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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0)

“물론 없겠죠. 그리고 그분이 일 년 열두 달 집을 비운다 해도 당신이나 그분이나 가급적 편지를 주고받지 않겠지요. 그러니 용건이 생길 거란 생각이 들겠어요? 남자 형제들은 참 이상해요! 세상에 없는 시급한 경우만 아니면 편지를 절대 쓰려 하지 않으니까요. 말 한 마리가 병이 났다거나 친척 한 분이 사망했다든가 하는 말을 전하려고 어쩔 수 없이 펜을 들 때도 최대한 말을 줄이고요. 남자들 문제는 하나뿐이에요. 저도 그 문체를 잘 알죠. 헨리 오빠만 해도, 다른 면에서는 언제나 아주 모범적인 오라버니로 저를 아끼고 속을 털어놓고 상의도 해 오고,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여태껏 편지지 앞면을 넘긴 적이 없답니다. 대개는 고작해야 ‘사랑하는 메리, 방금 도착했다. 배스는 만원이고 모두 여전하다. 그럼 안녕.’하는 수준이라고요. 이게 진짜 남성적인 문체고, 완벽한 오라비의 편지인 거죠.”


(137-138)

“이 나라 전체의 미덕과 악덕의 비율에 대해서는 대도시가 표본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 최고의 도덕성을 대도시에서 찾지는 않잖아요. 종파를 막론하고 덕망 있는 인물들의 선행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대도시가 아니지요. 목사의 영향력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곳 또한 결코 대도시가 아니고요. 사람들은 훌륭한 설교자를 따르고 칭송하지요. 그렇지만 좋은 성직자가 교구와 이웃에 유용한 존재인 것은 훌륭한 설교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성직자의 개인적 인품을 알 수 있고 평소 품행을 지켜볼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교구이야기지만요. 런던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죠. 교구만이 너무 많아 성직자는 눈에 띄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니 사람들은 대개 성직자를 오로지 설교자로만 알게 되지요. 그리고 성직자가 일반 예의범절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지만, 부디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성직자가 훌륭한 교육을 주관하거나 세련된 예의를 단속하거나 세속적 예법에 통달한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예의범절은 어쩌면 행신(行身)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올바른 원칙, 종교적 가르침을 준수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바른 행실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직자는 바로 이런 가르침을 전하고 권장할 의무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본분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에 따라 일반 사람들이 달라지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509)

잠시 애써 마음을 추스른 후 패니가 말했다. “난 여자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라도 여자 쪽에서 마다하거나 적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라도 어쩌다 마음만 주면 상대편에서는 무조건 좋다고 할 거라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또 누구분들 생각대로 크로퍼드 씨가 모든 조건을 갖춘 분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어떻게 그분의 마음과 같을 수 있었겠어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뜻밖이었거든요. 이제껏 나를 대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사실 그분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도 분명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텐데, 그런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처지에 크로퍼드 씨한테 기대를 품는다면 지극히 오만한 생각 아닌가요? 그분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누이분들부터 그렇다고 볼 거예요. 그분은 별 생각이 없는데 그런다고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랑 고백을 받는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어요?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만큼 내 입장도 헤아려 주어야지요. 그분의 가치를 높게 볼수록, 내가 그분을 마음에 두는 게 더욱 부적절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리고…… 이번에 보니 여자의 속성에 대해 나하고는 생각이 아주 다른가 봐요.여자가 구애에 그렇게 금방 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668-669)

이것만도 심각한 실책이었다. 그러나 점차 이것도 잘못되었지만 자신의 교육 방침에서 가장 끔찍한 과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방침 자체에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실책의 부정적 영향도 많이 사라졌을 터였다. 그는 원칙이, 적극적인 원칙이 결여되었던 게 아닌가, 욕심과 감정을 유일한 방비책인 도리에 대한 의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에게 이론적인 종교 교육은 시켰으나, 그것을 나날의 실천으로 옮기도록 요구하지는 않았다. 딸들에게 어릴 때부터 심어 준 빼어난 품위와 교양이라는 목표는 이런 면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도덕적 심성을 심어 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딸들을 착한 사람으로 키우려 했지만, 지력과 예의범절에만 신경을 썼지 성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고, 절제와 겸양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딸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사람들 중 누구도 가르침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79)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패니에게 깊은 관심을 가져 왔고, 그 관심은 연약하고 순진한 더없이 사랑스러운 매력에서 시작되어, 갈수록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에 탄복하면서 완성된 감정이었으니, 이런 마음의 변화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패니가 열 살 때부터 그는 언제나 그녀를 사랑하고 인도하고 보호해 주었고, 그의 보살핌은 그녀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가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친절한 배려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매우 각별하고 깊은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녀가 맨스필드의 어떤 식구보다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그러니 이제 와서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있다면, 반짝이는 진한 눈동자보다 부드러운 연한 눈동자를 선호하게 되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늘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늘 그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그의 감정도 최근에 실연을 겪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적절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만큼, 그 부드러운 연한 눈동자가 우위를 점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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