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노인들은 도망치지만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 ‘그들의 집’은 다달이 오르탕시아
요양원의 거주비를 대느라 매물로 나왔다. 그들의 정원은 텅 비고, 그들의
고양이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이제 그들의 집은 그들의 기억 속에서만, 그들 각자의 서가에서만 존재한다. 나는 그 각각의 서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157-158)
빨간색 윗도리를 입었어야지, 그게 더 어울리는데, 오늘은 머리가 엉망이네, 방 좀 정리해라, 물건들 좀 여기저기 두지 마, 네가 내 립스틱 가져갔었구나, 그래, 알았어 우리 강아지, 이건
벗기는 것 좀 도와주렴, 가게에 같이 가자, 오후 4시에 데리러 갈게,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야, 시간이 없구나, 숙제는 했니, 이게
다 뭐니, 저것 봐, 너무 예쁘지, 그건 안 돼, 이걸 사줄게,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식탁 좀 차려줘, 아니, 안 돼, 안 돼, 좋아, 알았어, 정말 이번 한 번뿐이다,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저녁 6시 이후엔 초콜릿이나
탄산음료 금지야, 아침 안 먹으면 못 간다, 외투 입어, 밖이 추워, 이 난장판이 다 뭐니,
양치질은 했니, 언제 다 클래, 가서 샤워해, 염려 마, 괜찮으니까, 사랑해, 잘 자렴, 오늘 아침엔 왜 이렇게 예쁠까, 그거 너한테 아주 잘 어울린다, 네 역사지리 선생님이 전화하셨더라, 늦었다, 이제 그만 자렴, 수학이
얼마나 중요한데, 괜찮아, 우리 아기, 저 남자애는 누구니, 넨가 독서 싫어하는 거야 알지만 그대로 이
책은 좋아할 거야, 몇 시에 데리러 갈까, 그 애 부모님은
뭘 하시니, 전깃불 꺼, 맨발로 걷지 마, 병원 가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토 달지 말고, 이리 와서 안아줘,
말 안 들으면 아빠 부른다.
(297)
루이 할아버지네 카페를 매각한다는 소식은 밀리에 폭탄을 투하한 듯한 충격을 안겼다. 남자들 대부분이 거짓 루머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카페 앞에 모여들었다. 엘렌
엘이, 자기들의 엘렌 엘이 자기들의 카페를 판다니! 너나없이
모두 모였다. 늙은 사람들, 젊은 사람들, 은퇴자들, 알코올의존자들, 한창때의
노동자들, 농부들, 용감한 사람들, 게으른 사람들, 퇴역 군인들, 수공업자들, 사제, 노동자들, 관리반장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그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그녀 없이 그들은 어쩌라고? 이제
그들의 바짓단 길이는 누가 맞춰주고, 주중에 그들이 먹고 마실 것은 누가 제공하며, 그들의 똑 같은 푸념은 누가 들어주고, 담배는 누가 팔고, 보들레르는 누가 돌보고, 1등처럼
3등까지 경주마 순위는 누가 예상해주고, 누가 그녀처럼 웃어준단 말인가? 그들 모두가 아침과 정오와 하루 끝의 진액을 잃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일상의 골칫거리, 돈 걱정, 아이들, 아내, 꼬박꼬박 가져와야 할 월급의 압박 속에서,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와 두서너 마디 흰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이 술병들의 정원에 들어서는 것만큼 위안이 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루이
할아버지 카페는 그들이 마주치고, 악수를 나누고, 공장과
납품과 가축과 고용주의 수확에 대한 정보와 최신 뉴스들을 교환하는 교차로였다. 그곳은 겨울에도 늘 따뜻했다. 엘렌 엘이 직접 난로의 장작을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그곳에선 늘
좋은 냄새가 났다. 그것이 정오에 제공되는 단일 메뉴의 냄새든 장미 향이든. 좀 취했다고 장미 향 좋은 걸 모르는 건 아니니까. 라디오가 뉴스와
사랑 노래를 흘려 보내며 시간에 리듬을 부여했고, 그들이 한 잔의 커피나 술에 입술을 적시는 사이 삶은
제각각 흘러갔다. 가볍게, 너무나 가냘파서 한 손가락으로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화된 여인 엘렌 엘만큼이나 가볍게.
(308-309)
그동안 그녀는 이 순간을 수천 가지 상황으로 상상해왔다. 낮에, 잠에, 저녁에, 겨울에, 정오에, 일요일에, 여름에. 하지만 그녀가 카페 밖에 있고 그가 안에 있는 이런 상황은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카페 문을 미는 것이 그가 아닌 그녀가 되리라는 것은. 그녀는 자신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면 그가 그녀를 안아 올려 빙 돌리고, 그 순간 모든 것이 폭발하여 찬란한 광휘와
환희가 분출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일들은 우리가 그것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것일까? 왜 모든 것이 결국 타이밍의 문제일까?
(402)
그녀가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의
새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이란, 여러 사람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