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리넨의 서재

할아버지와 베젠트가 떠난날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꽤 지났다. 이쯤이면 돌아올때도 된 것 같은데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스코비아와 함께 대충 청소를하고 서고로 들어왔다. 밖의 날씨가 꽤 추워진것을 서고의 차가운 공기로 알 수 있었다.

베젠트의 원고가 있었던 책상 위는 지금은 깨끗하게 치워져있다. 요근래 나나 스코비아나 서고를 들어오지 않았더니 책상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아있다. 일단 베젠트 책상위를 입으로 바람을 불어 먼지를 날려보내고 손으로 남아있던 먼지를 깨끗하지는 않지만 보기좋게 치웠다. 책상 밑에 있던 의자를 꺼내 앉아 봤다가 다시 일어나 책장에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옛날에 읽었던 한 책의 제목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그 책이 이 책장에 있을지 알 수없지만 일단 찾기 시작했다. 책장의 책들은 제목 순으로 가지런하게 정돈되어있다.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스코비아의 손길이 여기에 미쳤을것이다. 손으로 책들을 흩으면서 제목들을 읽었다. 한참 동안 여러 책장들을 뒤지다가 어느 한 책장의 맨 아래 중간쯤에서 손이 멈췄다.

“찾았다.”

어느 왕자님의 여행. 어릴 때 자주 읽었던 그 책이다. 책을 들고 베젠트 책상으로 걸어갔다.




스 코비아가 감기에 걸렸다. 며칠전부터 기침을 하고 밤이되면 멍해지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열이 펄펄 끓는다. 스코비아를 눕혀놓고 아침으로 매일 먹던 밥대신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작불에 신경써가면서 죽을 젓고있자니 어릴때 감기에 걸렸던 일이 생각난다. 스코비아하고 리슈넬 언니가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간병을 해줬었다. 그때는 몸도 아프고 정신도 몽롱해서 그저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고마운 일이었다.

죽을 두 그릇에 담아 손에 각각 한 개씩 잡고 몸으로 문을 열어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스코비아가 윗몸을 일으켜서 벽에 기댔다. 스코비아 옆에 앉아서 한 그릇을 내밀었다. 죽을 건네받은 스코비아는 머리를 한번 휘저은 다음에 천천히 죽을 떠 먹었다.

“할아버지하고 베젠트 언니는 감기에 걸리면 안될텐데.”
“아이고, 스코비아씨. 자기 몸이나 잘 관리하세요.”

스 코비아가 죽을 떠 먹으며 힘없이 웃었다. 말은 그렇게했어도 나도 할아버지와 베젠트가 걱정이 되긴한다. 우리야 여기서 편히 쉬고있지만 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어디하나 아프면 고생이 심할텐데... 갑자기 스코비아가 나오는 기침을 입을 꾹 막고 참는 바람에 사래가 걸렸는지 켁켁대며 눈물을 찔끔 흘린다. 나는 황급히 물을 한컵 떠오기위해 일어섰다.




잠 을 자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잠이 깼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번 만져보고 다시 잠자리에 누우려는 순간 옆자리가 비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코비아는 저녁 때 열이나서 억지로 겨우 잠들었었는데 역시나 선잠이었는지 중간에 일어난 것 같다. 좀 있다가 다시 돌아올테니까 다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은 안오고 정신이 점점 또렷해져서 짜증을 내며 다시 일어났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갑자기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을 한 아수씨가 황급히 들어왔다.

“아수씨?“

”빨리 나가자!“

뭔 말인지 알수없어서 잠시 생각하려는 사이 아수씨가 내 손을 낚아채서 끌어당겼다. 어정쩡하게 일어나면서 아수씨에게 끌려가면서 뛰다보니 저편에서 스코비아가 달려오고있는 것이 보였다. 스코비아는 손에 내 옷을 들고있었고 본인은 이미 자기 옷을 입고있었다. 스코비아는 나한테 시선을 잠시 마주치는가 싶더니 이내 아수씨에게로 옮긴다.

