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누가 범인인가 하는 추리에서 시작하지만, 누가 죄값을 치르고 죽을 것인가로 끝나지 않는다. 감히 생각하건대, 이 소설을 예수와 그 제자들이 범인일까 아닐까에 주목하여 장르적으로만 독해하는 것은 일차적인 독해다. 소설이 제공하는 추리의 과정을 흥미롭고 긴박하게 따라가는 첫 번째 독해 이후에는, 이 거대한 세계와 인물이 구축한 지적 쾌감이 따라온다.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알면 알수록 더 재밌다는 것이다. 나는 기독교 지식이 있는 독자들은 오히려 이 소설을 두 배로 재밌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고대 그리스철학에 대해 관심이 있어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서 나왔던 순간들과 장면들이 하나의 역사로 꿰어 맞춰 들어갈 때의 쾌감, 내가 아는 지식이 소설 속 상황에서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질 때의 쾌감을 싫어하는 독자가 어디 있을까. 이 소설은 지적 미스터리라는 문구에 걸맞게 우리의 앎을 서사적 재미로 승화시킨다.
특히 AD 30-60년을 전후로한 예루살렘 정세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 돋보인다. 이 시기의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이기도 했으나, 이스라엘의 수도였고, 동서 문화가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이를테면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헤게모니의 격전지였다. 성전 안팎을 가로지르며 로마인에서부터 유대인, 로마의 황제에서부터 총독, 유대의 대제사장에서부터 성전 도살꾼까지, 각각의 인물을 섬세하고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를테면 ‘구원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기독교 지식을 가진 독자로서 킬링 포인트라고 느낀 부분은 광야 40일을 재해석해 낸 부분이다! 순간 전율이 흘렀음을..!
이러한 글이 가능했던 이유는 12년이라는 집필기간 동안 작가가 끊임없이 공부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여러 책들을 보면 저자가 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해온 노력이 결코 허술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신성과 인간성의 경계, 신화와 역사의 경계, 성경과 불화하지 않으면서도 성경 밖 예루살렘을 구현 해낸 대범함 등은 역사를 넘나드는 팩션 작가 이정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듯하다.
쓰다보니 이 소설의 지적인 측면만 집중해서 쓰게 된 것 같은데, 이제와서 새삼 말하기도 뭐하지만, 일단 이 소설 정말 재밌었다!
장르와 소재에 주춤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일단 한 번 “와 보라(요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