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작년 말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기에 맞춰 출간된 여러 책들 중에 하나란다.
루스 윌슨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가 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 라는 책이란다. 책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은이 루스 윌슨의
이력부터 이야기해야겠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삶을 살고
계시더구나. 지은이 루스 윌슨은 예순 살까지 평범한 가정을 일구며 살아왔단다. 그러다가 예순 넘어서 가까운 사람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등 외로움이 느껴지고 지난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시골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홀로 지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어. 나이 70살에
졸혼을 하고 혼자 시골집에 혼자 칩거하면서 생활하게 된다. 그때 루스가 선택한 것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었어.
======================
(18-19)
가족과
일 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니 예나 지금이나 소설 읽는 즐거움만 한 것이 없었다. 읽은
소설을 통틀어 내 즐거움이 비교 기준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활 치료라 생각하고 다시 독서에 열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선은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오스틴의 애독자로 만들어준 그
촌철살인의 위트와 귀가 닳도록 인용되는 문구들과 생기 넘치는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독서법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
10대 소녀 시절 처음 읽었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70대가 되어 다시 읽은 지은이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 장편 소설 6편을
다시 읽으면서 침체되었던 삶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여 88살에는 독서 관련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90살에는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자기인생의 첫 번째 책을 나이 아흔에 낸 사람이 있을까 싶구나. 기네스북에도 기록될 만 기록이 아닐까 싶구나.
아빠 이 책을 산 것은 지난
연말인데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니 제인 오스틴의 책을 너무 적게 읽어서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서 먼저 제인 오스틴의 책을 좀
읽고 읽어야겠다고 미뤄두었어. 그 이후 <설득>, <이성과 감성>을 읽었어. 이제 그 전에 읽은 <오만과 편견>까지 포함하여 세 권을 읽었으니 이제 이 책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를 읽어봐도 될 것 같아서 읽었단다. 이
책에 소개된 여섯 권을 모두 읽고 읽으려면 너무 늦어질 것 같기도 해서 지금 읽은 거야. 물론 제인
오스틴의 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어도 문제되지는 않지만 읽고 나서 읽으니 지은이의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의견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읽다 보니 책 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더구나. 좀 늦어지더라도 나머지 세 권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나머지 세 권은 <에마>, <노생거 수도원>, <맨스필드 파크>란다.
1.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지은이의
자서전이기도 해.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해주었어. 1932년생인 지은이는 15살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처음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는구나. 그러면서 10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엄청 자세히 당시 있었던
대화까지 이야기를 해주었어. 기억력만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일기를 꾸준히 썼을 것 같구나. 지은이는 영어교사를 하다가 은퇴를 했고 1974년부터 5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했었대. 지은이는 유대인이었지만, 2차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어서
다행히 유대인 핍박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했어. 하지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도 하고
같은 민족들이 핍박 받고 희생당하는 것에 슬프고 힘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민족들이 오늘날은 이웃 나라에
무자비하게 폭격을 가해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니… 악마는 멀리 있지 않는 것 같구나. 지은이는
지금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악마와 같은 만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이스라엘에
이주할 때 원래 그곳에서 살다가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이 있었는지도...
...
이 책에 소개된 여섯 편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각 챕터 별로 소설들의 줄거리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대충 읽었단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의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지. 소설 속 주인공들을 이야기하면서
지은이의 주변 사람들과 매칭해보기도 했어. 그리고 이 책에서는 제인 오스틴의 책들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기 좋아하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도 소개되어 반가웠단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60대에 들어선 지은이의 불안한 마음을 제인 오스틴의 소설로 완전 치유가 되었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통해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관계의 복잡성, 우정의 가치, 사랑의 의미, 삶의
균형 등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졸혼했다고도 했는데 그렇다고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고 하는구나. LAT(live-apart-together)족 생활을 했다는구나. 따로 살면서 같이하는 삶을 실천했다는구나.
