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리넨의 서재

아수씨가 지난번에 베젠트를 만나려 온 뒤로 서점을 오지않은게 벌써 2~30일 정도 된다. 약간 오차가 있긴 하지만 전에는 일정한 주기로 들렸었는데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아수씨가 베젠트 도와준다고한다고 했는데 어떤식으로 도와준다는거지? 역시 부잣집이라서 돈으로 지원해주는건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으려니 왠 뚱뚱한 부자가 한명와서 책을 하나 주문한다. 몇 번 서점에 온 얼굴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할아버지에게 책을 확인-하는 척-하고 서고로 들어갔다. 스코비아는 베젠트를 도와주고있어서 얼마전부터 내가 직접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보니 두 사람 다 책상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의외의 광경에 뭐하는건지 물을려고 다가갔다.

“책 안 써요?”
"아, 맞다. 긴히야. 물어볼게 있는데.“
”짧은거요?“
”아니 긴거.“
”그럼 좀 있다가요. 일단 책 좀 찾아서 나가야해서.“
”내가 찾아줄게. 뭔데?“

가만히 있던 스코비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얼버무리듯이 책 이름을 말하니 스코비아가 책장들 사이로 들어가서 책을 찾기 시작했다. 한숨 비스무리한게 무의식적으로 나오고 나니 베젠트가 물어볼 것을 말했다.

“긴히야. 넌 아수를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뇨?”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냥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그런거 있잖아.”
“그런거라면 베젠트 언니가 훨씬 잘 알고있지 않아요?”
“아니, 그냥 네가 느낀걸 알고싶은거야.”

아수씨에 대해 느낀거라고? 음, 아수씨는 일단 늙은 부자들같이 거들먹거리지않고, 잘 웃어서 그런지 분위기도 괜찮고. 다른건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좋은 사람 같은데요.”
“아니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줘.”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게 들켰나? 그래, 조금만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그래도 뭔가 떠오르지 않을까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려봤지만 역시 생각나는게 없는걸.

“좋은 사람 맞는거 같은데요.”
“그렇지? 그렇지?”

어 차피 내 말에 동의하는 거면 뭐하러 두 번 물어본거야. 베젠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괴고 뭔가를 잔뜩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대답해줘도 아무 해결도 안되는거잖아. 그러는 사이 스코비아가 내가 부탁한 책외에도 다른 책을 하나 찾아가져왔다. “고마워”라고 말하자 스코비아는 씩 웃으면서 자리에 앉아 자기가 가져온 책의 첫장을 펼쳤다. 제목은 ‘바위를 부수는 방법’. 엑?




“나갔다올게요.”
“그래라.”

베젠트가 여전히 흔들의자에 누워있는 할아버지에게 보고하듯 말하고 서점을 나섰다. 나는 아무말도 없이 -아마도- 벙찐 표정으로 이미 베젠트는 없는 거리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일부러 그런것같이 보이러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간에, 오늘같이 멋지게 보인 베젠트는 처음이었다. 평소 입었던 평범한 옷이 아닌 부자들이 입을 법한 번쩍이는 옷을 입은 것 만으로 그렇게 사람이 달라보일 줄은 몰랐다. 그 차림새를 보아하니 대충 어느 자리를 갈 것인지 짐작이 되었지만 마음 한 켠에 불편한 감정이 자리잡았다. 뭐야 이 느낌은.

“그런데 할아버지, 언니 오늘 뭐하러 가는거예요?”

스코비아가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베젠트가 스코비아한테도 얘기를 안했나보다. 아니 이건 우리한테 말 못할 사항이라도 되나?

“아마도 결혼하러 가는 걸 거다.”

“결혼?”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어서 그런지 크기를 조절하지 못했다. 때문에 할아버지와 스코비아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굴이 새빨게 지는게 느껴져서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 상태로 계속 있으면서 두 사람이 말하는걸 듣기만했다.

“그런데 결혼이라면 누구하고?”
“아니, 아직 결혼은 아니고 흠... 뭐랄까. 승낙하러 가는거겠지.”
“그러니까 상대는 누군데요?”
“아수지.”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보러했는데 뭔가 납득한 표정의 스코비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난 좀 충격적인데.

“둘이 그런 사이였어?”

아, 괜히 말한것 같다. 스코비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보고있다. 이건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뭔가 다른걸 말해서 분위기를 전환해보고 싶은데 그 뭔가가 전혀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데 할아버지.”

스코비아가 말을 걸자 할아버지가 “음?”하며 반응한다. 일부러 그랬는지 원래 그럴려고했는건지는 몰라도 스코비아가 나를 구해준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걸로 이런 느낌을 받아도 되는거야?

“아수 오빠는 부잣집이죠?”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보통 사람하고 부잣집 사람하고 결혼할 수도 있는거예요?”

