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관계없이 맺어지는 사회적 관계들, 관습
혹은 단순한 호감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커뮤니티, 실체도 없이 우리 삶의 테두리를 제한하고 경계짓는
국적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회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프린트된 명함이나 우리의 출생과 죽음, 결혼과 건강을 기록하는 관공서의 수많은 서류들도
개인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증명해주지는 않는다. 지갑 속의 기념사진, 일주일
단위로 약속과 일과를 적어내려간 수첩, 이국의 어느 공항 출입국심사대에서 경쾌한 소리와 함께 찍힌 여권
속의 스탬프들,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는 녹슨 열쇠나 읽고 있던 책의 접힌 페이지 같은 것들 역시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아침 7시면 눈이 떠지고 저녁 6시가 되면 온몸이 피로해지는, 시스템에 길들여진 몸의 리듬마저 변하지 않는 소속감을 약속해주지 않는다.
(48-49)
로는 의심스러웠다. 영양실조로 성장이 멈춘 아이들. 병자처럼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던 청년들, 삶의 이유이기도 했던
공장의 기계를 분해하여 중국의 값싼 곡물과 물물교환을 해야 했던 젊은 노동자들, 농장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가
곡식을 훔쳐먹다가 체포되던 그 순간에도 악착같이 손을 뻗어 한움큼이라도 더 먹으려 했던 사람, 그런
사람들, 하루 걸러 들려오던 부음, 상비약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병원, 냉난방시설은커녕 전깃불조차 수시로 꺼지던 했던 관공서들, 더
이상 교과서와 학용품을 대주지 못했던 학교…… 그건, 그
사람들은 허구였던가. 이토록 풍요로운 세계 저편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하고 기근에 허덕이는 거대한
공동체가 분명 하나의 국가로 존재한다는 것이 로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그 세계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머나먼 연회장을 초대장도
없이 찾아온 이상한 방문객이 된 것처럼, 고향을 떠올린 그 순간 로는 스스로가 이유없이 부끄러웠다.
(91)
로는 자신의 조국이 가난하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곳이 지옥이라고는 단 한번도 여기지 않았다. 대체 지옥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로는 궁금했다. 가난이 지옥이라면 자본주의에도 지옥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주의
국가는 일부만이 그 지옥을 경험하지만, 자신의 조국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절박한 지옥들, 너무도 조직적으로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뿐, 그뿐이라고 로는 생각했다.
국가가 부강하여 뭐든 줄 것이 있었다면 기꺼이 베풀었을 거라는 믿음이 로에겐 있었다. 로는
나눌 수만 있다면 언제라도 나눌 준비가 되어 있던 자신의 조국을 생지옥으로 규정하는, 줄 것이 있음에도
줘야 하는 순간에는 망설이고 도망가는 자들이 경멸스러웠다.
(93)
어머니와 함께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간 것도, 중국에서
공안의 눈을 피해 골방에만 갇혀 있다시피 살았던 것이나 어머니를 잃고 그 돈으로 이름도 몰랐던 벨기에라는 나라에 오게 된 것 역시, 그 모든 것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 기다림의 시간 때문일 거라는 차가운 분노. 살기 위하여 살아왔을 뿐인데 고향을 떠나온 순간부터 쫓기고 숨어야 하는 범법자가 되어야 했고 때로는 한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었던 것까지 송두리째 잃어야 했던 그 불가해한 시간들을 오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다림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모이고 모여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이어질 때까지 체제 안의 사람들도, 바깥의
구경꾼들도 똑같이 침묵했단. 이제 더 이상 그리운 마음 하나만으로 고향을 추억하는 달콤한 시간은 자기
삶에 없을 것임으로 로는 깨달았다.
(208)
“나는 늙었어요.
김작가. 늙었다는 말의 의미를 아오? 감정이
다 사치가 된다는 뜻이에요. 남은 시간이 빤하니 저절로 그리 되어가는 거요. 관용이라면 관용이고 체념이라면 체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