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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엄마의 말뚝
  • 박완서
  • 20,700원 (10%1,150)
  • 2012-01-22
  • : 6,545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박완서 님께서 돌아가신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구나. 이젠 이전 시대의 작가가 되어 가시는 것 같구나. 아빠가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할 때는 박완서 님의 후반기 작품들이 출간하던 시기라서, 그 당시에 출간했던 장편 두어 편을 읽었고, 돌아가신 후에 예전 소설집과 에세이 등을 읽었는데, 쓰신 작품 수에 비해 아빠가 읽은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단다. 헤아려 보니 다섯 권을 읽었더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엄마의 말뚝>은 세계사라는 출판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으로 출간한 것 중에 한 권으로 연작소설 <엄마의 말뚝>과 단편들을 엮은 책이란다. 아빠가 알기로 박완서 님은 생계형 작가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그가 쓴 소설들이 당시의 일상을 다룬 소설들이 많단다. 그래서 박완서 님의 소설을 보면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과 생활상과 사회문제를 알 수 있었단다. 잔잔하면서 따뜻한 소설을 일상의 언어로 재미있게 쓴 소설을 찾는다면 박완서 님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구나.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 쓰인 소설들이라서 오늘날의 감각과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 나름대로 색달라서 좋았단다.

 

1.

먼저 <엄마의 말뚝>은 세 편으로 된 연작 소설이란다. 지은이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단다. 먼저 <엄마의 말뚝 1>의 이야기를 해볼게. 주인공 나는 1930년대 개성 근처 박적골에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는 오빠 공부 때문에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나도 서울에서 학교를 보내려고 엄마는 박적골에 내려와서 나를 서울로 데리고 가려고 했어. 조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엄마는 나를 신여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완강하게 주장하셔서 결국 나는 엄마를 따라 서울에 오게 되었어. 당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의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어.

1930년대면 아직 일제 시대 아니니. 서울 현저동에 있는 달동네 초가집의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아서 늘 주인집 눈치를 봐야겠어. 엄마는 삯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고 단칸방에 세 들어 살지만, 자존심만큼은 하늘을 찌르셨단다. 그리고 엄마의 교육관도 확실해서, 친구도 엄마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곧바로 못 만나게 하고 외출 금지 당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단다.

주인공 ‘나’가 학교에 들어갈 즈음, 먼 친척집에 주소를 옮겨서 문 안에 있는 학교에 입학시킬 정도로 학구열이 높으셨어. 그렇게 성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만큼 고된 등하굣길이었단다. 월세살이를 하다 보니 주인집 눈치를 보게 되는데 별 일 아닌 일에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도 있었어. 자존심 센 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사를 가기로 했는데 돈이 부족했어. 시골 조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집을 구했단다. 넉넉하지 않은 돈으로 집을 구하다 보니 더 위쪽으로 올라가야 했어. 지금 사는 곳도 비탈길을 따라 한참 올라와야 하는데,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집을 마련했단다.

이사하는 날 엄마는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면서 좋아하셨어.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단다. 오빠는 든든한 회사에 취직을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지냈어.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서울살이도 녹록지 않았어. 잠시 시골로 피신해서 약 6개월을 살다가 해방을 맞이했단다. 오빠는 서울 문 안에 집을 마련하였고, 그 이후에는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엄마는 처음 서울집은 현저동 그 집을 못 잊지 못하셨단다.

….

