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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뮤뮤님의 서재
  • 오베라는 남자
  • 프레드릭 배크만
  • 12,420원 (10%690)
  • 2015-05-14
  • : 25,194

 아니, 스웨덴에도 이런 ‘꼰대 영감’이 있나?

솔직히 이 책의 첫 부분을 읽으며 든 생각은 그랬다. 오베라는 59살의 이 남자는 아이패드를 사러 가서 이게 컴퓨터가 맞냐, 키보드가 왜 없냐, 하며 꼬투리를 잡는다. 점원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만 오베는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냐”며 도리어 역정을 낸다. 딱, 지하철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는 ‘꼰대 영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여대생의 치마 길이를 보며 망조가 들었다고 중얼대는, 우측통행을 하지 않는다고 바쁜 사람 붙잡고 훈계하는, ‘하여간 요즘 것들은’ 하며 혀를 차는 바로 그 영감님 말이다.

오베는 이제 세상엔 제대로 된 사람이 없고, 진짜배기도 없다고 중얼거린다. 이웃들은 죄다 전구 하나 갈지 못 하는 얼간이들과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 막돼먹은 놈들뿐이다. 자신을 이해해주던 사랑하는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선 명예퇴직을 당했다. 59세, 살고 싶지도, 살아갈 이유도 없지만 자연사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다.

오베는 자살을 결정한다. 물론 그는 민폐 끼쳐가며 자살하는 그런 몰상식한 인간(?)이 아니다. 사후 처리를 위해 유언장을 상세히 작성하고, 깔끔한 자살 방법을 골라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하필 앞 집에 이사온 남편은 얼간이, 아내는 민폐덩어리인 가족이 자살을 방해한다. 그들은 주차를 하다 우편함을 부수질 않나, 고양이가 죽어가니 보살펴달라고 하질 않나, 창문을 수리한다고 설치다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이사온 날부터 내내 법석이다.

그런데 이 오베라는 남자가 입은 좀 험해도 책임감 하나는 끝내주게 강해 얼간이 이웃을 계속 도와준다. 게다가 동상에 걸린 고양이를 계속 돌본다든가, 커밍아웃한 게이 청년을 재워준다든가, 툴툴대면서도 약자를 내버려두는 법이 없다. 소위 ‘츤데레’인 셈이다.

어쩜 그런 오베에게 필요했던 건 다른 아닌 ‘꼰대 통역자’인지도 모른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평생 살아왔지만 세상으로부터 ‘무쓸모’ 딱지를 받고 죽음을 생각한 오베였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알아봐주고, 또 행동으로 옮기게끔 도와준 주위의 ‘얼간이와 민폐덩어리 들’ 덕에 어느새 오베는 미친 늙은이에서 사랑스런 할아버지로 재평가된다.

그런 오베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자기 집 화단에 매일 오줌을 싸는 개가 있다. 뻔히 눈에 보이는데도 개 주인은 그런 적 없다고 발뺌하며 오베를 미친 영감탱이라 욕한다. 화가 난 오베는 오줌을 쌀 때 개가 쇼크를 받게 전기충격기를 설치하려다 포기하고 만다. 그는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꼴을 당해도 쌌다. 그가 관둔 건 어쩔 수 없이 사악해지는 것과 안 그래도 되는데 사악해지는 것 사이의 차이를 누군가 진작에 일깨워줬었다는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304쪽)

오베의 인생을 상상하며, 나는 진저리나게 싫어하는 ‘꼰대 영감’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다. 여자에게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게 만드는 꼰대 영감, 커플의 스킨십에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했다’며 삿대질 하는 꼰대 영감, 그런 영감님들이 자라온 환경과 삶에 대해서.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고자질을 하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몇 달씩 방향이 다른 기차를 타고, 가족을 위해서 온 집의 가구며 전자기기를 수리해온, 성실하고 우직하고 순수한 영감님들을. 이해 못할 세상의 온갖 변화들에 분노하면서도 그런 세상의 구성원들에게 책임감을 갖고 돌보(아버리)는 영감님들을.

내게 이 책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혐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서로를 혐오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처럼 굴고 있다. 오죽하면 ‘혐오주의’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여자를 혐오하고, 노인을 혐오하고, 특정 지역을 혐오하고,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격렬한 혐오 끝에 과격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오베를 보면서 혐오가 가능한 것은 대상을 단순화시켜 재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삶과 연관시켜 들여다보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만 더 너그러워질 것. 내내 욕을 먹고도 오베에게 사프란을 곁들인 치킨을 가져다준 이웃집 여자처럼. 그래서 오베가 이웃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일꾼이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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