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 글을 어투랑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여기에 다시 올린다.
이 천편일률적인 호평일색에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근거가 되고자....
왜냐하면, 나로서는 이 책은 이만큼의 호평을 받을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용을 안다고 가정하고 감상만 쓴다.
개인적으로 친구에게 추천아닌 추천을 받고 나서도거의 2년간 은근히 마음에 부채감처럼 한구석에 놓여있던 작품이라서꽤나 기대했었음. 그런데....!
주인공 은서가 너무 짜증났다.그 밑도끝도없는 이기심에 신경질이 나고 동시에 그것을 자꾸 정당화하려고 하는 내면 서술이 한심하고 어이없었다.예를 들어서 '그래 나는 세에게 내 상처를 고스란히 옮겨주는 것인지도 몰라'따위의 독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자기 객관화를 하면 뭐 하는가?행동이 하나 바뀌질 않고 그대론데. 그러면 이 무책임하신 은서 여사의 주위 사람들을 대충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작중에 보면 은서가 어릴 적 집을 나갔었다.그게 은서한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걸 어머니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서후반부에 그걸 풀어주고 싶었다는 듯한 서술도 계속 보인다.
남동생은 어떤가. 애인사이로 착각당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이고두 장이나 할애해서 둘의 깊은 사이를 보여주고 있을 정도이다.
남편인 세는, 후반부에 이 인물이 폭력적으로 변한 것도 결국에는 어찌 보면자기 때문이지 않은가? 어떻게든 견디고 이를 악물어 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세는 자기 때문에 몇년을 그렇게 가슴아팠는데 그걸 이해하는 '척'은 다 하더니,
뭣보다 한심한 것이 결국 이 여자가 죽는다는 것이다.자기 어머니, 남동생 이수, 남편 세 모두 뒤로 하고 그냥자기 마음 불편한 것 좀 못참겠다는 이유로 자살을 해버린다 이 말이다.
그따위 무책임이 세상에 어디에 다 있는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따위 짓거리를 '슬픔'이라고 포장해주면 안 되는 거다.차라리 [깊은 무책임]이라고 해야지. [깊은 이기심]이나.
완은 그냥 한마디로 개새끼다, 그저 욕구에만 충실한.
세는 바보일 뿐, 하는 짓 보면.
개인적으로는 이 말도 안되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이 납득이 잘 안됐다.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있다. 감정적인 사디즘을 부리는 작품들이 살다보면 있기 마련.
예를 들어서 영화 <추적자>를 그쪽 부류의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어떻게든 관객을 찜찜하게 하려고 갖은 수작을 부린다.
작중 내내 무능력하던 경찰이 하필 하정우를 죽이기 전에만 신통방통하게 김윤식을 말린다던가.
이 소설도 내가보기엔 그렇다. 그런 '우울감'을 독자에게 불어넣고 싶어서 안달이 나 보인다.
마치 퍼즐을 짜맞추듯이완은 그래서 개새끼여야 하는 거고세는 그래서 그렇게 바보처럼 굴다가 후반부에는 '갑자기' 폭력적인 인물로 화하는 것이며
은서는 그래서 그렇게 이기적인 주제에 혼자서 고통스러운 척은 다 하는 것이다.결국 은서는 그 비애감(?!)을 못다 견뎌 아파트 베란다 아래로 투신'해야 하니까'.
나름의 논리는 서 있는 것 같다. 은서는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에 상실감을 좇게 되어버렸다.완은 어릴 적 사건으로 고향을 등지게 되었고, 그래서 은서를 기차 안에 남겨두게 되었다.완을 '상실했다는' 마음 때문에 은서는 그때부터 완을 좇기 시작하는 거고.세는, 물론, 몇년을 그렇게 마음을 기울였는데도 여자가 그렇게 굴면 분노할 만 할 터이다.
말했듯 나름의 논리들은 다 서 있다. 그런데 위에서 내가 퍼즐이라고 썼지 않은가?
작가가 '이 인물이 이렇게 행동하려면 이런 전제가 있어야 하겠다'라는 계산 아래에인물의 성격과 핑곗거리를 다 준비한 후에 그걸 요리조리 짜맞추어 놓은 것 같은, 그런 위화감.
결론적으로는 은서라는 인물이 참 공감 안가는 인물이더라 이거다.그런걸 슬픔이라고 포장하는 후안무치함에 이르러서는 사실 몸서리가 다 쳐졌다.
굳이 이 소설에서 좋았던 점을 말해보자면주요인물 3명의 고향인 이슬어지나 은서가 지은 자작 소설에 나오는 농촌 묘사는 좀 괜찮았던 듯.
솔직히 조금은 불가해하다. 신경숙이 등단한 지 20년은 넘었는데아직도 이름이 기억되고, 작품활동을 한다면 그게 요행일 수만은 없을텐데.이렇게 사람 불쾌하게 하는, 저열한, 감정장난 치려고 하는 작품이나 써냈더라니.개인적으로는 많이 실망.
흥미로웠던 점. 이 소설의 촐판년도가 94년이다.그 시대에 지배적인 정신 상태라고나 할까,이렇게 가벼운 작품이 인기를 끌 만큼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향유하려는 자세가, 음, 살기 꽤 좋았구나. 싶었다.요컨대 IMF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던 때이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