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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님의 서재
  • 걸리 드링크
  • 맬러리 오마라
  • 21,600원 (10%1,200)
  • 2023-06-14
  • : 515
술의 역사뿐만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 공부하게된 좋은 기회다.예전에 태어났으면 나는 마녀라 불리우며, 감옥에 가있거나 화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며 읽었다. 사실 책을 읽기전 맥주를 마실때는 별 생각 없이 마셨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마시는 이 맛있는 맥주가 이런 맛을 내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으로 얻게된
여성들의 값진 땀방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마셔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들에게 술이든, 역사든 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읽으면서도 부들부들 화가 나는 지점이 많았다.
책의 제목처럼 술은 정말 여성들과 많은 부분 닿아 있었다.
여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생활력이 강하고, 술 제조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주 멋진 사람들이다. 같은 여자로서 매우 뿌듯하다.

술의 열량이 커서 어른들뿐만아니라 어린이들(어른이용 맥주가 따로 있었다), 산모들(물론, 잘 못된 정보로 인한 행위였다)에게도 큰 공급원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술로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P.32
닌카시라는 이름은 입을 채워주는 여인이라는 의미다.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맥주를 마시는 일은 문자 그대로 신을 마시는 행위였다.

P.51
디오니소스(육욕,혼돈,쾌락의 상징) 축제 기간은 여성의 음주가 허용되는 유일한 기간 이었다. 그리스에서는 이 축제에 참가하는 여성들을 두고 디오니소스에게 스스로를 바친다고 표현했다. 음주가 허용된 유일한 축제에서조차
여성이 남성 신에게 자신을 바쳐야 했다는 점이 애꿎다.

p.69
클레오파트라는 그렇게 쾌락과 죄악의 상징이 되어
'왕들의 여왕'으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콜레오파트라는 그냥 여왕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철학자이고 학자였고, 실리주의적 군사 지도자였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여성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술 마시는 여성이 상징하는 모든 것, 즉 두려움의 대상이자 환상의 대상이었다.
가부장제의 남성들은 자유분방한 여성을 원하지만, 자신의 통제 안에서만 자유롭기를 원한다. 남성들은 여성의 음주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경우에만 용인한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러한 제약을 단호히 거부했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자신의 권력과 즐거움을 위해 싸웠다.

P.116
한편 에일와이프들은 특유의 복장을 갖췄다.
붐비는 장터에서 눈에 잘 띄기 위해 뾰족한 긴 모자를 썼고,
자신의 에일을 알리기 위해 에일하우스 밖에는 긴 장대를 걸곤 했다.(이런 모습을 보고 마녀를 묘하게 에일와이프와 닮게 표현했다)(......) 주일 예배에 오는 신도들을 두고 에일하우스와 경쟁 관계에 있던 서유럽 교회는 에일와이프를 적대시했다. 설교 중에 에일하우스를 "지독한 경쟁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당시 교회에서는 "술집은 악마의 학교"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에일하우스를 운영하는 에일와이프는 악마를 위해 일하는 교사라는 뜻이었다.

P.119-120
이청조는 중세라는 시대에 술을 즐기는 여성이 상징했던 그 모든 것이었다.그녀는 대담하고 독립적인, 그리고 주어진 것에 순응하지 않는 강한 여성이었다.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감정과 행동을 여성 또한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중국 시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술 한두 잔이 분명 도움이 됐을 것이다.

p.128-129
1617년, 작가 에스턴 사워넘은 여성 음주에 대한 이중 잣대를 다음과 같은 글로 꼬집었다. "사람들은 여성이 술에 취한 모습은 혐오스러워 하지만 남성의 만취는 그저 '사람 좋음'의 상징으로 본다.(......)"

P.320-321
수 세기 동안 한국의 가정에서 술을 빚는 일은 김치나 간장등 다른 발효 식품 제조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몫이었다.
증류와 양조기술은 모두 여성의 주도로 발전했다.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내는 비방)은 여성이 쓴 동아시아 최초의 요리책으로,
요리뿐 아니라 각종 술 담는 법이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조선의 양반가 출신 장계향이 1670년 내놓은 이 조리서는 매우 특별하다. 여성의 읽기와 쓰기를 금기시했던 유교의 가부장 문화로 인해 당시 여성이 쓴 작품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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