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안은 불씨하나 보이지않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앞에서 나를 이끌고있는 스코비아는 이곳이 처음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망설이지않고 앞으로 나가고있었지만 방면 나는 스코비아가 방향을 틀때마다 앞에 있던 벽과 부딫히거나 스치기를 반복했다. 오랜시간 같이 살아온 스코비아가 이럴때는 엄청나게 낯설다. 얘는 내가 모르는 걸 얼마나 알고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밤눈이 좋아서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동굴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얼마동안 그 안에 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걸었어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차가운 공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여름이라면 시원해서 좋았겠지.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고 스코비아는 감기까지 걸려있었다. 다시는 들어가고 싶지않은 곳이다. 우리는 지금 브리크테나 벽밖에 나와있다. 저 쪽으로 우리가 이 도시를 처음봤었던 산이 보였다. 우리가 나온곳은 밖에서 보면 어느 하수도로 보인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왜 이런 비밀통로를 서고에 만들어났을까? 이런걸 알고있는 아수씨도 신기하고.
“스코비아.”
스 코비아를 불렸지만 대답 대신에 스코비아는 내 손을 잡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어? 왜 그래!” 내가 외쳤지만 금방 스코비아의 대답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다. 뒤에서 사람들이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내게 뭔가 특별한 능력같은게 없다고해도 확실히 알수있는 것은 한두명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아니 나는 브리크테나 밖을 돌아다녀본적이 거의 없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알지못했다. 그냥 뒤를 쫓아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칠 뿐이다. 스코비아가 힘들어하는게 확실히 보였다. 감기가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달리니 당연하지. 나도 이렇게 달린 적이 거의 없어서 숨쉬기도 힘든데. 하지만 우린 여전히 멈출수 없었다. 나는 스코비아가 이끄는 대로 그냥 달리기만 하는데 아무런 생각이 들지않는다. 종아리를 스치는 풀잎에 자잘한 상처가 나 따끔한걸로 우리가 달리는 곳은 이미 길을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덕을 몇 개넘고 주변에는 어느새 나무들이 꽉 들어차기 시작했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는 전혀 줄어들거나 멈추지 않았다.
난 바보인걸까? 이제야 저 사람들이 우리를 확실하게 목표로 삼고 오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거의 전력질주를 하다시피 달리는 우리를 쫓아올 이유가 뭔지 알수없었다. 밤공기는 차가운데 몸에서 땀이 조금 흐르는 걸 느낄수있었다. 숨이 가빠 가슴 속이 말로 할 수 없을만큼 아프다. 하지만 멈추면 안된다.
우리는 지금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풀들 사이를 걷고있다. 한참동안 뛰면서 나나 스코비아나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밖에서 봤을때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있어서 마치 벽같았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사람이 걸어다닐 정도는 되게끔 나무들이 일정한 관격으로 불규칙하게 자라고있었다. 나뭇잎들이 이 안을 거의 가리고있어서 하늘이 전혀 보이지않았는데 낮에도 이런건지 어디를 가나 상당히 습하고 발밑이 추적추적한것이 기분나쁘다. 뒤에서 들리던 발자국 소리들이 지금은 들리지않는다. 아마도 이 안이 나무들 때문에 복잡해서 추적을 떨쳐버린 것일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지금도 내 손은 스코비아의 손에 잡혀있고 스코비아는 앞장서서 걷고있다.
“스코비아?” 하고 나지막히 불러본다. “응?” 스코비아가 고개를 살짝 돌린다. 얼굴이 한눈에봐도 알아차릴 정도로 심하게 빨갛다. 열이 올라온게 분명하다. 스코비아가 날 보더니 그냥 씩하고 웃어보인다. ‘난 괜찮아’ 뭐 이런걸 표현하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말하기조차 싫을 정도로 아파서 말대신 그런걸까. 후자라면 말을 거는것 자체가 스코비아에겐 짜증나는 일이니까 말하지 않는게 낫지않을까...하고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었나보다. 스코비아는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빤히봤다.
“우리 지금 어디로가는거야?”
“어? 모르겠는데... 나도 여기는 처음와서.”
