힘을 어떻게 선의 질감으로 표현할지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3. 이리에 아키: 선의 흐름으로 유도하는 시선의 미학

이리에 아키가 강조하는<구도와 시선 유도> 원리는 웹툰 캔버스에서 더욱 강력한 도구가 된다. <구도는 어디까지 신경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작가님은 과한 욕심보다는 인물의 위치 선정과 선의 흐름을 통해 세계관에 설득력을 부여할 것을 권한다.

좁고 긴 웹툰의 특성상 인물의 시선 처리 하나가 다음 스크롤로 넘어가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독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유도하는 연출은 당장 내 콘티 작업에 도입해야 할 핵심 과제가 되었다.

4. 마치며: 고전의 원리로 미래의 웹툰을 그리다

이 책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을 넘어, <독자의 마음속에 은근히 좋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만드는 법을 역설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처럼 시간이 흐른 뒤에도 다시 펼쳐보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창작자로서 내가 지향해야 할 종착점임을 다시 한번 새긴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비주얼의 한계를 느낄 때, 혹은 시나리오 작가로서 연출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때 이 책은 늘 곁에 두고 펼쳐볼 지침서가 될 것이다. 거장들이 갈고닦은 수수한 기술들을 내 것으로 소화하여, 스크롤 위에서 나만의 견고한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