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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11)

설령 그 사진이 잿더미 속에서 재생되어 나온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사진을 발견했을 당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그 세 사람은 분명히 유라시아의 정보원에게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두 번인가 세 번쯤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윈스턴으로서는 몇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백서는 본래의 사실이나 날짜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변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그를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은 ‘왜’ 그 같은 엄청난 사기 행위가 행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이점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216-217)

“이건 예외적인 경우야. 사람이 죽는 문제하고는 달라. 당신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직 과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 유리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이미 우리는 혁명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였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 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 주기나 할까? 그런 장담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딱 한 번 그 사건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가졌던 적이 있었어.”

 

(263-264)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0세기 초 몇몇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농경 사회로의 회귀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그것은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준본능(準本能)이 되다시피 한 기계화 경향과 맞지 않기로 하거니와 공업에서 낙후된 국자는 군사적으로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업 선진국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2-283)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자유사상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데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마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관대한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기계 하나로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287-288)

초기의 위태로웠던 시절에는 당이 세습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 세력을 무마시키는 작용을 했다. 소위 ‘특권 계급’이라는 것을 상대로 투쟁해 온 지난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세습적이 아닌 것은 영구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그들은 과두 체제가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굳이 드러내 놓고 사실 그대로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세습적인 귀족 사회는 늘 단명했지만 가톨릭교회 같은 선임 체제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과두 체제의 본질은 아버지에게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세계관이나 생활양식 등을 산 사람이 고수하는 데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362)

윈스턴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피로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열정에 들뜬 광적인 빛이 오브라이언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366)

“우리는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도 지배할 수 있네. 실재란 머릿속에 있지. 자내도 차츰 알게 될 걸세. 우리가 못하는 건 없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공중을 날 수도 있지. 그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원한다면 비눗방울처럼 이 마루 위를 둥둥 떠다닐 수도 있지. 당이 원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뿐이네. 자연의 법칙에 대한 19세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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