<엄마의 말뚝 2>에서는 시간이 흘러 집 ‘나’는 결혼도 하고 오남매의 엄마가 되어 어느 정도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었어. 그런데 ‘나’는 집을 비우면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징크스가 있었어. 어느날 친구 집에서 놀고 온 날이 있었는데, 집에 오니 엄마가 빙판길에 넘어져서 다리 골절상을 입고 입원하셨다는 거야. 당시 ‘나’의 엄마는 오빠의 큰 아들이 모시고 있었어. 병원에 가니 의사는 엄마가 여든여섯 살의 고령이라서 깁스로 뼈가 붙기 어렵다면서 수술을 하자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 수술을 했단다.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라고 했어. 수술에서 깨어난 엄마는 헛소리를 하시고 헛것을 보는 증상이 생겼어. 엄마는 전쟁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가 있었어. 6.25 전쟁 때 오빠가 좌익 운동했다가 전향을 했는데, 북한이 다시 서울을 점령했을 때 이웃의 고발로 끌려가게 되었어. 다시 의용군을 지원해서 그냥 넘어가게 되었는데, 세 달 뒤에 이번에는 다시 국군이 서울을 점령하여 ‘나’의 집은 빨갱이 집으로 낙인이 찍혔어. 얼마 후 오빠가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빨갱이 집이라서 시민증을 얻지 못했어. 그래서 피난을 갈 수 없어서 현저동 산동네에 있는 빈집에 숨어 지냈어. 그런데 인민군에 발각되었고, 오빠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어. 다 피난 간 산동네에서 오빠의 총상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결국 오빠는 그렇게 죽었던 거야. 엄마는 오빠의 시신을 화장해서 강화도에서 고향 개풍군 쪽 바다에 날려보냈단다. 그런 아픔이 있었던 거야. 자랑스러운 아들을 그렇게 보냈으니 얼마나 가슴 아팠겠니. 그 아픔을 가슴에 힘들게 간직하고 살아가시다가 큰 수술을 하고 깨어나니 무방비 상태의 마음에서 쏟아져 나왔던 것 같구나. 전쟁은 이렇듯 보통 사람들에게 더 큰 아픔을 준단다.

….

<엄마의 말뚝 3>에서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후의 이야기란다. 엄마는 골절상 수술을 한 후 7년 뒤에 돌아가셨어. 다치시기 전에는 해마다 강화도의 지인 집에 방문하여 고향을 바라보셨는데, 다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가지 못하셨어. 엄마는 ‘나’와 장손자의 집에서 번갈아 가면서 머무셨어. 장손자도 참 착한 사람인가 보구나. 엄마는 외출도 안하고 집에서만 지냈어. 마치 살아가는 목적이 화장실 가는 것처럼 보였어.

7년 전에 다치셨을 때 엄마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단다. ‘나’는 이 엄마의 유언을 늘 마음 속에 두고 있었어.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이 일로 장손자와 의견 충돌이 있었어. 지금이야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화장이 일상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안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화장은 약간 불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단다. 결국 장조카의 의견대로 안장하기로 하고 묘지를 안칠 땅을 계약했어. 이 당시에도 장례문화는 이제 돈벌이로 전락되어서 절차 하나하나가 돈이었단다. 그렇게 <엄마의 말뚝> 연작소설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소설가의 엄마로 사신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단다. 딸이 엄마의 삶을 소설로 써주니 말이야. 엄마에게는 큰 선물이 아니었나 싶구나. 비록 그 삶이 고되고 힘든 삶이었지만 말이야.

 

2.

이 책에 실린 다른 단편 소설들 중에 세 편만 짧게 이야기해볼게.

<유실>. 주인공 김경태는 오십대 중반의 남자로 초로에 접어들기 시작한 노인으로 소개하고 있단다. 오늘날 오십대 중반이면 ‘초로’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당시에는 그렇게들 생각한 것 같구나. 김경태는 갓난아이 손주도 보았어. 5년 전 당뇨병과 폐결핵 진단을 받은 후 꾸준히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해서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단다. 하지만 당뇨병과 함께 생긴 발기부전은 여전했단다.

