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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광주 아리랑 2
  • 정찬주
  • 13,500원 (10%750)
  • 2020-05-18
  • : 155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정찬주 님의 <광주 아리랑>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이 1980년 5월 14일부터 5월 21일까지라고 했는데, 5월 21일은 1권에서 2권으로 이어진다.

5월 21일.

이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기에 맞서 광주 시민군이 되었단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여고생 등은 부상 당한 사람들의 부족한 혈액을 위해 헌혈을 했단다. 피를 보관한 헌혈 용기가 부족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 계엄군의 총부리는 이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단다. 여고생인 박금희는 헌혈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말았단다.

종교계에서도 더 많은 종교인들이 시위대에 동참하기 시작했어. 불교에서는 진각 스님 등 많은 스님들이 동참했고, 특히 적십자사에서 시민군을 돕는 일을 했어. 공수부대는 적십자에도 총격을 하기 진각 스님 등 부상자들이 속출했단다. 시민군도 성과를 했는데 전남도청을 점령했단다.

….

5월 22일.

갑자기 전남대와 종합운동장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했어. 시민들은 계엄군이 왜 철수했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좋아했단다. 전남대학교 학생과장인 서명원은 계엄군들이 있던 대학교 시설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단다. 그리고 교내 이곳 저곳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병원으로 옮기는 듯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분주했단다. 전남대 교수였던 송기숙, 명노근은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나서 서울로 피신했었는데, 죄책감에 다시 광부로 돌아왔단다. 계엄군이 물러나고 시민대표수습위원회가 결성되어 계엄군과 협의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협의 내용 중에 시민군의 총기를 반납하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이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단다. 계엄군을 어떻게 믿고 총기를 반납하냐는 의견이 많았어. 그래서 시민군 일부는 시민대표를 인정하지 않았어. 도청을 장악한 학생들은 별도 조직을 만들려고 했고, 명노근 교수에게 위원장을 부탁했어. 그렇게 임시학생수습위원회를 조직했단다.

도청에서 시민군들을 만났는데, 시민군들은 지금 할 것은 수습이 아니라 전투와 항쟁이라고 했어. 송기숙 교수는 그런 시민군을 향해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시민군을 설득했단다. 그렇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임시학생수습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시민군들 중에는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는 세력도 있었어. 시민군들은 특별히 조직을 만든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도청상황실장인 박남선이 리드를 하게 되었어. 시민군은 기동타격대를 결성하여 계엄군의 습격에 대비를 했어. 한편 수습위원회는 계엄군과 협의 항목 중 하나인 무기 회수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회수된 무기와 계엄군에게 역류된 시민들과 교환하려고 했어.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시민군들은 뭔가 찜찜했어. 무기를 반납하고 나면 계엄군이 다시 쳐들어올 것 같았거든. 기동타격대로 활동하던 시민군들이 낙오한 공수부대원을 체포해서 데리고 왔어. 일부 시민들은 그를 죽이자고 했지만, 박남선은 포로를 죽이지 않는 법이라며 그를 감금하자고 했어. 나중에 시민군과 교환할 수도 있다고 시민군을 설득했단다. 그런데 이렇게 의로웠던 사람이 나중에 윤석열을 지지하게 되었으니,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을 것 같구나.

5월 23일.

시민수습위원회와 임시학생수습위원회가 별도로 활동하고 있었어. 조비오 신부와 명노근 교수는 회수한 총기를 들고 계엄군을 찾아가 협상을 벌였지만 원활하지는 않았다는구나. 무기 일부와 시민군들만 교환하고 끝났다고 했는데, 지나고 생각하면 이는 오판이었단다. 시민군들이 더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어. 무기를 반납하고 나면 걸림돌이 사라진 계엄군이 다시 진격해 올 수 있었거든. 그렇게 당하고 계엄군과 그의 배후 전두환을 믿다니, 그들의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구나. 여전히 시민군들 사이에서는 무기회수에 찬반 논란이 이어졌어. 무기 회수를 결정한 시민군의 어떤 소대는 무기가 없어 더 이상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해체하기도 했단다.

그 동안 시민들이 많이 죽어서 시신을 모슬 관이 부족해서 화순으로 관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구남 마을에서 계엄군이 버스에 총격을 가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 아홉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군이 구남 마을에 출격했다가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았단다. 계엄군이 철수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은 철수하지 않았단다.

5월 24일.

