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학기 수업에서 한국 현대사를 다뤘다.
나는 1950년대를 맡아 연표 만들기와 논문 찾기, 수업자료 만들기를 했다.
1950년대라고 해서 막연히 한국전쟁만 떠올렸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과 가족>을 읽기 시작했다.
더 알기 위해. 내가 모르는 죽음들과 내가 잘못 알고 있는 삶들을 위해.
한국전쟁 전 후로, 그리고 전쟁 내내 많은 민간인(양민) 학살이 있었다.
이는 냉전체제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국민' - '비국민' 구분으로 인한 참극이었다.
대전교도소 학살을 예로 들어보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대전교도소 재소자 중 우익인사들을 죽였고
국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는 좌익인사들을 죽였다.
한국전쟁은 이렇다할 마무리 없이 두 진영의 합의로 끝이 났는데,
이는 한국을 20세기의 가장 첨예한 냉전 대립 구도를 갖춘 나라로 남겨 놨다.
틸리는 “국가는 정쟁을 만들고, 전쟁은 국가를 만든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의 국가폭력(민간인 학살)은 ‘빨갱이’라는 타자를 형성하고 공격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대다수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우익의 입장에서는 해방 이후 등장한 정당성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며, 좌익의 입장에서는 혁명을 지향하는 방법이었다.
남한지역에서 죽거나 부상당한 인구수는 129만 2,832명에 달한다. 그중에서 군인 사상자 30만 1,864명을 제외하면, 민간인 사상자 수는 99만 968명에 달한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국민의 자격’은 특정 영토 안에 거주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충성행동 여부로 구분되었다. 부역자를 규명하는 것은 바로 국민과 비국민을 구별하기 위한 법적 조치였으며 정치적, 사회적 구별조치이기도 했다.
이렇게 국민/비국민을 나누어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근간에 뿌리 내린 국가폭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후에 수많은 국가폭력(80년 광주, 2009년 용산 등)가 발생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전후 시대를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전쟁 전, 전쟁 중에 일어난 국가 폭력을 알아 보아야 한다.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의 이면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무겁다.
봉합되지 않은 상처들이 있다.
치료되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다.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