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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내 생각 속에서 너를 지운다고! 너는 내 존재의 일부야. 나 자신의 일부야. 내가 상스럽고 비천한 꼬마의 모습으로 (너는 그때도 그런 아이의 불쌍한 가슴에 상처를 입혔어) 이 곳에 처음 왔던 날 이후로, 너는 내가 읽어 왔던 모든 책의 한 줄 한 줄 속에 있었어. 넌 그때 이후로 내가 보와 왔던 모든 풍경들 속에 – 강물 위에, 배의 돛들 위에, 습지대에, 구름 속에, 햇살 속에, 어둠 속에, 바람 속에, 숲 속에, 바다에, 길거리들 위에 – 있었어. 넌 그동안 내 마음이 알게 된 모든 우아한 공상이 구체화된 존재였어. 런던에서 가장 튼튼한 건물들을 짓는 데 쓰인 돌덩이들조차도, 런던이든 어디든 모든 곳에서 내게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네 존재와 영향력보다는 덜 구체화된 존재들일 거야. 네 손으로 옮기기 덜 힘든 것들일 테고, 너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라는 존재로 일부로, 내 안에 있는 얼마 안 되는 선한 면의 일부로, 또 악한 면의 일부로 남아 있을 거야. 하지만 이렇게 이별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턴 너를 오직 내 선한 면하고만 결부시킬게. 그리고 앞으로는 충직하게 늘 그런 면만 붙들고 있을게. 지금은 비록 너무나 쓰라린 고통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너는 그동안 분명히 내게 해보다는 이로운 도움을 더 많이 주어 왔어!”


(227-228)

내가 살았던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산맥의 수많은 산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고산처럼 그 모든 걱정거리들을 지배하듯 굽어보고 있던 한 가지 걱정거리는 내 시야에서 결코 사라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원인지 아직은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발각되었다는 공포감이 새롭게 찾아오는 바람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고, 밤이 되어 허버트가 귀가하는 발소리가 평소보다 더 빨라지면 두려움에 떨면서 혹시 그가 나쁜 소식이라는 날개를 달고 오는 건 아닌지 잔뜩 귀 기울이며 앉아 있곤 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이라든가 그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그보다 더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계속 그대로 돌며 지속되었다.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끊임없이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에 빠져 사는 선고를 받은 셈이나 마찬가지였던 나는 보트의 노를 저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안간힘을 다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256-257)

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녀가 감수성 예민한 아이를 양녀로 데려와서, 자신의 미칠 듯한 분노와 퇴짜 맞은 애정과 상처 입은 자존심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주조해 내는 가혹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밝은 대낮의 햇빛을 차단함으로써 무한정 더 많은 것들을 차단시켜 버렸다는 것, 격리된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치유의 힘을 지닌 많은 영향들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 버렸다는 것, 고독한 수심에 빠진 그녀의 정신이, 창조주께서 정한 질서에 역행하는 모든 정신이 반드시 그리고 으레 그러하듯 병들어 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멸에 빠져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심히 부적합한 자의 모습으로, 헛된 참회와 헛된 후회와 헛된 자기 비하,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저주가 되어 버린 다른 모든 헛된 망상들처럼 지배적인 광증(狂症)이 되어 버린 헛된 슬픔에 사로잡힌 그녀를 내가 어찌 동정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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