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리넨의 서재
다음 날부터 나는 할아버지와 같이 서점 입구에서 잘 보이는 계산대에 서게됐다. 할아버지는 처음 만난 날 보았던 흔들의자를 계산대 옆으로 가져와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고 나는 계산대 뒤에 자그마한 의자를 놓고 앉았다. 원래 그런건지 아침이라 그런지 몰라도 밖에 돌아다디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서점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없었다.

“손님이 이렇게 안오네요. 앞에서 소리라도 지르는 게 좋지않을까요?”

할아버지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내가 뭐 잘못한 것마냥 날 쏘아봤다. 내가 한 말에 기분이 상했나? 할아버지는 그런 기운을 보이긴했지만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까 손님이 적은 건 당연한거야.”

그 말에 리슈넬 언니가 가지고있던 수많은 책들이 떠올랐다. 항상 봐도봐도 어디에있었는지 모를 또다른 책들을 리슈넬 언니는 가지고있었다.

“그럼 보통 사람들은 서점을 안 오나요?”
“오기야 오지. 가끔씩 온다. 가끔씩.”

‘흐 음’하며 콧소리를 내고 가게 밖을 주시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서점의 계산대에 있는 날보고 희귀한 것을 본 것같은 표정을 지었다. 되도록 그런 것들을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손님을 대비하고 있었다. 리슈넬 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게 무료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할아버지는 오전이나 오후나 불규칙하게 책을 가져오라고 시켰었다. 그런데 오늘은 스코비아에게 어떤 책도 가져오라는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가 내 말에 반응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책 가져오라고 안하세요?”

“오늘은 왠지 책을 읽고 싶지가 않구나.”

나는 생각했다. 방금 할아버지가 내뱉은 저 말의 의미를.

“내가 읽었다.”

망연자실한채 껄껄대고 웃는 할아버지를 보고있으려니 그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서점 안쪽 안 보이는 곳에 있을 스코비아가 생각났다.

“뭐 손님이 왔을 때 적시에 책을 가져와야하기 때문에 훈련 좀 시킨 것 뿐인데 뭘 그러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저 글 읽을 줄 알아요’라고 몇 번이나 말해봤지만 그 말은 결국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가 말하지않기로 이미 다짐했을뿐더러 그 순간 손님이 왔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베젠트가 안 보이더니 사람이 바뀌었네요?”이 남자는 키가 훤칠히 컸고 머리는 단정했다. 얼굴은 조금 통통했으며 기분좋은 미소에 호감이 갔고 입고있는 옷은 보통 사람들이 입는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일단 저렇게 빛이 반사되는 실이나 옷감을 쓴 옷은 쉽게 볼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나를 보며 웃고있었다.

“안녕?”
“아, 아, 안녕하세요.”

어라, 왜 말을 더듬지?

“아수.”

할아버지가 묻자 아수라 불린 남자는 시선을 돌렸다.

“부탁한 책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어어? 말한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예요?”
“근처를 둘러보고와. 그 사이 준비할테니까.”
“기다리면 안되나요?”
"아수.”

할아버지가 목소리를 낮게깔고 자뭇 근엄하게 말하자 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점 밖으로 나갔다. 조그맣게 “못 이긴다니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사라지자 할아버지는 내내 앉아있던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스코비아가 있을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조그맣게 할아버지와 스코비아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려왔다.

서점 밖 거리에 시선을 두고있자니 지나가던 사람들과 잠깐잠깐 눈이 마주친다. 그 사람들 중에서 방금 전 만난 아수같은 옷을 입고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수수하고 조금은 더럽혀진 옷을 입고있었다. 그러고보니 서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여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여자들은 아버지와 같이 걸어가는 어린 애들 뿐이었다. 여자들은 아예 이 쪽으로 오지않는 것일까?

“할아버진 아직 책 찾는 중이시니?”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수가 가게 입구에 서있었다. 시간이 벌써 상당히 지난걸까?

“네... 들어가셔서 안 나오시네요.”
“흐음. 이상하네. 평소라면 금방 가져오실텐데.”

그 말에 괜시리 우리가 이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불편해졌다. 분명 스코비아는 그 책을 이미 찾았을 테지만 평소에 그랬듯이 시간을 끌고있을 것이다. 우리가 처음 책을 가져왔을 때보다는 시간끄는것을 단축시켰을테지만...

