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객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냐고, 손 놓고 우리 인생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있냐고, 없죠? 근데 여행을 가면 남의 인생의
객이 되어서 그들의 인생을 구경할 수 있는 거야. 방관해도 된다고. 여행지니까, 남의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여행을 가면 맨날 인생에서 주인이 돼야
하네, 주체가 되어야 하네, 그런 부담 좀 덜고 한 발짝
떨어져서 인생을 좀 느긋하게 관망하고 즐길 수가 있는 거라고.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야.”
(180)
“골 빠지게 애써봐야 결국은 한두 개, 많아 봐야 몇 가지 깨달음 안에 갇혀서 사는 거예요. 표현만, 말만, 단어만 좀 바꿔가면서, 지가
깨달은 그 몇 가지 안에 갇혀서 답답하게 사는 거라고. 그러니까 인생이 이렇게 지루한 거야. 결국 반복일 뿐이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하고, 애써서 깨닫게 되는 게 결국 인생은 뻔하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라고. 그걸 깨닫기 전에는 다들 인생이 졸라, 뭔가 있을 줄 알지.”
(332-333)
“나는 노인이 돼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좋겠어. 식당은 아주 붐비지는
않고, 그렇지만 단골들이 있어서 문닫을 걱정은 없어. 그래서
구석 자리라면 종일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지만, 주로 커피와 차를 팔아. 근데 게다가, 술도 내어줘. 여름엔 시원한 술,
겨울엔 따뜻한 술, 봄, 가을엔 대충 사장 맘대로
술, 그런 식당엘, 오후에 찾아가서, 앉은 채로 졸아. 배를 먼저 채우고 커피를 기다리는 그사이를 늙은
몸이 못 견디고 조는 거야. 고개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아무도
깨우지 않아. 귀에 익은 소음에 스스로 깨어보면 식당은 여전히 적당히 분주하고, 앞에는 커피가 적당히 식어도 맛있어. 어느 날은 식당이 끝날 때까지
졸고, 가까운 지인이기도 한 사장이 나를 깨워서 집으로 보내주는 거지.
그런 식당이, 늙었을 때는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