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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편
  • 최태성
  • 15,300원 (10%850)
  • 2018-04-27
  • : 299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창 시절 국사를 잘 못했는데, 크고 나서 역사책 읽는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 이후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가끔씩 읽곤 했단다. 그런데 최근에 한동안 역사 관련 책을 읽지 않은 것 같아서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중에 하나 꺼내 들었단다. 요즘에는 텔레비전 등 매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최태성 님이 쓰신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이라는 책이란다.

이 시리즈는 전근대 편과 근현대 편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 읽은 것은 전근대 편이란다. 아빠가 우리나라 통사 관련된 역사책들을 여럿 읽어서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단다. 아빠가 책을 읽고 머릿속에 잘 기억하지 못해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읽다 보면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르게 되더구나. 그러니 반복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반복을 해도 기억이 오래가지 않으니 안타깝기도 하구나.

<역사 멘토 최태성의 한국사 : 전근대 편>은 우리나라의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서 나라를 세운 고조선,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 고려 시대, 조선 시대 후기까지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이 오랜 역사를 이야기하다 보니 각 시대의 중요한 사건과 경제 문화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교과서 읽는 기분도 좀 들었단다. 아빠의 학창 시절 때 국사 교과서보다는 재미있게 말이야.

 

1.

이미 우리나라 역사의 대해서 너희들도 배웠고, 아빠가 예전에 읽은 역사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의 내용들과 많이 겹쳐서 오늘은 간단히 아빠가 이 책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독서 편지를 대신하련다.

아빠가 예전에 늘 이상하게 생각한 것… 국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하고, 고조선은 그보다 앞선 기원전 2333년에 세웠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거든..이게 늘 이상하게 생각했어. 그런 이유를 설명해 주었단다. 기록에 의해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은 확실한데, 고고학적 발견에서 우리나라 청동기는 2000년에서 1500년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는구나. 그것도 예전에는 기원전 1000년이었대. 고고학적 연구가 더 진행되면 우리나라 청동기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하는구나. 역사는 사실을 기반으로 두다 보니 그런 차이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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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단군왕검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건국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시기는 조선시대 역사서인 <동국통감>에 기록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33년으로 잡고 있는데요. 앞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가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이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다고 했으니 이러면 시기가 맞지 않지요. 이유를 볼게요. 예전에는 한반도에서 기원전 1000년경 청동기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쩌면 이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어요. 현재는 기원전 2000년까지 올라갔는데,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어떠면 이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지도 모릅니다. 기록과 고고학적 성과가 맞닿게 되는 시점도 곧 올 거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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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각국의 전성기 시대를 보면 모두 한강 유역을 차지했잖니. 신라의 전성기의 왕은 진흥왕인 것은 너무 유명하잖니. 그런데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것은 그의 배신도 한몫 했다는구나. 전략이라면 전략이지만 배신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열 받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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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도읍을 사비로 옮겼지만, 백제의 본거지는 어디까지나 한강 유역이에요. 백제가 명실상부하게 강국의 위치에 오르려면 자신의 근거지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중심인 한강 유역을 확보해야 합니다. 성왕은 백제의 근거지인 한강을 되찾기 위해 신라의 진흥왕과 손을 잡아요. 아직까지는 혼자 힘으로 고구려를 상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동맹을 통해 백제는 한강 하류를 되찾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한강을 도로 빼앗기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성왕이 진흥왕과 일전을 벌였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백제는 다시 한 번 위기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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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는 당파싸움으로 망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단다. 아빠도 조선의 당파싸움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당파싸움을 할 수 있던 것은 조선이 선진 정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더구나. 최태성 님의 의견을 들어보니 맞는 말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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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245)

일제는 자신들의 국권 탈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식민사관을 내세웁니다. 특히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두고 이른바 당파성론을 만들어냈는데요.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져 망국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논점이에요. 하지만 이 붕당정치는 일본인은 해보지 못한 선진정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은 꿈도 꾸지 못할 정당정치가 조선 중대에 이뤄지고 있었던 겁니다. 붕당정치는 일종의 정치 투쟁인데요. 주로 상소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냈습니다. 한 세력이 독재하지 못하도록 소수파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인데요. 이는 분명 정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도 있습니다. 붕당정치는 공존이 바탕이 되는 정치 시스템이었어요. 이랬던 붕당정치가 왜곡으로 치달은 것은 일당전제화가 되면서부터입니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환국정쟁으로 변질되면서 폐해가 불거지는데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은 바로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이걸 전체로 확대 해석하여 마치 붕당정치 자체가 모순인 것처럼 한국인의 국민성까지 들먹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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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기에서 중기까지 사상의 기반이 되었던 성리학과 조선 후기 부각된 양명학과 실학의 차이점을 예시로 들어주었는데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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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학문에서는 양명학과 실학이 나옵니다. 관념을 앞세우는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실천을 중시해요. 예컨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 “이 사과의 맛을 평가하시오”리고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성리학은 이 사과의 ‘리’는 무엇일까. ‘기’는 무엇일까, 이 사과가 맛있다고 하면 그것은 ‘기’일까, ‘리’일까 하고 자꾸만 관념적으로 해석하려 들어요. 반면에 양명학은 사과를 덥석 깨뭅니다.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평가할 수 있다는 거죠. 실학은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합니다. 이는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자는 학문으로 일상생활과 밀접한 내용들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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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까지만 할게.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분들에게 저는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책의 끝 문장: 근대는 또 어떠한 시대정신을 우리에게 요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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