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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
  • 줄리엣 가드너
  • 13,950원 (10%770)
  • 2023-02-24
  • : 191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제인 에어>를 재미있게 읽고 나서 지은이 샬럿 브론테와 자매들에 대해 검색을 해보다가 그들의 슬픈 가족사를 알게 되었어. 여섯 남매가 태어났으나 둘은 어렸을 때 죽고 넷은 성인까지 자랐으나 모두 요절하고 말았다는 이야기. 아내도 일찍 죽고 아이들도 모두 요절하고 홀로 남은 늙은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루 상상하지도 못할 것 같구나.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들도 궁금했지만 그들의 삶이 더 궁금했어. 그들의 슬픈 가족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것도 있지만, 어떤 생활을 했기에 그 당시 세자매 모두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말이야. 그래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브론테 자매, 폭풍의 언덕에서 쓴 편지>라는 책이란다. 그들이 남긴 편지와 기록들을 통해서 그들을 삶을 돌아보는 그런 책이란다.

책 제목에 있는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너무나 유명한 소설 제목이란다. 아빠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줄거리만 문체가 좀 세다는 기억만 조금 남아있구나.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이 그들이 살았던 곳에서 유래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럼, 그들의 안타까운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1.

그들의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렸을 때 책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동네 목사의 눈에 띠어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고, 부목사가 되었대. 나중에 커서 영국으로 건너와 목사가 되었고 말이야. 결혼은 당시 나이 치고는 늦은 나이인 35살에 했는데 아내인 마리아도 29살로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대. 그들은 여섯 명의 아이를 낳고 하워스로 이사를 갔어. 그런데 아내 마리아가 병에 걸려 1821년 9월 38살에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눈을 감았단다.

첫째 마리아가 열 살도 채 안 되었는데 그 밑으로 다섯이나 더 있었으니 패트릭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 청혼했지만 거절 당했단다. 아이 여섯 달린 홀아비의 청혼을 승낙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 천사 아니고서야… 패트릭은 결국 딸들을 코완브리지라는 기숙학교로 보내기로 했어. 첫째 마리아, 둘째 엘리자베스, 셋째 샬럿, 다섯째 에밀리를 코완브리지에 보냈단다. 넷째 브랜웰은 아들이라서 집에 있었고, 막내 앤은 너무 어려서 집에 있었어.

그런데, 코완브리지 기숙학교는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어. 위생 시설도 안 좋고 아이들 관리도 엉망이었어. 샬럿은 이 학교의 경험을 나중에 소설 <제인 에어>에서 로우드 학교의 모델로 삼았단다. 코완브리지 학교의 청결하지 못한 위생 상태 때문에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었고, 1825년 첫째 마리아는 11살 때, 둘째 엘리자베스는 10살 때 연이어 폐결핵으로 죽고 만단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버지 패트릭은 샬럿과 에밀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단다.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후 식구들은 거의 집에서만 지내면서 가정교육이나 책으로 공부했어. 이모 엘리자베스 브랜웰이 자주 와서 보살펴 주었고, 집안일은 50대 나이 지긋한 하녀가 도맡아 하고 있었어. 아버지는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과 시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구독해서 아이들에게 읽히게 하고 서로 토론하기도 했단다. 사교 활동도 거의 안하고 집에서 주로 집에서 지내는 그들에게 교회와 주일학교에 나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사교활동이었어. 그렇다고 그들이 집에서 지루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야. 그림도 그리고 그들만의 상상 속 왕국을 만들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놀았단다. 이런 놀이들이 향후 그들이 소설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 그들이 그린 그림들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림들이 많고 이 책에도 많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몰라도, 그들의 그림 솜씨가 다들 좋았단다. 샬럿의 남동생이자 에밀리와 앤의 오빠인 브랜웰은 커서 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지.

십대 후반이 되어서 샬럿은 다시 학교에 갔는데, 로헤드라는 학교였어. 그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이 책에서 소개해 주었단다. 나중에 샬럿은 로헤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었어. 18살이 된 브랜웰은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위해 왕립미술원에 가기로 했어. 하지만 런던에서 2주간 머물다가 다시 돌아왔어. 방황의 시기가 아니었나 싶구나. 에밀리도 샬럿이 있는 로헤드 학교에 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세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단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보면 글이 좀 거칠면서도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거침이 틀에 짜인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나 보구나. 샬럿과 에밀리의 스승이었던 에제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모험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면, 에밀리는 그의 글처럼 거친 면이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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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에제 씨는 에밀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위대한 모험가가 됐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매우 논리적이어서 브론테 자매들의 철도 주식을 도맡아 관리했다. 이들은 브랜웰 이모의 유산을 모조리 철도에 투자했다. 샬럿은 1845년 울러 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에밀리는 신문에 철로에 관한 기사나 광고가 나오면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읽으며 그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해 왔어요. 게다가 우리는 도박성 투자를 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성 매입이나 매도도 삼가고 있어서 수익을 꽤 올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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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은 함께 일기소식지를 쓰면서 생각도 공유했단다. 일기를 함께 써나가는 것은 멋진 생각인데 너희들은 숙제 하느라 바쁘고 아빠도 이것저것 바쁘니 이런 것은 힘들 것 같구나.

