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2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로주점>은 19세기 프랑스 하층민들의 삶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찬반 논란까지 일었던 작품이라고 했잖니. 그래도 주인공 제르베즈가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집도 장만하고
자신만의 세탁소도 장만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하면서 1권이 마무리되었단다. 그리고 2권에서는 제르베즈의 하나 남은 퍼즐인 사랑이 완성되길 바라면서
책을 펼쳤단다.
…
제르베즈의 생일 잔치 이후 쿠포는
랑티에와 아주 친한 술친구가 되었단다. 그래서 랑티에는 자주 제르베즈의 집에 찾아왔단다. 쿠포라는 사람은 1권에서 지붕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을 때 몸만
다친 것이 아니라 머리도 크게 다친 것 같구나. 그 이전에는 성실해 보이고 제르베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빌런이 따로 없구나. 랑티에가 누구니.. 제르베즈의 전 남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으나, 다른 여자랑 도망
간 사람이잖니. 결혼만 안 했지, 오랫동안 같이 살고 아이들도
낳았는데 말이야. 그런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 말이 되니. 제르베즈가 얼마나 불편한 상황이겠니.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런데, 랑티에는 특유의 사교력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도 랑티에를 대부분 좋아했단다. 랑티에는 이 마을로 이사 오고 싶다는 하자, 쿠포의 자신의 집으로
이사오라고 했어. 방 하나를 비워줄 수 있다면서 말이야. 제르베즈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쿠포는 결정하고 랑티에는 쿠포와 제르베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단다. 이제 쿠포와 랑티에는
집에서 술을 자주 먹고, 쿠포는 종종 만취하여 정신을 잃었단다. 그
때가 기회다 싶어 랑티에는 제르베즈에게 계속 수작을 부렸고, 결국 그들은 선을 넘어서고 말았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제르베즈가 끝내 랑티에를 거부하기를 바랬지만, 결국
아빠의 바램과는 반대로 되었단다.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 랑티에는 계속 제르베즈에게 접근했어. 마을에는 당연히 안
좋은 소문이 났지. 그런데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은 랑티에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제르베즈의 탓으로 돌렸단다. 일이 그렇게 되자 제르베즈는
자신을 짝사랑하고 거금까지 빌려준 구제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었어.
1.
문을 열고 난 이후 계속 수입이
늘어나기만 하던 세탁소도 점점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단다. 세탁의 질도 떨어져서 단골도 줄어들었어. 그러다 보니 빚은 다시 늘어나고, 집안의 가구나 물건들을 전당포에
맡기는 신세가 되었단다. 결국 더 이상 세탁소를 유지하기 어려워져 집까지 내놓게 되었단다. 그것을 비르지니와 푸아송 부부가 산다고 했단다. 비르지니가 누구니.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금은 친한 척하며 지내지만 먼 옛날 주먹다짐을 했던 사이잖니… 비르지니에게만은 집을 내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제르베즈의 집은 결국 비르지니에게 팔리고 말았단다.
제르베즈, 쿠포, 그리고 그들의 딸 나나는 작은 공동주택으로 이사해야 했어. 아참, 제르베즈와 랑티에서 태어난 아들들은 모두 성장하여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었단다. 이젠 세탁소도 없기 때문에 제르베즈는 다른 세탁소에서 직원으로 일해야 했어. 쿠포는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 살고 있었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정신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어. 이렇게 삶이 팍팍하고 되는 일이 없다 보니, 세탁소의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결국 짤리고 말았어.
제르베즈도 우연히 술을 먹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제르베즈도 알코올 중독 수준이 되었단다. 돈이
생기면 술을 먹었고, 술에 취했을 때만이 삶의 고통을 조금은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제르베즈는 오랜 시간 잘 살아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둑 무너지듯, 공든 탑이 무너지듯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단다. 제르베즈는
세탁소 일도 얻지 못해 굴욕적이지만, 결국 비르지니의 집에서 청소나 설거지를 하게 되었어. 그런데 제르베즈에게 그렇게 수작을 부렸던 랑티에가 이제는 비르시니의 바람 상대가 되어 있었단다.
….
한편 제르베즈의 딸 나나는 어느덧 15살이 되었단다. 엄마의 미모를 물려받아 나나도 예뻤단다. 나나는 여직공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나나의 외모 때문에 남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쿠포는 오히려 나나의 행실을 탓하며 나나를 때렸단다. 집에 오면 쿠포는 매일 나나를 때리고, 나중에 가서는 제르베즈도
나나를 때렸어. 결국 나나는 가출을 했단다. 이런 집구석에서
살기 어려웠을 거야.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는… 나나가 어떤
늙은 영감과 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어. 제르베즈는 나나를 찾으러 무도장에게 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춤에
빠지게 되고, 이제 제르베즈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것인가. 제르베즈와
쿠포는 결국 나나를 찾아 집으로 데려왔지만, 그들의 폭행은 여전했어.
