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라 2003/01/2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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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 손잡고 영화관에 들어가 처음으로 본 영화가 바로 서편제이다. 구성지게 판소리를 불러대는 오정혜의 모습은 어린 나에게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참 멋져보였다. 그런 영화의 여운을 안은 채 원작인 소설 서편제 읽기를 차일피일 미뤄왔고 이제야 방학숙제를 한다는 명목으로 읽게 되었다. 분명 영화나 소설이나 전체 내용은 그리 다를 것이 없었다. 소리꾼 남자와 배다른 남매, 도망친 오라비와 딸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 그리고 끊임없이 소리를, 동생을 찾아 다니는 오라비....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 내용을 연작소설이라는 새로운 틀을 통해서 보니 영화 서편제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영화속에서 주인공들의 관점에서만 볼수 있었던 상황과 내용을 주인공을 전혀 모르거나 잠시 스쳐간 사람을 통해 보고 듣는다는게 참 흥미로왔다.
사실 이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많다.딸이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딸의 눈을 멀게한 소리꾼 아버지나 자신의 눈을 멀게한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 한을 소리로 승화시킨 딸이나 소리를 견디지못해 아버지와 동생의 곁을 떠났으면서도 일생을 소리를 찾아 떠도는 오라비 모두 알수 없는 인물들이다. 또 주막에서 소리를 하며 북을 치며 서로를 알아봤음에도 아무말없이 떠나고 찾으려하지 않는 행동도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저면 그들의 상황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동생은 아버지곁을 끝까지 지켰고 그 한으로 소리를 잘하게 되었으며 오라비 역시 동생의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 소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국악이라고 하면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판소리도 거의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주체할수 없는 한의 표출이라는 생각이 들자 지금껏 아무 생각없이 판소리를 들어넘겼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비록 소설속의 인물이지만 오라비의 북장단에 맞추어 동생이 소리하는걸 직접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도 뜨거운 '햇덩이'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와 소설이라는 같으면서도 다른 두 매체를 통해 한가지 내용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건 참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다. 특히나 이 서편제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두 번 볼수 있어서 좋았다.그들의 한도 용서도 만남도 헤어짐도 모두 두 번씩 볼수 있어서 두 번씩 느낄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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