에밀리와 앤도 나이가 들면서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근처의 학교에서 교사 일을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적응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어. 1841년 3월 샬럿은 이번에는 가정교사로 일하기 위해 리즈의 로던 지역으로 떠나고 앤은 요크쥬에서 가정교사 일을 했어. 이런 경험들이 <제인 에어>를 쓸 때 소설 속 제인 에어가 가정교사를 하는 부분에 도움이 되었겠구나. 그런데 가정교사 일도 쉽지 않았나 봐. 열악한 환경 탓으로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모였단다.

샬럿은 그래도 사회활동에 좀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 이모한테 부탁해서 샬럿과 에밀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공부하러 갔단다. 당시 샬럿과 에밀리는 공부하기애 좀 많은 이십대 중반이었어. 그들은 나이도 어리고 문화도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했어. 오히려 그들은 선생님들의 눈에 띠었어. 그들의 학식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알고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선생님 일을 겸하는 것을 제안했단다.

그런데 얼마 후 브랜웰 이모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집에 오게 되었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매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이모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들에게 큰 충격이었어. 장례식을 마치고 에밀리는 그냥 집에 머무르기로 했고 샬럿만 다시 브뤼셀 학교로 갔단다. 샬럿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는데 안타깝게도 그 대상이 유부남이었어. 예전에 스승으로 만나 알게 되었던 콩스탕탱 에제라는 사람인데 짝사랑을 하여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에제는 선을 분명히 지켰다고 했어. 사랑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오는데 그 사랑이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라 힘들구나.

 

2.

책은 에밀리가 시집으로 먼저 냈단다. 그 이후에 세 자매가 함께 시집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 다녔지만 응답이 없었어. 아일럿 앤 존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긴 했는데, 작가 자비로 출판한다면 해 준다고 했어. 브론테 자매는 그렇게라도 책을 냈단다. 하지만 여성 작가가 당시에는 약점일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 이름으로 된 필명으로 시집을 냈어. 하지만 그 시집은 실패하고 말았단다. 어떤 간행물에서 극찬을 한 경우가 있었으나, 판매량이나 인지도에서는 완벽한 실패였단다.

출판사에서는 오히려 시집보다 소설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단다. 그래서 샬럿은 <교수>라는 소설을,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을, 앤은 <아그네스 그레이>라는 소설을 썼단다. 이 소설들을 본 아일릿 앤 존스 출판사는 일단 출판을 거절해서 다른 출판사를 돌아다녔고, T.C 뉴비는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만 출간하기로 했어. 그것도 작가에게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말이야. 이름 없는 신인 작가의 설움이라고 할까.

..

샬럿은 이어서 <제인 에어>를 집필했고 스미스 앤 엘더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극찬뿐만 아니라 판매량에서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단다. 하지만 샬럿이 이 책을 필명으로 써서 가족과 친구들도 몰랐다고 하는구나. 심지어 남동생인 브랜웰은 이 사실도 모르고 갑자기 병이 생겨 죽고 말았어. 브랜웰은 이십 대 들어서 술과 약물을 많이 했는데 그것의 후유증으로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샬럿의 아버지 패트릭도 샬럿이 <제인 에어>를 썼다는 사실도 성공한 다음에 알게 되었어.

샬럿이 성공한 이후에 사람들은 에밀리와 앤의 작품도 다시 보기 시작했어. 그래서 세 자매는 모두 인정 받는 작가가 되었고 이제서야 꽃길만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앞서 이야기한 남동생 브랜웰이 죽은 것이 1848년 10월이었고, 두 달 뒤인 1848년 12월 에밀리가 폐결핵으로 죽고, 다음 해인 1849년 6월 앤도 폐결핵으로 죽고 말았단다. 1년도 안되어 세 동생이 모두 죽고 샬럿은 혼자 남았으니, 삶이 무너지는 듯 했을 거야.

이제 그 하워스 집에는 샬럿과 늙으신 아버지 둘이 지냈단다. 샬럿은 깊은 상심을 글쓰기로 치유하려고 했어. 소설 <셜리>를 이 때 썼는데, <셜리>라는 소설에는 에밀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다고 하는구나. <셜리>라는 소설도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구나. 이제 샬럿은 성공한 작가로 대외 활동도 했단다. 런던에 가서 다른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런던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기도 했어. 이런 작가들의 모임에서 엘리자베스 개스펠을 만나게 되는데 엘리자베스 개스펠은 나중에 샬럿이 죽고 나서, 샬럿의 아버지의 부탁으로 샬럿의 전기를 쓰게 된단다.