어느날 책 외판원이 회사에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국민학교 동창이었단다. 그 동창은 힘들게 살아왔는지 자기보다 십 년은 늙어 보였어. 그 친구가 불쌍하기도 해서 책을 계약하고 술자리고 가졌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자리여서인지 필름까지 끊겼고 낯선 여관방에서 깨어났단다. 동네도 서울이 아닌 성남이었어. 어떻게 성남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나질 않았어. 그리고 가지고 있던 삼백만 원의 어음과 아끼던 라이터가 모두 사라졌어. 여관방 주인한테 물어보니 어떤 젊은 여자와 함께 왔다가 여자가 방값을 계산했다고 했어. 김경태는 당황했어. 전혀 기억나질 않았거든.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주머니를 보니 조미숙이라는 여자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어. 그 주소를 찾아가니 조미숙은 몸을 파는 여자였는데, 자신과 몇 번의 밤일을 했다는 거야. 김경태는 자신이 발기부전이라서 밤일을 한  것이 먼 과거인데, 밤일을 했다고?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어. 조미숙이 이야기하기를 삼백만 원 어음도 직접 주었다고 했어. 김경태는 이런 일들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자기 안의 또다른 자아가 깨어나 자기 모르게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겠구나. 그런데 박완서 님께서 이런 통속 소설도 쓰셨구나.

….

<꿈꾸는 인큐베이터>. 주인공 ‘나’는 중소기업 사장을 남편을 둔 넉넉한 집안의 아내이자, 딸 둘, 아들 하나의 엄마인데, 아이들은 다 컸단다. 이웃에 여동생이 사는데 여동생은 학교 선생님이기 때문에 여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 슬기의 보호자 역할을 가끔 해주었어.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어서 대신 가서 비디오 촬영을 해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오랜만에 비디오 촬영을 하다 보니 동작법이 생각이 나질 않았어. 이것저것 만져봐도 잘 되지 않았어.

그때 어떤 남자가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는 촬영까지 해주었어. 재롱 잔치가 끝나고 그 남자와 차 한 잔 같이 하게 되었어. 그 남자는 딸이 그 유치원에 다닌다면서 맞벌이 부부라서 아내 대신 자신이 참석했다고 했어. 그 남자는 잡지사에서 일하고 있었어. 그 남자는 딸만 둘이라고 했어. ‘나’는 아들을 낳고 싶지 않냐면서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어. 당시 시대상이 아들선호사상이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열변할 정도로 당시에는 아들선호사상이 강했던 것인가?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주인공 ‘나’는 무척 무례한 행동이었단다. 아무튼 그 남자는 아들 없어도 괜찮다고 했어. 차를 마시고 헤어지는데 ‘나’는 왠지 아쉬웠어. 남자의 딸도 비디오에 담겨 있을 테니, 복사해서 주겠다면서 명함을 한 장 받았단다. 평범한 주부의 일탈이 그려지나 싶었단다.

소설 속 주인공 ‘나’도 설레는 것 같았어. 비디오 촬영한 것은 동생에서 전해주었는데 그날 밤에 연락이 왔어. 비디오 찍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면서 같이 보자고 했어. ‘나’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어. 동생과 같이 비디오를 보는데 자꾸 남자 생각이 났어. 동생한테 비디오 복사본 하나를 받아서 며칠 뒤 다시 그 남자를 만났어. 설레는 만큼 단정하게 꾸미고 나갔어. 남자는 밤샘 작업을 하고 와서 꾀죄죄했단다. ‘나’는 실망했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또다시 아들선호사상에 대해 열변을 토했어. 지난번보다 강도가 세게 이야기했어.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어. 의사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대. 의사들이 딸을 임신하면 낙태시켰는데 이로 인해 남녀 성비율 균형이 깨지고 있다면서 이것은 남편들도 다 공범이라고 이야기했어.