무기회수 때문에 시민군들은 수습위원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 그리고 무기가 없어져서 불안하기도 했어. 앞서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계엄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방어할 수단이 없었던 거야. 수습위원회 내부에서도 무기 회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갈등을 빚기도 했어. 이것 때문에 시민들의 궐기대회까지 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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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이종기 변호사의 제안에 장세균 목사와 남재희 신부가 조비오 신부를 돕겠다고 나섰다. 김성용 신부는 시민수습위원들의 주고받는 말에 흥미를 잃었다. 광주시민을 살상한 계엄사의 사과 없이 무기만 갖다 바치면 수습이 될 것이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김성용 신부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줄이겠다고 무기를 회수하러 나선 조비오 신부와는 생각이 달랐다. 일부 수습위원이 가해자인 계엄사 측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회수해 오면 연행자를 석방하겠다, 보복을 금지하겠다, 광주에 재진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협상이었다. 김성용 신부는 수습위원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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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효선은 무기 회수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계엄군에게 속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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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88)

“저는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극단 광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리소극장 대표인 박효선입니다. 비도 오고 있으니 저는 군더더기의 말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겄습니다. 계엄사 측은 무기를 회수해어 갖다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시민수습위원들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엄사 측이 순진하고 순수헌 시민수습위원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를 갖다 주는 것은 신군부 야욕을 도와주는 꼴입니다. 계엄사 측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무기로 철저하게 무장허고 있어야만 계엄군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광주항쟁의 불길이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항쟁은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신군부는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여 스스로 권력 찬탈의 야욕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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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계엄군이 다시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도청 안에서는 남아 있는 무기로 재무장을 했단다.

계엄군 사이에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어. 계엄군 안의 교도부대와 공수부대 사이에 서로 적인 줄 알고 오인사격으로 공수부대에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란다. 공수부대는 이 오인사격사건 때문에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고, 이에 대한 분풀이를 위해 시민들에게 총을 휘둘렀단다. 그래서 놀고 있던 중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을 포함하여 송암동 주민들을 죽였단다. 그야말로 학살이었어.

1.

5월 25일.

조비오 신부는 광주 시내를 돌면서 시민군을 설득하여 수천여 종의 총기를 회수했단다. 조비오 신부는 이렇게 무기 회수만이 계엄군과 협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야 더 이상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은 이해한단다. 시민군들이 무장하여 계엄군과 맞붙게 되면 희생자가 어마어마할 것 될 테니… 일단 계엄군을 믿어보고 평화적으로 이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무기 회수를 해서 평화적인 대화로 풀어보려고 해던 것이란다. 하지만 계엄군은 계엄군이고, 여전히 시민군들은 이 의견에 반대를 했단다. 무기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게 되자 계엄군과 협상은 흐지부지되었고, 이제 무기 회수 반대 세력의 입김이 더 세졌어. 그리고 무기 회수에 찬성했던 사람들 일부는 무기를 반납하고 도청을 떠나갔단다. 무기 회수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시민학생투쟁위원회를 결성해서 도청에서 무기로 재정비했단다.

….

5월 26일.

시민군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어. 계엄군의 장갑차와 탱크가 다시 도심에 나타났단다. 시민수습위원회는 계엄군 김기석 소장을 만나 항의를 했지만 김기석은 자신의 영향력 밖이라고 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계엄분소에 와 있던 신군부의 핵심 소준열 준장을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그도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한심한 답변만 했어. 그들은 명령에 따라 밤 12시에 진격할 것이라고 했어.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온 하달… 살인마 전두환의 명령이었나 보구나.

밤 12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김성용 신부는 서울로 가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 홍남순 변호사는 총리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서울로 가려고 했으나 도중에 계엄군에게 잡혀 영창에 갇히고 말았어. 시민군도 계엄군들이 밤 12시에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 소식을 듣고 겁을 먹은 시민들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단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선택일 것 같구나. 누구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어.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싸우려는 이들만 남아서 도청과 YWCA에서 무장하고 계엄군에 결사항쟁하기로 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5월 27일.

완전무장한 계엄군과 공수부대가 공격을 해봤는데, 시민군들이 저항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단다.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일부는 항복을 했지만 항복한 이들도 무차별로 폭행 당해 부상을 입었단다. 그렇게 아름답지만 슬프고 아픈 시민군의 저항은 끝이 났단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광주 시민들은 1980년 5월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했단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2024년 12월 3일, 40여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령이 내려졌단다. 야밤에 독재자를 꿈꾼 돼지가 선포한 계엄령에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광주를 떠올렸을 거야. 그래서 그 밤에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가서 온 몸으로 탱크를 막아 섰단다. 그리고 계엄군으로 참여한 군인들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소극적으로 대응해서 계엄을 실패할 수 있었단다. 이 모든 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 국민 전체는 광주에 빚을 진 건 같더구나. 다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드라마 <오월의 청춘>을 보았단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약간 설정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인 것 같더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여유가 생기면 한번 봐도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창작물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서 잊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광주 시위대는 담양, 목포, 해남까지 시위차를 타고 달려갔다.

책의 끝 문장: 끝내 총을 들지 못한 자신이 비겁하고 서럽고 수치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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