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어느 페이지의 낱말을 알아보고 큰소리로 읽는다. 그 순간 신(神)의 일부가
사라져가고 낙원에 첫 균열이 간다. 그렇게 또 다른 낱말이 이어진다.
온전했던 운주는 이제 이어지는 문장들에 불과하고 백지 속 유실된 땅들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이는
학교에 가고, 학생의 신분이 된다. 그런데 이 유실에는 실제로
엄청난 행복이 존재한다. 글을 읽는 첫 경험. 책의 한 페이지를
해독하고 어렴풋한 형체들을 감지할 수 있게 된 첫 경험. 그것은 행복을 넘어서는, 정확히 말해 기쁨이라고 할 만한 무엇이다. 기쁨과 공포라 할 만한
무엇. 기쁨을 어김없이 공포를 수반하고 책들은 언제나 애도를 수반하기 마련이니까.
(14-15)
그런데 때론 어떤 사람들에게, 더 적은 수의,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다름 아닌
독자들이다. 가던 길을 남들이 포기하는 여덟 살 혹은 아홉 살 무렵에 이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독서의 길로 뛰어드는 그들은 언제까지나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그 길이 끝이 없음을 알고 기뻐한다. 기쁨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그들은 출발점에, 첫경험에 집착한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경험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 지점에 머무르며 삶이 다해가는 순간까지 책을 읽는다. 고독을
발견했던, 그러니까 언어들의 고도고가 영혼들의 고독을 발견했던 첫 경험의 언저리에 머문다. 그들은 황홀감에 취해 세상에서 물러나 이 고독을 향해 간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고독의 골은 깊어진다. 더 많이 많을수록 아는 건 점점 더 적어진다. 이 사람들이 작가와 서점, 출판사,
인쇄소를 먹여 살린다.
(26-27)
그렇다. 눈이다.
당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 두 눈은 이제 우는 일 말고는 쓸모가 없다. 울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어느 날 당신은 릴케의 한 페이지를
읽는다. 다른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러다 잉크의 새장을 여는 순간 영혼의 새들이 우르르 당신에게 돌아온다. 실패한
자살이 모두 그렇듯 당신의 자살도 성공을 거둔 것이다. 당신이 잃은 건 생명보다 더한 것이었다. 말, 투명한 말의 맛, 참된
말에 대한 사랑, 그 모두를 잃은 것이다. 말 앞에서 당신은
먹을 것을 앞에 둔 아픈 아이 같았었다. 그런데 릴케가 당신에게 먹을 것을 다시 준다. 한 편의 시,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미지, 또 한 편의 이미지. 헐벗은 말과 함께 온전한 사실이 돌아온다. 진실과 함께 온전한 영혼이
돌아온다.
(35-36)
발작 상태는 세상의 본성이다. 전쟁이 잇따르고 발명도
이어진다. 총매상고가 집계되면 자살률도 집계되며, 기아의
저편에는 달콤한 환락이 자리한다. 세상은 그것들 모두의 잡탕이다. 그것들이
모두 함께한다. 사랑만 예외이다. 사랑은 그 무엇과도 함께하지
않는다. 사랑은 아무 데도 없다. 전시(戰時)에 부족한 식량처럼, 죽어가는
사람의 짧은 호흡처럼, 사랑도 모자란다. 놀이에 몰두해 있는
아이에게 시간이 모자라듯 사랑도 그렇게 부족하다. 사랑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해서,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의 욕구를 채워주기엔
시간은 늘 역부족이다. 우리 안에 자리한 목소리와 피의 요구, 창공
같은 그 목소리에 흐르는 우윳빛 피의 요구를 채워주기에는 말이다. 혜성 같은 사랑은 영원히 단 한 번
우리의 심장을 스친다. 밤낮없이 지켜야 그걸 목격할 수 있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이 사실 이야말로 사랑이 갖춘 위엄이자, 사랑의
놀라운 특성이다. 소음과 부산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온갖
발작으로부터도 훌쩍 떨어져,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사랑은, 그리고 사랑의 가볍고 경쾌한
자각이자 더없이 겸허한 형상이며 각성한 얼굴인 시(詩)는, 심오한 기다림이고 달콤한 기다림이다. 부드럽고도 오묘하게 반짝이는
희망이다.
(38-39)
피로에 절은 사람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언가를 쉴 새 없이 하는 사람들이다. 휴식과 침묵. 사랑이
내면으로 파고들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피로에 절은 사람들은 장사를 하고, 집을 짓고, 경력을 쌓는다. 피로를
피하기 위해 그런 일들을 하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피로에 빠진다. 그들의 시간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점점 더 적게 하는 꼴이 된다. 그들의 삶에는
삶이 부족하다. 자신과 자신 사이에 유리벽이 존재한다. 그들은
멈추기 않고 유리벽을 따라 걷는다. 피로는 그들의 용모와 손과 말에서 드러나 보인다. 그들에게 피로는 일종의 향수이며 불가능한 욕망과도 같다. 그들은
페르스발처럼, 어머니를 떠난 이 젊은 남자처럼, 들판과 강을, 강과 숲을, 산과 들판을 오간다.
(47)
위대한 책은 그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된다. 어떤
책이 위대하다는 건, 그 책에서 점차 드러나 보이는 절망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책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책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한참을 가로막는 그 모든 어둠을 의미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책이 있기 전, 글이 써지기도 전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즉 아버지의 떠도는 그림자가
있고, 번잡한 날들 속에서 첫 시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라신과 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담갈색 밤이
있다. 사방에서 꿈은 짓밟히고, 자신과 지나치게 밀착되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불만에 찬 왕,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갈가리 찢긴 유년기에 너무 밀착된 상태로는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54-55)
당신은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도 라신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당신은 제3의 문제에 골몰한다.
부부란 대체 뭘까. 열정은 뭐고 사랑은 뭘까. 당신은
머릿속으로 게임을 벌이며 하나의 규정을 마련한다. 집에 다다르기 전,
그러니까 5분 안에 해답을 찾아낼 것. 결국
게임 종료 직전에 당신은 답을 발견한다. 부부란 김빠진 삶의 장이고,
열정은 분열된 삶의 장이다. 그런데 사랑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의 집 문 앞에 선 채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참담한
발견에, 이 모든 한심한 정의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은 17세기와 20세기를 싸잡아 비웃고,
사랑과 세상을 함께 품을 수 없는 이 영원한 무능을 비웃는다. 망가지가 쉬운 천사들과 튼튼한
개들을 두고 너무 한탄하지 않으려고 웃는다.
(108-109)
우리는 사랑을 하듯 책을 읽는다. 사랑에 빠지듯
책 속으로 들어간다. 희망을 품고, 조바심을 낸다. 단 하나의 몸 안에서 수면을 찾고, 단 하나의 문장 속에서 침묵에
가닿겠다는, 그런 욕구의 부추김을 받으며, 그런 욕구의 물리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다. 조바심을 내며, 희망을 품는다. 그러다 때로 무슨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처럼, 일체의 조바심을 몰아내고 일체의 희망에 딴죽을 거는 무언가다. 그것은 위로하며 하지 않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유혹하지 않고 황홀감을
준다. 자체 안에 자신의 종말과 죽음의 슬픔, 어둠을 품고
있는 무언가다.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것에 귀 기울이는 자는 이제 자신이 피신할 데도, 의지할 데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목소리가 어두워질수록 우린 더 분명히 보게 된다. 목소리가
격해질수록 숨쉬기가 한결 쉬어진다. 우린 일체의 문학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온전히 성스러움에 바싹 다가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