‘나’는 뜨끔했어. 자신도 아들을 낳기 전에 딸 하나를 낙태한 경험이 있었거든. 당시가 기억나면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낙태를 당연하게 이야기해서 그 이후로 그들을 미워하게 되었던 ‘나’가 아들선호사상을 이야기하더니… 남자와 헤어지고 ‘나’는 혼자 교외로 드라이브를 했어.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 찼어. 자신의 식구들은 모두 아들선호사상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깨닫는 바가 생긴 것 같았단다. 이 소설은 당시 아들선호사상을 꼬집는 소설인 듯 싶었단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 이 소설도 여성의 낙태를 다루는 소설인데 앞서 이야기했던 <꿈꾸는 인큐베이터>와는 좀더 다른 시각의 소설이란다. 주인공 ‘나’는 여자의과전문학교를 나오고 전쟁통에 부상병들을 치료했던 경험으로 병원을 차리기로 했어. 서울 외곽 양주 근처에 산부인과 병원을 차렸단다. ‘나’가 그곳에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한 이유는 근처에 미군부대의 기지촌이 있었어 소파 수술을 하려는 고객이 많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소파 수술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찾아 보니 자궁의 조직 내벽의 병변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는 중절 수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구나.

개업 첫날, 첫손님은 자신의 뜻과 다르게 분만 때문에 온 사람이었어. 병원이 있는 건물의 주인 황영감이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어. 다른 곳에서 지내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만삭의 몸으로 집에 돌아온 거야. 딸이 미혼모였기 때문에 몰래 분만을 해달라고 했어. 그리고는 황영감은 딸은 다시 다른 동네로 쫓아내고 그 아기는 업동이라고 하고 자신이 양아들로 키우는 것으로 할 테니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어. 그 첫손님을 제외하고는 이후 30년 동안 분만은 한 번도 없었어. ‘나’는 처음 계획했던 대로 소파 전문 병원으로 큰 돈을 벌었어.

얼마 안 있으면 건물도 허문다고 해서 ‘나’는 은퇴하고 지금까지 번 돈으로 즐기면서 살기로 했단다. 이제 삼 일이 남았어. 그런데 갑자기 첫손님을 제외하고 한번도 분만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만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하지만 마지막 날이 되어도 분만 손님은 없었어. 그런데 마지막 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한 소녀가 임신한 줄도 모르고 왔는데 진찰해 보니 7~8개월이 되었어. 소녀는 아이를 떼어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어. ‘나’는 소녀의 간절한 부탁으로 일단 수술하고 수술도 잘 되었어.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살아있는 거야. ‘나’는 그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열망 같은 것이 생겼어. ‘나’는 아이를 포대기를 감싸서 큰 병원으로 정신 없이 달려갔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아이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데려와서 자신의 새집 마당에 묻어주었어. 사실 ‘나’는 아픈 기억이 있었어. 젊었을 때 원치 않은 임신과 낙태 수술의 경험이 있었던 거야. 그런 기억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낸 것은 아니었나 싶구나. 그리고 마지막 그 아이를 살리려고 했던 것은 지난 30년간 아이를 지운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보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오늘날을 배경으로 이런 소설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인데, 지은이 박완서 님은 이렇게 소설을 통해서 세태를 비판하신 것 같구나.

그 외에 <꿈을 찍는 사진사>와 <창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할게. 세계사에 출간한 <박완서 소설전집> 시리즈가 총 22권이더구나. 읽을만한 책들이 없으면 이 시리즈를 하나하나 읽으면 좋겠지만, 밀려 있는 읽을 책들이 너무 너무 많아서 장담하지는 못하겠구나. 기회 될 때마다 하나하나 읽어보도록 하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농바위 고개만 넘으면 송도라고 했다.

책의 끝 문장: 우리 집엔 남아도는 빈방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가 세운 신여성이란 것의 기준이 되었던 너무 뒤떨어진 외양과 터무니없이 높은 이상과의 갈등, 점잖은 근거와 속된 허영과의 모순, 영원한 문밖 의식, 그건 아직도 나의 의식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의식은 아직도 말뚝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멀리 벗어난 것 같아도 말뚝이 풀어준 새끼줄 길이일 것이다. - P81
나는 내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신여성’이란 말을 마치 복원한 성벽처럼 옛것도 아닌 것이, 새것도 못 되는 우스꽝스럽고도 무의미한 억지라고 느꼈다.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것을 복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지나간 세월 역시 부정되어선 안 될 것 같았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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