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은 참 설레고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통하는 그 순간은 몇 번을 경험해도 명치가 간질간질,
온 몸이 찌릿찌릿합니다. 한 눈에 반하는 사랑 보다는 천천히 물들어가는 사랑을 원하고 좋아했지만 그렇게 조금씩 물들어 가는 중에도 마음이 통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과 사랑에 빠지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이 말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로맨스를 다룬 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시다 이라의 <1파운드의 슬픔>은 이런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단편집입니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소설이지만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데에는 이시다 이라의 작품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표제작 <1파운드의 슬픔>을 포함해서 열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아는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신하게 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뜻밖의 장소, 뜻밖의 순간에 마음의 끌림을 느낍니다. 일상에 조금씩 지쳐가는 순간에 어깨를 빌리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고 오랜 시간을 사랑하다 헤어진 애인과의 재회에 새로운 설렘을 느끼기도 합니다. 열 편 모두 어쩌면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친구의 이야기, 내 언니, 동생의 이야기, 혹은 지나간 나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이 작품집은 이시다 이라의 성별을 의심케 만듭니다. 남자가 이런 예리한 감성을 포착하고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한동안 무뎌졌던 나의 감성도 조금은 말랑해진 느낌이 듭니다. 동화의 결말은 항상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납니다. 이 단편들의 결말도 대부분 행복한 순간에서 끝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릅니다. 둘의 사랑이 또 한 번의 슬픔을 맞이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만날 수 있어 기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