======================
(407)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한때 나의 남주인공으로 착각했던 사람, 그러나 먼 길을 돌고 돌아 결국 나의 친밀한 동반자가 된 사람과 따로 또 같이 사는 지금의 내 인생에는 소중한
우정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남편과 내가 공유하는 관계도 있고 애정의 방향이 갈라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나한테 더 중요한 건 ‘정녕 진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꾸려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이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
…
지은이의 꼼꼼한 책읽기를 보면서
아빠의 책읽기도 생각해보았어. 어린 시절에 책을 거의 읽지 않던 아빠는 이십 대 중후반 문득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시작한 독서생활은 2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단다. 하지만
내적 성장이라든가, 글솜씨가 좋아졌다든가, 지적 성장이 있었다든가, 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ㅎㅎ 아빠의 독서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냥
재미있으니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어서 그런가. 힘들고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책이 치유를 해준다기보다 오히려
책읽기가 힘들어지고 독서생활에 슬럼프가 찾아오는데 말이야. 아니면 힘들 때 고른 책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제인 오스틴의 책들을 골랐어야 했나?^^
...
이 책에서 지은이가 한 것 중에
아빠도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단다. 지은이는 오랜 친구와 함께 책을 낭독해서 읽기를 했단다. 아빠는 함께 읽기를 너희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지금 너무 바쁘니 뒤로 미뤄둬야겠구나. 아무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픈 것은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는 것. 아빠도 나이가 들고나서 무엇인가 새로 배우거나 새로 시작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겼는데 반성해야겠구나.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한 아직 읽지 않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세 편도 올해 안에 꼭 읽도록 하마.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준 일등 공신은 지금도 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의 길잡이 제인 오스틴이다.
제인 오스틴이 보여준 언어의 가능성을 활자로, 또 내 귀로 발견했을 때 내 앞에 소설로 통하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다른 문이 닫혔다. 어머니와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울타리 너머에서 우리 앞마당에 던져놓고 가는 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어머니는 유명 인사의 가십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 나는 틈새에 실린 단편소설을 읽어치우던 그런 시절이 안녕을 고했다. 클리셰니 스테레오타입이니 하는 말은 모를 때였지만, 햄릿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작법과 인물들이 어딘지 "식상하고 밋밋하고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아침에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P51
사춘기에 접어든 그때 나는 현실에서처럼 빛과 그림자가 불가분하게 뒤섞인 세상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체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세상이 아닌 한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세계였다. 그가 소리와 인격과 생각을 불어넣어 완성한 정연한 패턴 안에 단순한 결혼 플롯을 뛰어넘는 인생의 비전이 담겨 있었다. 내가 평생 이어갈, 궁극적으로 내 삶의 암흑기에 빛을 비춰줄 허구의 경험 읽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P157
나는 세월이 쌓이고 과거를 기억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 않게 느껴질수록 소설 안에서 역사가 다뤄지는 방식에 관해서 관심이 증폭되다 못해 이제는 역사적 호기심의 노예라고 해도 될 판이다. 소설이 어떻게 과거로 현재를 재구성하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고 소설 안에서 인생살이에 대한 신선한 시각을 발견하는 유익한 효과도 따라온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캐서린은 역사책이 온통 "짜증 나고 지루한" 이야기뿐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틸니 양은 친구의 의견을 받아주는 것 같으면서도 역사를 집필하는 사람들 쪽으로 슬쩍 주제를 선회한다. "역사가들은 기꺼이 공상의 나래를 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군요. 흥미를 자아내지 않더라도 그들도 상상력을 발휘하긴 하죠."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리저리 튀며 두 아가씨의 정신세계를 비춰 보인다.- P167
그리하여 나는 팔십 줄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모든 여학생들이 졸업 앨범 방명록을 간직하던 시절, 브레인 선생님으로 짐작되는 이가 내 졸업 앨범 방명록에 대략 이런 의미의 글귀를 남겼다. 공중에 누각을 지은들 어떠랴, 토대만 단단히 세우면 그만이지. 글귀 아래에는 철학자 소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미 나만의 누각에서 살고 있었고, 어쩐지 앞으로 10년 안에 그럭저럭 토대를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어떤 예감이 찾아오고 있었다. 흔히들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그런 황홀한 도취가 다시 한번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 이번 상대는 인생이라는 것도.- P225
어떻게 해야 더 명료하게 내 뜻이 전달되려나.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였다. "까놓고 말하자면 관습의 틀 안에 살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스스로를 기망한 거야. 안전한 삶에 안주한 줄 알았는데, 언젠가부터 튕겨 나가고 있더라. 내 자리를 지키기는커녕 밖으로 밀려나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라니, 내가 고작 이 정도인가, 인생에서 얻은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좌절했어."- P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