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inai 2018/06/0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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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책] [세트] [BL] 입술 - BL the Cl...
- 뾰족가시
- 7,600원 (380)
- 2018-05-31
- : 1,281
그동안 입소문을 접하며 은연중에 기대를 많이 했나 보다. 술술 막힘없이 잘 읽히고, 어디 모난 곳도 없는데 다 읽고 나니 주인공인 하선연만 남았다. 자기가 잘난 줄 너무 잘 알고 있고, 타인의 호감을 이용해서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흐르도록 유도하는 모습이 얌체같은데도 좀처럼 밉지가 않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언행이 얄미울 즈음 드러나는 허당같은 면모때문에 '으이고~ 그냥 내가 해주고 말지!'하고 번번이 나서는 김택승의 기분을 알 것도 같다. 남녀든 남남이든 로맨스 소설의 남주인공들은 으레 멋지게 그려지고, 특히 나쁜 남자 컨셉의 차도남들은 비록 마음은 쉽사리 안줄지언정 다른 부분에서는 다 여유 넘치고 너그럽던데 하선연은 그렇지 않다. 그는 화랑을 운영하고 아우디와 벤틀리를 끌고 다닐 정도로 재력이 있으면서 어쩌다 맛본 자판기 커피맛에 반해 떡하니 커피자판기를 들여놓더니 꼬박 꼬박 김택승의 동전으로 커피를 뽑아 마신다. 피곤할 날 대리운전을 부르거나, 아니 아예 운전기사를 고용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아르바이트에 찌든 김택승에게 전화해서 그가 자기 집까지 운전하도록 유도하더니 라면까지 끓이게 시키고는 낼름 다 먹어버린 적도 있다. 그것도 결코 자기 입으로 대신 운전해달라거나 라면을 끓여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알아서 자기를 보살피도록 눈치주는 점이 얄밉고도 귀엽고, 어이없고도 웃겼다. 숱한 소설과 만화를 보았지만 이런 식으로 당연하게 썸 상대를 부려먹는 주인'공'은 처음 본다. 남녀 로맨스물의 어지간한 새침데기 여주인공들도 그러지 않는데 무엇이 하선연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릴 때 원하는 바를 대놓고 말하면 안된다고 누가 다그치기라도 했던걸까. 작중 하선연의 가정사나 성장기 에피소드가 다뤄지지 않은 점이 조금 서운할 정도로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한편 하선연의 그늘에 가려져서 그런가 김택승은 그냥 평범한 가난수256 같은 느낌이었고, 전개도 이 동네 평범한 후회공x가난수 첫사랑물569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주인공이 옛날에 인연이 있었던 부유하고 잘난 남자와 재회하여 행복해지는 이야기야 흔하다. 당장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만 해도 결국은 꼬꼬마 시절 첫사랑 알버트 아저씨와 잘 되지 않았던가. BL이란 장르 안에서만 해도 이미 비슷한 구도와 줄거리의 소설을 여럿 보았으니 이야기 자체보다 다른 부분에 집중해서 보게 된 건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초심자 시절에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주인공의 친구나 과거 교통사고 등 잔가지는 모두 쳐내고 오롯이 주인공 두 사람의 감정과 관계 변화에만 집중해서 깔끔하게 이야기를 끝낸 작가님의 솜씨에도 더욱 감탄했을 거 같다. 지금은 골자야 어차피 다 비슷하니 그런 잔가지들의 재미에 집중해서 보게 된 지라 이야기가 약간 밋밋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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