“아수 오빠. 놓고온게.”

말 은 제대로 끝마지치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스코비아는 내가 옷을 넘겨주고 곧바로 지금 우리가 왔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스코비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손에 들려진 옷을 입었다. “가자.” 내가 옷을 입자마자 아수씨가 잡은 손을 당기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예요?!”

목소리를 높여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으려고했지만 아수씨는 아무 얘기도 해주지않았다. 뛰는것이 힘들어서 대답을 못 들은것이 크게 서운하지는 않다. 아수씨와 내가 도착한 곳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있는 서고였다. 방금 잠에서 깨서 그런지 옷을 입고있었지만 꽤 추웠다. 아수씨가 벽쪽으로 가더니 뜬금없이 벽을 손등으로 툭툭 두들기고 다닌다.

“아수씨. 무슨 일이죠?”

아까 했던 말을 또 하는건 의외로 버겁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아수씨는 계속 벽을 두들겼다.

“베젠트와 할아버지가 잡혔다.”
“잡혀? 무슨 말이예요?!”
“둘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수씨가 말을 하다가 끊더니 근처에 있던 망치를 들고 있는 힘껏 벽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돌과 금속이 맞닿는 쩌렁쩌렁한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가면서 파편이 여기저기 튀었다. 뭐하는거야, 지금?

“그러다 부숴지겠어요!”

“부수려고 이러는거야!”

그 순간 굉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내렸다. 부숴진 벽의 뒤편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긴 통로가 있었다. 서고에 저런 비밀통로가 있었던거야? 아니, 도대체 왜 저런게 여기에 있는거지?

“꾸물거리면 잡혀. 스코비아가 빨리 와야할텐데...”

아 수씨가 들고있던 망치를 원래 자리에 갖다놓았다. 그런데 저 망치 원래 저기있었던 거였나? 잘 신경을 쓰지않아서 모르고있었는데. 잠시 가만히 있다가 아까 했던 말을 이으려고 입을 열려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스코비아겠지?“여기요!”스코비아가 숨을 헐떡이면서 서고로 들어왔다. 이제 아까 말했던 놓고 온것이라는 것을 알수있었다. 옷장 밑 구멍에 있는 돈주머니가 틀림없었다.

“긴히야. 빨리가자.”“자, 잠깐. 왜 우리가 도망쳐야 되는데?”

“설명은 나중에 스코비아가 해줄거야. 빨리 가.”

하 지만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하라면 하라는대로 움직이기에는 내 안의 반발심이 너무 컸다. 그냥 가만히 서있으니 스코비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애원하듯 내 손을 힘껏 끌어당겼다. 어쩔수없이 스코비아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수씨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고 입구에 너지러져있는 돌들을 구석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잠깐! 아수씨는요!”
“난 안가.”
“왜요?!”
“할아버지하고 베젠트를 잡고 여기로 오고있는건 우리 집 놈들이야. 그 놈들이 날 어떻하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너희는 빨리 가는게 날 돕는거야.”

어? 여기로 와?

“아수 오빠 집의...”

스코비아가 놀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아까 전의 아수씨 얘기를 생각해보면 스코비아는 미리 무슨 말을 들은 것 같지만 이건 처음들은 모양이다.

“내 생각에도 너희들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러려고하니까.”
“왜 저희를 도망치게 해주는거죠? 이런 비밀통로까지 억지로...”
“베젠트가 부탁했어. 자, 빨리가.”

나 는 멍청히 서있었지만 스코비아가 내 손을 잡아 당겼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다보니 입구가 무언가로 막히고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아수씨가 아까 돌을 치웠으니까 근처에 있던 책장으로 막고있는 것 같다. 뭐야 이거. 왜 잠다가 일어났다가 이런 일을 겪어야되는거야! 전에도 그랬고! 전에도...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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