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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 16,020원 (10%890)
  • 2025-04-30
  • : 22,064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년 전 쯤 미국의 유명한 작가 폴 오스터의 부고 소식에 조금은 놀랐단다. 아빠가 기억하는 폴 오스터는 비교적 젊은 작가였는데 벌써 돌아가시다니... 부고 뉴스를 찾아보니 향년 77세였어. 장수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그리 적은 것도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아빠는 폴 오스터를 젊은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을가? 그것은 아빠가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 프로필 사진에서 본 폴 오스터의 사진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누가 그를 77세의 노인으로 만들었는가. 세월이, 시간의 짓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되는구나. 아빠가 읽은 폴 오스터의 작품은 세 권인데 마지막으로 읽은 것을 확인해 보니 2005년, 20년도 더 되었구나.

그의 책들이 너무 미국적이면서 세세한 전개방식이 당시 아빠 취향과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그의 책을 멀리 했었어.그것이 20년이 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세월의 무서움을 느꼈단다. 아빠의 기억 속에 폴 오스터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던 거야. 폴 오스터가 별세하고 얼마 후 그의 마지막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단다. 아빠가 그 동안 멀리했지만 세 권이나 읽은 작가이니 추모할 겸 그의 마지막 책을 읽어보았단다.

 

1.

바움가트너.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이란다. 우리는 어떤 노년의 삶을 살게 될까. 사이 좋은 부부라면 둘이 함께 노년을 살아가겠지만, 사이 좋은 부부라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단다. 이 책의 주인공 바움가트너 역시 10년 아내 애나가 죽고 난 이후 쭉 혼자 지내는 노인이었단다. 지난 10년 혼자 살아오면서 그는 더 늙었고 최근에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들었어. 깜빡 하고 냄비를 태워먹고 그 냄비를 치우다가 화상을 입기도 하고... 계량기 검침원과 약속을 잊고, 아니, 약속한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검침원과 함께 지하실에 내려가다가 계단에 굴러 넘어지는 등 일상 생활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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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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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와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기도 했어.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와 이후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행복한 시간들. 안타까운 것은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잘 생기지 않았고 검사를 해보니 둘 모두 불임이었다는구나. 그래도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10년 전 해변에 놀러 갔다가 아내 애나는 수영하다가 익사하고 말았단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바움가트너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어. 애나는 작가 겸 번역가로 일했는데 바움가트너는 아내가 죽고 나서 아내의 원고를 보다가 <프랭키 보일>이라는 원고를 보았어. 이 책에는 그 원고의 전문이 실려 있어 또 다른 단편을 읽는 재미도 있단다.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유고집을 작업하면서 아픔을 잊으려고 했단다.

바움가트너는 이제 일흔 살이 되었고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인데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날 계획을 갖고 있어. 아내가 떠난 이후에는 주디스라는 같은 학교의 영화과 교수와 그나마 친했어. 애나도 죽기 전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주디스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어. 주디스는 4년 전에 이혼했는데 이후 주디스도 바움가트너를 친구로 의지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2~3일 같이 지내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어. 바움가트너는 긴 고민 끝에 청혼을 했어. 주디스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자유로움이 너무 좋다면서 현재 관계를 유지하자고 했단다. 이혼으로 결혼 생활을 끝낸 주디스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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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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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위와 같은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로 전개된단다. 사건이 일어나기보다는, 노년에 들어선 바움가트너의 생각과 기억, 그리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따라가며 진행되지. 나이를 들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미래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과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단다. 그 세월이란 놈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나의 일부분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젊음에 머물러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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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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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가 남아있는 삶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과 경험이 나의 몸 속에, 영혼에 더 축적되어 간다고 생각해야겠다. 아빠도 머지 않아 책 속의 주인공의 시간이 다가올 텐데...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겨야겠구나. 그 소중한 시간을 너희들과도 함께 하면 더욱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바움가트너는 서재, 코지토리엄, 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자신의 2층 방 책상에 앉아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章)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P77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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