나나는 결국 다시 가출하고 다시 집에 끌려오고, 이런 것을 반복하는 삶이 되고 말았어.
쿠포는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병원을
들락날락 하는 신세가 되었단다. 제르베즈도 정신병원만 안 갔지, 거의
알코올중독 수준이었어. 집의 물품들을 팔아 술을 사먹었고, 이제는
더 이상 팔 물건도 없는 거렁뱅이가 되었단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하여 하루 먹을 것을 구했을 뿐이야. 그러다가 우연히 구제를 만났단다. 구제는 여전히 제르베즈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나 봐. 제르베즈를 집에 데리고 와서 먹을 것을 주었어. 제르베지는 자존심이 조금은 남아 있었나 보구나. 밥을 먹고 배가
부르자 구제에게 자신이 한 짓을 생각하니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집으로 돌아왔단다. 다시 굶주림의 연속이었어. 구포는 정신병원을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몇 달 뒤 제르베즈는 집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단다.
제르베즈가 이렇게 비극적인 죽음이
이른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제르베즈 자신만의 잘못은 아닐 거야. 랑티에, 구포 등 남자를 잘못 만난 이유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 나라의 시스템에 제대로 완비되지 않아 이런 하층민들이 어려움에 빠지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지은이 에밀 졸라는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런 것이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지는 것이 프랑스 정부는 싫었던 것이 아닐까, 싶구나.
…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대는 있는 것 같구나. 우리나라에서도 가난 때문에 죽음에 이른 사람들의 뉴스를 간간히 들을 수
있잖니, 국가의 존재의 첫 번째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 아니겠니. 이제 정부도 바뀌었으니, 기대를 좀 가져보자꾸나. 그나저나 쿠포와 제르베즈가 모두 죽었으니 딸 나나는 홀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하기야 폭행만 가하는 부모는 없는 것이 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시리즈>를 두어
작품 더 사두었는데, 그 중에 <나나>라는 작품이 있단다. 조만간에
<나나>를 읽어봐야겠구나. 제르베즈의
불쌍한 딸 나나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구나. 부디, 나나라도
해피엔딩이 되길…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그 후 첫번째 토요일, 저녁식사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쿠포는 열시경 랑티에를 데리고 나타났다.
책의 끝 문장: 이제 편히 잘들라고,
어여쁜 부인!
"비자르가 부인을 발로 차서 죽인 거라고요." 제르베르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부인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거든요. 배 속 어딘가에 탈이 난 게 분명해요. 맙소사! 부인은 사흘 동안이나 몸을 뒤틀면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아! 아마 노예선에 보내진 불한당들도 그 남자만큼 악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편한테 맞아 죽는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법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겠죠. 매일같이 맞고 사는 여자들한테는 한 대 더 맞고 덜 맞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도 그 불쌍한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수형이라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더라구요. 글쎄, 물통 위해서 떨어져서 배를 다친 거라면서…… 그러고는 밤새 비명을 지르다가 죽었어요."- P38
당연하게도 나태와 빈곤함이 자리 잡은 곳에는 불결함이 따라왔다. 과거에 제르베즈의 자존심이었던 하늘을 연상시키는 근사한 파란색 가게는 이젠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창들과 판유리는 거리를 달리는 마차에서 튄 오물로 온통 뒤덮였다. 진열창 선반에 매달아놓은 놋쇠봉에는 병원에서 죽은 여자 고객들이 미처 찾아가지 못한 회색빛 누더기 옷 세 벌이 널려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 말리는 축축한 세탁물들의 습기 탓에 벽에서 떨어져 나간 퐁파두르 스타일의 사라사 벽지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거미줄처럼 너덜거렸다. 수없이 반복된 부지깽이질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부서진 난로는 고물상에 쌓인 낡은 무쇠 조각처럼 보였다- P87
다시 시트로 랄리를 덮어준 제르베즈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랄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예전에 검은 눈빛뿐이었다. 어린 소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시선으로 그림을 자르고 있는 자신의 두 아이를 응시했다. 방 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망연자실한 비자르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아니, 이럴 수는 없다. 이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아! 이렇게 엿 같은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제르베즈는 비자르의 집을 뛰쳐나와 정신없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삶에 깊은 회의가 느껴져 아무 승합마차에나 뛰어들어 그대로 바퀴에 깔려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