할아버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스코비아의 물음에 뭔가 감동적이고 깨달음을 얻을수있는 대답을 해주려는 것이거나 베젠트의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 심사숙고하는 것일수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나 역시 대답을 기대했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입을 열기까지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스코비아야. 세상 사람들은 다 같은 사람이야. 보통 사람, 부잣집 사람. 그렇게 구별되진 않는단다.”
“하지만...”
“물론 부자는 부자끼리만 노니까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다를거 없어. 사람이란건 다 똑같은거야. 서로 좋아하면 같이 살면 그만인거야.”

사람이란건 다 똑같아? 아니야. 똑같지않아. 적어도 남자와 여자는 틀리다구. 똑같지않아. 그건 누구보다 잘 알아. 스코비아도 잘 알아. 아, 기분 나빠졌어. 그것도 엄청나게.

“하지만 아수오빠 부모님이 반대할 수도 있잖아요.”

할아버지는 뭔가 생각하는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또 방금 전에 한말같은걸 하려는 것일까?

“너희들은 아직 내 이름 모르지?” 할아버진 왠 뜬금없이 이름 얘기야?

“흠... 내 이름은 아수다.”
“예?”라고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오면서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대충 이해했다. 할아버지 이름도 아수였구나.

“뭐 이름은 같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긴하지. 하지만 같은건 이름만이 아니다. 피도 같지.”
“예?”

이번에는 스코비아가 좀 큰소리로 놀랐다.

“아수가 내 손자다. 할애비 승낙은 이미 얻어놓은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수씨가 할아버지 손자? 그럼 아수씨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 부른게 우리가 부르는 그 의미가 아니라 친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이었다는거? 어라?

“잠깐, 그럼 베젠트 언니는요?”
“베젠트? 무슨 말이냐.”
“베젠트 언닌 할아버지 손녀 아니예요?”
“아니. 베젠트는 나하고는 남인데.”

정신이 확 달아다는 것 같다. 베젠트가 할아버지 손녀가 아니라 그냥 남? 같이 사는데? 같이 살지않는 아수씨는 할아버지 손자고?

“하지만 아수씨는 같이 살지 않잖아요?”

생각한게 그대로 입밖으로 튀어나왔다. 말을 한 직후 가족이라도 같이 안 살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그럼 베젠트 언니는 어떻게 할아버지하고 같이 살게된거예요?”

다행이었다. 스코비아가 내 말에 이어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잠시 보는듯 싶더니 스코비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원래는 아수가 계산대 일을 했었지. 그게 아마 18년 전이었나?”
“18년전이요?”

우리가 막 태어났을 땐가? 아수씨도 서점에서 일했었구나.

“아수하고 같이 책을 받으려고 브리크테나를 막 나왔을 때 였는데 요 앞 산속에서 애가 우는 소리가 들리길래 가봤더니 여자애가 하나있었지. 그게 베젠트였어.”

할아버지는 말하면서 그 때 그 장면을 회상하는듯 뭔가 굉장히 낭만적인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리도 산 중간쯤에 있었는데 그 은색개가 거기로 데려다줬었는데. 스코비아가 산딸기를 잔뜩 따와서 그걸로 며칠을 버텼던 것 같은데. 그러다가 내려왔엇지.

“그럼 베젠트 언니는 그때부터 일한거예요?”
“처음에는 그냥 며칠만 데리고있을 생각이었는데 아수하고 잘 놀기도하고 똑똑하기도 하고 그렇게됐지.”
“그럼 아수씨는 왜 서점에서 일하는걸 관뒀어요?”
“그만둔게 아니고 내 아들이 걔를 잡아끌고갔지.”
“아들? 아수씨 아버지요?”
“그래. 내 아들놈은 내가 이 일하는걸 싫어했으니까.”

질문 할 것이 떨어지고 할 말도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동안 신경은 커녕 알고싶지도 않았던 것을 한꺼번에 와장창 알아버려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베젠트랑 아수씨는 18년전부터 서로 알고 지냈던 거구나.

“할아버지. 아수씨가 정말 할아버지 손자맞아요?”

가만히있던 스코비아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얘는 지금까지 뭘 들은거야? 할아버지도 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스코비아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그럼 할아버지도 저 부잣집 사람들같은 분이예요?”
“아니.”

할아버지의 한마디에는 단호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가지고있어서 그 말을 듣는순간 몸이 멈춘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화로인해 몹시 일그러져있었다.

“나는 그런 쓰레기같은 새끼들하곤 다르다.”

할아버지가 욕하는걸 본건 처음이었다. 방안에서 스코비아가 글을 쓰고있는 동안 머릿속으로 할아버지 얘기를 정리해봤다. 결론의 뭐 베젠트와 아수씨가 결혼하게 된다는 얘긴데 할아버지는 왜 아수씨랑 같이 살지않지? 얘기를 듣자니 왠지 아수씨 부모님하고 할아버지하고 사이가 안 좋은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건가? 아, 머리 아프다. 그냥 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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