여기는 처음와서라고 하는 걸 보니까 이 근처까지 온 적은 있었는 것 같다. 스코비아가 다시 걸으려고 할 때 발을 빨리 움직여 스코비아보다 앞으로 나갔다.
“모르는거면 내가 앞장설게.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이젠 내가 스코비아 앞에 서서 걷고있다. 자리가 바뀐다고해서 풀밑의 축축한 땅이 해결되는것도 아니고 목적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병걸린 스코비아에게 너무 미안하다.
“긴히야.”
“응?” 금방 걷기시작한 발을 멈추고 스코비아를 돌아봤다.
“고마워.”
스코비아는 그러면서 맨날 하던대로 입을 가볍게 벌려 한번 웃었다. 열 때문에 새빨게진 얼굴로. 난 곧장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별게 다 고맙댄다.”스코비아가 작은 소리로 실없이 웃는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꽤 됐다. 그 점을 스코비아에게 말하니 바닥에 풀이 있고 축축해서 그럴것이라고 답해줬다. 그건 나도 알고있었지만 그 외에 사람의 기척이나 그런걸 느껴본지가 꽤 지났다. 스코비아는 조심해야하고 빨리 움직여야한다고 주기적으로 말했지만 그 사람들이 우리를 쫓는걸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면 다시 돌아가서... 아, 할아버지와 베젠트는 잡혔댔지.
뭐야, 이게. 뭐야.....
“무슨 소리?”
가만히있던 스코비아가 갑자기 한 말에 반사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뭔가 벌판에서 부는 바람소리 같으면서 물을 버리는 듯한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스코비아와 시선을 맞춰봤다. 얼굴은 아직도 새빨간 상태지만 방금 들린 소리에 흥미가 생겨서 그런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가볼까?”하는 한마디에 스코비아는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천천히 그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이 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목적지가 생겨서 그런지 이제까지보다 속도가 붙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나무와 풀과 축축한 바닥이 사라지고 브리크테나 성밖의 길옆같은 곳을 걷고있었다.
“와, 이게 뭐야?”
스코비아가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것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무말도 하지않고 가만히 서있으니 어디선가 이런 장소를 들었던것 같다. 우리는 오직 물. 물만 보이고, 물만 있는 그런 곳 앞에 서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얼마가지못했다. 우리 앞에서 땅이 사라지고 없었다. 절벽이었다. 절벽 끝에서 아래를 유심히 쳐다보고있으니 처음에는 한치앞도 안 보이다가 나무 뿌리가 보였다가 툭 튀어나온 돌들이 보이더니 마지막으로 절벽을 치고있는 커다란 물들이 보였다. 그 물들은 절벽쪽으로 엄청나게 크거나 작은-하지만 우리가 봐왔던 것보다는 훨씬 큰- 물결을 일으키며 오다가 이내 벽에 부딫혀 모습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있을 물의 끝을 보려고했지만 아무리 눈을 찡그려봐도 끝에있을 땅이 보이지않았다.
“이거... 바다 맞지?” 스코비아가 나직이 말한다.
“바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단어인데 잘 기억나지 않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 옛날에 어디서 봤던거 같다.”
“보는건 이게 처음아니야?”
“맞아. 책에서 봤어.”
“그런데 바다는 파랗다고 한거 같았는데 검정색이네?”
“밤이라서 그런가?”
넌시지 말해봤는데 스코비아는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잠시나마 잊었던 열기운을 다시 느낀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잠시동안 이 검은바다를 보고만 있기로 암묵적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검정색이라니. 다음번엔 반드시 파란색을 볼거야.
다시 숲으로 들어오고 얼마되지 않아 스코비아의 상태가 더 심각해졌다. 호홉이 점점 가빠지고 그냥 서있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아까보다 더 추워진것같아서 옷을 좀 더 끌어당겨 입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여전히 춥다. 이제는 나까지 머리가 어질어질하기 시작했다.
“이픈!”
갑자기 왠 고함소리가 귀를 찌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리는 꽤 정확하게 그리고 크게 들렸다. 가슴 속이 텅 비어버린 것을 느끼면서 스코비아를 쳐다봤다. 스코비아는 옆에 있던 나무에 의지해 겨우 서있었다.
