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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ckboy님의 서재
  • 완전한 이름
  • 권근영
  • 14,400원 (10%800)
  • 2021-09-30
  • : 423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된 ‘완전한 이름’은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여성 예술가 열 네명의 이야기다.

어느 하나 대견하지 않은 이름이 없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화가는 프리들 다커브란다이스와 베르트 모리조이다.
현대 조형예술의 산실로 불리는 바우하우스에서 아동심리와 미술치료의 기반을 다지고 아동미술에 뜻을 품었던 프리들 다커브란다이스. 나치의 탄압으로 남편과 함께 수용소에 수감되는데, 몰래 반입한 미술서적과 복제품으로 어린이 미술교육에 헌신한다. 2년 후, 남편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자 수용소 아이들의 그림 4500장을 여행가방에 숨겨 뒤따라 가고,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숨을 거둔다.
걸리면 어떻게 될지 뻔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자료를 밀반입하고, 죽음의 땅으로 향하면서도 그림을 몰래 챙겨갔던 마음이 어떤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바우하우스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겉핥기로 배웠던 미술이지만 결국 절망에 있던 자신을 일으킨 것도 미술이었고, -비록 다른 종류의 절망이지만 - 절망속에 놓인 아이들도 미술로 치유받기를 바란거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희망을 보여주고, 자신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위로받았겠지.
그곳에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음에도 끝내 남았던 프리들. 비록 본인의 화풍은 남기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심어준 희망은 그가 챙겼던 4500장 그림으로 살아남았다.

왜 항상 우리는 혐오의 역사를 되풀이할까? 사랑하며 공존하는 건 어려울까? 이런 류의 글을 볼때마다 머릿속 한쪽으로 계속 드는 생각.
그리고 그 좋은 예를 보여준 인상파 여성멤버 베르트 모리조 이야기도 인상깊었다.
부모님께 넘치는 지원을 받고, 여덟살 연상의 화가 남편은 본인의 커리어를 제쳐둔 채 모리조를 뒷바라지한다. 그 덕분인지 모리조는 딸을 출산한 해를 제외하고 여덟 차례에 걸쳐 인상파 전시회에 빠짐없이 출품한다. 모리조가 그린 그림 또한, 아기, 언니, 딸, 딸과 시간을 보내는 남편, 화가인 자신등을 그려낸다.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청문회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했던 ‘육아의 시간이 내 분별력을 지켜줬다’는 말은 모리조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단조로운 중산층 여성의 삶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어머니, 아내, 딸로 느꼈던 소중한 일상들이 화가로서 모리조를 바로 서게 하며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준다. 여자이기에 가능했던 그림과 표현들이 프리들이 주었던 것과 또 다른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이 외에도 다른 12명의 멋진 여성 화가들이 완전한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이름을 모른대도 그들은 화가였고, 쭉 위대한 예술가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기억되는 이름이 좀 덜 슬플 것 같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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