“여깄다.”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한권의 책이 아수에게 날아와 가슴에 부딫혔다. 아수는 가슴을 맞아서 아플텐데도 팔을 들어 책을 움켜잡았다. 그는 잠시 동안 콜록대고 난 뒤에 책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귀한 물건을 이렇게 다뤄도 되는겁니까?”
“된다.”

아수는 화를 낼것같으면서도 단념하는듯한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책을 살폈고 할아버지는 흔들의자에 도로 앉아 의자를 흔들었다. 그러고보니 아수도 할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그나저나 베젠트는 어디갔어요?”

아수가 책을 여러장 한꺼번에 좌르륵 넘기면서 물었다.

“놀러갔다.”
“놀러가요? 어디로?”
“몰라 그건.”

음, 저 짧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무뚝뚝한 말투. 듣고만있는 내가 오히려 짜증이 나려고한다. 그런데 아수는 익숙한건지 체념한건지 아니면 둔한건지 몰라도 아무런 기분 변화도 없는 것 같았다. 책을 대충 다 흩어본 아수는 나에게 은색 동전을 하나 건네줬다. 그러자 대뜸 할아버지의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수야. 책값에 비해 너무 비싼데.”
“성의입니다. 성의. 이 책 구하시느라 고생하신거 다 알아요.”

할아버지는 혀를 쳤지만 아수는 신경쓰지않고 사람들이 통행하는 거리로 몸을 옮겨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계산대 밑에 있는 금고를 열어 동전을 넣다가 금고에있는 다른 동전들은 모두 갈색아니면 누런색이란걸 깨달았다. 은색 동전은 방금 받은 동전 하나 뿐이었다.

"할아버지. 방금 받은 은색동전이 그렇게 비싼건가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동전의 가치를 설명하기위해 가장 적합한 말을 찾고있는 것 같았다.

“그 동전 하나면...”
“네?”
“우리가 한 달동안 일 안하고 먹고 살 수 있지.”





“스코비아. 그 돈들어있던 주머니 어디있는지 볼 수 있어?”
“응. 왜?”

서점에서 일하며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은빛동물이 줬던 돈주머니를 스코비아에게 맡겼었다. 나보다는 항상 차분하고 거의 모든일에 섬세한 스코비아가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볼게 있어서.”

스코비아는 뭐 볼게있냐는 듯한 눈초리로 날 봤지만 별 말않고 주머니를 꺼내주었다. 스코비아는 일단 방 구석에 있는 옷장을 잠시 끌어내고 바닥에 깔려있던 나무를 들어냈다. 그리고 손을 그곳에 집어넣고 잠시동안 찾더니 이내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같이 생활하면서 나 모르게 언제 저런걸 만들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조심스레 주머니를 손에 올리고 입구를 열어 보았다. 안에 수북히 쌓여있는 것은 노란 동전들이었다. 촛불을 끄고 하나를 꺼내 달빛에 비춰보니 계산대 밑에 있는 누런 동전들보다 좀 더 밝고 뚜렷한 색을 보이고있었는데 그건 이 동전들이 새 것이라 그런 것 같았다.

역시, 비싼 돈을 그냥 얻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아수씨가 왔을 때는 할아버지가 직접 책을 가져왔지만-뭐, 스코비아에게 전하기만 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내가 스코비아에게 가서 책을 받아왔다. 할아버지가 종이에서 책을 찍어주고 내가 그 위치를 기억해서-하는척해서- 스코비아에게 알려주는 형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일도 하루에 다섯 번을 할까말까했다. 여전히 손님은 적었다. 가끔씩 오는 손님들은 모두 고급스러운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하고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책을 찾는 경우는 드물었고, 여태까지는 모두 미리 예약한 책을 사러 온 것이었다. 당연히 전부 남자였고 나이먹은 아저씨들보다 아수씨 처럼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 남자들은 모두 날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처음보는 동물을 보는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비록 동전을 직접 건네주지않고 위에서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줘서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되도록 친절하게-그들 눈에 어떻게 비췄을지 몰라도- 대했다.

그리고 이전까진 잘 몰랐지만 책은 보통 음식 재료 같은 것보다 값이 훨씬 비쌌다. 사람들은 항상 많은 수의 동전을 나에게 줬고 그 동전들은 리슈넬 언니가 야채등을 사면서 썼던 동전과 비교하면 거의 수십배에 가까웠다. 그렇다보니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보통 사람이 생활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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