난 왜 이런거지. 스코비아 말을 좀 더 귀담아듣고 어떻게든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었는데. 그 놈의 바다같은거 나중에 얼마든지 보면 됐었는데. 잠깐 그 때는 스코비아도 아무말 없었잖아. 아니지, 그냥 상태가 안좋아서 가만히 있었을 수도 있어. 그냥 물어보기라도 했어야했는데. 뭐야 이거. 이제와서 이렇게되면 어떻게해야돼? 아, 할아버지, 베젠트.... 리슈... 리슈넬 언니...
스코비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놀라거나 뭔가 말을하거나 그런 걸 하고있을 틈이 없었다. 돈주머니 스코비아가 가지고왔었지. 스코비아 허리춤의 돈주머니를 확인하고 내 웃옷을 벗어 스코비아에게 덮어줬다. 스코비아는 미동도하지 않고 간신히 숨만 내쉬고있었다. 갑자기 얼마전에 스코비아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숨을 한번 들이키고 나만 들을수있을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려본다.
“아무래도 나같은 애보단 스코비아가 낫겠지...”
나는 근처에 잔뜩있는 긴 풀들을 뿌리째 뽑아 재빨리 스코비아 주변에 어색하지 않게 옮겼다. 별빛이고 달빛이고 나무가 가리고있어서 깜깜할 뿐인 여기서는 자세히 조사하지 않고는 이걸 발견하지 못할 거야. 그럴거야. 아니 그래야해.
그리고나서 바로 뛰었다. 시간이 없다. 얼마뒤면 사람들이 이 근처까지 올 것이 확실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야한다. 멀리서 스코비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고있다.
도착했다. 새까만 바다가 보이는 절벽 위. 여기까지 멈추지않고 달려오느라 숨이 차다.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아쉽다. 책에 쓰여진 바다는 하늘같이 파란색인데 지금 내가 보고있는건 밤하늘같은 검은색이다. 바다도 하늘과 같이 색이 두 종류인 걸까.
바다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이 소리를 내기위해서 내가 상상한 건 리슈넬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때 내지를 수 없었던 비명. 그걸 지금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리를 한번 지를 때마다 머리 속이 점점 멍해져간다. 절벽 끝에서 소리를 다 지르고 엎드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계속 눈물을 훔쳐보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이러긴 싫다. 그런데 멈출수가 없다. 몸에 힘이 빠지고있지만 나는 쓰러지지않을거다. 절대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을 겸허하게 장식할 거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떻지? 별의별 생각이 마구든다.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계속 상상하면서 계속 후회한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일들을, 리슈넬 언니와 스코비아와 같이 그 집에서 살았을 때... 그 때를 계속 회상한다.
얼마동안 이 상태로 있었을까? 발소리가 나길래 뒤를 돌아봤다. 아까전 소리로 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았을 거다. 남자들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5명이 조금 넘어보인다. 아직도 내 얼굴은 눈물로 넘쳐흐르고 있다. 아직도 내 마음은 어렸을 때를 회상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감상적이 된 시간이 너무너무 짧다. 뒷걸음질을 치면서 맨 앞에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기분이 나쁘다.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내 왼쪽발은 허공에 떠있었다. 점점 몸이 뒤로 넘어질때 그 남자가 갑자기 다가가 내 웃옷을 잡았다. 아마도 내 손을 잡으려했던 걸테지. 아주 잠시 내 몸이 쓰러지는 것이 멈췄다. 하지만 내 옷의 아주 작은 부분만 잡았던 남자의 손에서 옷이 빠져나온다. 밤하늘이 보이다가, 검은 바다가 보인다.
그리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작은 단층 집 뒤에는 이제는 죽어버려 말라가고있는 나무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살아있을 적엔 그 커다란 몸과 팔로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며 멀리서 지나가던 이도 집과의 조화에 감탄했었던 그 나무 밑에는 이전에 살고있던 사람들이 만들었었던 텃밭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었다. 집은 사람의 모습을 본지 오래라 많이 낡았고 주변에는 풀들이 제각각으로 자라있었다.
그 나무와 집으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그녀는 문득 걸어오던 걸음을 멈추고 집을 지긋이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직 그대로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