샬럿은 예전에 동생들과 함께 썼던 시집을 재출간하는 작업도 했어. 그리고 동생들의 소설들도 재출간했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을 재출간하면서 서문은 샬럿이 직접 썼단다.

샬럿은 창작활동도 계속하여 <빌레트>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것은 벨기에 브뤼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을 쓸 때는 잘 안 써져서 우울증을 겪기도 하지만, 출판 이후에는 호평이 이어졌다고 했어. 이 책은 아빠가 읽으려고 사두었는데, 이 책도 읽어봐야겠다. 그렇게 성공을 했지만 동생들을 잃은 슬픔은 여전했을 거야. 그런 샬럿에서도 사랑이 찾아왔단다. 아버지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가 청혼을 했어. 처음에는 샬럿이 아서의 청혼에 거절했지만, 편지를 계속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하자, 샬럿은 그제서야 청혼을 받아들였단다. 샬럿이 몸이 허약하고 나이도 적지 않아서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설득하여 1854년 6월 29일 38살의 나이에 결혼을 했단다. 아일랜드로 신혼 여행도 다녀왔어.

먼저 떠난 동생들의 행복까지 샬럿이 대신 살았으면 좋겠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참 얄궂구나.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 임신을 했는데 임신 중 병이 생겨서 그만 결혼한 지 9개월만 세상을 뜨고 말았단다. 샬럿의 나이는 서른여덟 살이었어. 아버지의 결혼 반대가 어쩌면 옳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모든 가족들은 모두 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 어떤 삶의 의미도 없었을 것 같구나. 늙어서 거동도 불편했던 패트릭. 사위인 아서는 장인어른이 돌아가실 때까지 보살펴 드렸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브론테 자매들은 모두 하늘의 별들이 되었단다. 명작 몇 편만을 남기고 말이야. 그들이 평균적인 수명만 살았어도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겨 아빠를 비롯한 오늘날의 독자들까지 읽는 즐거움을 더했을 텐데 말이야. 그래도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참 다행이구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읽었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고,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도 한번 읽어봐야겠고, 샬럿 브론테의 여러 작품들도 꼭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브론테는 자매들의 아버지인 패트릭 브론테는 이렇게 회고했다.

책의 끝 문장: 교회지기인 존 브라운에 따르면 니콜스는 샬럿의 유언대로 가족 중에 가장 오래 산 패트릭이 1861년 6월에 여든넷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를 돌보았다.


이 아이들은 교제를 원하지 않았다. 이들은 유치하고 떠들썩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보다 더 단단하게 결속된 가족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아동용 도서가 없었을 것이며,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영국 문학의 유익한 문장들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이 집의 하인들은 놀랍도록 총명한 브론테가의 아이들에게 크게 감명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P86
에밀리 브론테는 이때 벌써 우아하고 나긋나긋한 자태가 두드러졌어요. 아버지를 에외하면 가족 중에 에밀리의 키가 제일 컸죠. 샬럿처럼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나 언니처럼 꼬불꼬불한 곱슬머리를 부스스하게 방치했어요. 피부색도 언니처럼 색소가 부족한 듯 창백했죠. 에밀리의 눈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어요. 부드럽고 초롱초롱하며 투명한 눈이었죠. 하지만 너무 내서적이어서 사람들 똑바로 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답니다. 눈동자는 때로는 짙은 회색으로, 때로는 짙은 파란색으로 보였어요. 말수는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공명의 대상이었어요. 다른 누구도 그들 사이에 끼어든 적이 없었던 것처럼요.- P130
1843년 10월 14일 토요일 아침, 브뤼셀. 1교시 수업. 너무 춥다. 불도 없다. 아빠와 브랜웰과 에밀리와 앤과 태비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지내는 데 지쳤다. 삶이 음울하다. 이 학교에는 호감을 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단 한 명뿐이다. 또 한 명은 장밋빛 설당 과자 같지만 실상은 색분필일 뿐이라는 걸 나는 안다.- P186
‘우리는 죽은 형제를 보이지 않는 곳에 묻었습니다.’ 샬럿이 1848년 10월 2일, 출판사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지난주의 우울한 소란이 잠잠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망자를 애도하듯 그를 추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남자 형제가 떠난 것은 우리에게 징벌보다는 자비의 빛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브랜웰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누이들의 자랑이자 희망이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그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죠. 옳은 길로 돌아오길 희망하고 기대하고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절망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도 있었던 생명이 이른 나이에 갑작스레 빛을 잃고 종결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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