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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죄인들의 숙제
  • 박경리
  • 21,600원 (10%1,200)
  • 2024-05-03
  • : 246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 님의 <죄인들의 숙제>라는 이야기를 해줄게. 박경리 님께서 <토지>라는 대작을 쓰셔서 우리한테 익숙하시지, 실제로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시던 시기는 아빠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빠가 어린 시절이란다. 그래서 박경리 님께서 책을 많이 쓰셨지만, 아빠가 알고 있는 것은 대표작들 몇 편뿐이란다. 그래서 직접 찾아봐야 박경리 님의 숨어 있는 명작들을 만들 수가 있어. 아빠가 작년에 박경리 님의 장편 대표작 <김약국의 딸들>을 읽고, 박경리 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겠다고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가 알게 된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죄인들의 숙제>란 책이란다.

물론 이번에 제목조차 처음 들어보는 책이란다. 그런데 책이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방대한 책이란다. 스무 권이 넘는 대하소설 <토지>를 쓰신 분이니, 800페이지 넘어가는 장편소설은 별 거 아니게 쓰실 지 모르겠지만, 일반 사람들, 아니 소설가를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작업이 아닐까 싶구나. 책 소개는 읽어보지도 않고, 지은이 이름만 보고 사고 읽었단다. 아빠가 읽은 박경리 님의 소설은 대하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뿐이니, 이 책도 당연히 역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소설은 박경리 님께서 살아가는 동시대의 시대상을 그린 소설이란다. 약간 우연도 지나치고 소위 막장 분위기도 좀 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단다.

아빠가 아침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소재가 딱 아침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줄거리를 가지고 있단다. 책이 두껍게도 겁 먹을 것이 없는 게, 일상적인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라 술술 읽혀졌단다. <죄인들의 숙제>라는 작품은 아빠도 태어나기 전인, 1969년 5월 24일부터 1970년 4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거의 매일 288회 연재를 했다고 하는구나. 독자들이 아침에 배달 온 신문을 집어 들고 매일 연재되는 이 소설을 읽는 모습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구나. 그 시절의 아침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구나.

 

1.

1969년이면 전쟁이 끝난 진 20년이 안 된 시절이라서 아직 전쟁의 아픔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주인공 윤희정 윤희련 자매도 그런 사람들이야. 그들은 사실 이복 자매란다.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희련을 낳았고, 아버지가 재혼할 때 희정은 외가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 집에는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희련이 있었던 거야. 희련은 희정을 언니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고, 희정도 그런 희련을 잘 대해주었단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고 부모님이 전쟁통에 돌아가시고 둘만 남은 거야. 더욱이 희정은 포탄으로 한쪽 팔을 잃어버렸단다. 희정이 살아가는 이유는 어린 동생 희련을 보살피고 잘 키우는 것이었단다. 처음부터 눈물 자극하는 스토리구나.

희련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자기 주장이 뚜렷해지면서 자주 싸우고 희정도 감정 폭발하여 큰 소리를 낼 때도 있었어. 희정은 자신이 한쪽 파리 없는 장애인이라서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도 안 했어. 그리고 희련은 장기수라는 화가와 결혼했다가 성격차이로 이혼하고 다시 언지 희정과 함께 살고 있었단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장기수는 술만 먹었다 하면 희련에게 계속 연락을 하는데, 찌질남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희련에게는 강은애라는 절친이 한 명 있단다. 강은애는 남편 정양구와 아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단다. 아주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런 가족 구성원이지. 남편은 회사에서도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이야. 희련이 열등감을 가질만한 그런 생활을 은애가 하고 있구나. 하지만 은애도 행복한 생활을 하는 이는 아니야. 우연히 백화점에 갔다가 바람을 피는 남편을 보았어. 아주 젊은 여자와 말이야. 자신이 본 것을 남편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참으려고 했지만, 남편도 자신이 바람 피는 것을 은애가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은애의 엄마는 정신병을 앓다가 일찍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그런 엄마를 두어서인지 은애도 정신적으로 나약했단다. 우울증 증세가 계속 있었어. 거기에 결혼 전에 사귀었던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알고 또 깊은 상처를 받았단다. 그런데 남편이 바람 피는 모습까지 목격했으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거야. 잠잠했던 조울 증상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단다.

 

2.

희련은 의상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어. 송인숙이라고 하는 희련의 후배가 있단다. 송인숙은 이 소설의 최대 빌런이라고 생각하면 돼. 인숙은 다짜고짜 파티를 한다면서 희련을 자기의 집에 초대를 했어. 어떤 파티냐고 물어봐도 실망하지 않을 파트니까 꼭 오라고만 했단다. 계속된 설득에 희련을 거절할 수 없었어. 그런데 거절했어야 하는 파티였단다. 송인숙은 별거 중인 최일석 전무라는 바람둥이를 희련과 연결시켜주려는 거야. 분위기가 좋지 않아 희련을 그 자리를 빨리 나왔단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최일석 전무는 계속 연락해 왔단다. 오늘날 같았으면 스토커로 신고를 해버렸을 텐데..

강은애의 남편 정양구가 바람 피는 상대는 남미라는 젊은 대학생이란다. 정양구는 그저 즐기는 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남미는 그런 정양구에게 조금씩 거리를 두려고 했어.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 사장을 비롯한 일행들과 함께 바다에 놀라간다고 했어. 정양구는 화가 났지만 자신은 회사 일도 그렇고 가정 일도 그래서 남미와 놀러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다. 남미는 그 이후 연락이 끊겼는데, 정양구가 몇 달 만에 연락을 해보니 남미는 그 레스토랑 사장인 로웰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거야. 로웰은 자신을 위해서 이혼까지 했다면서 말이야.

….

강은애의 오빠 강은식은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인데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에 왔단다. 엄마의 정신병 DNA 때문에 결혼도 안 하겠다고 다짐한 사람이야. 심지어 그런 유전자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에 정관수술까지 한 사람이야. 이미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구나. 강은식은 동생 은애를 통해서 희련을 알게 되었는데, 둘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되었어. 그런데 어느날 은애가 사라졌단다. 희련과 정양구는 은애가 자살했을까 봐 걱정했단다. 최근 조울 증세가 심해졌거든. 그런데 며칠 뒤 강은식이 대전에서 은애를 찾아와 데리고 와서 일단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에 머물게 했어. 그리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계룡산 갑사 근처에서 요양을 하기로 했단다. 남편 정양구는 바람 핀 사람 같지 않게, 지극정성으로 은애의 병간호를 해주었단다. 회사 때문에 매일 갈 수는 없지만 주말마다 내려가서 보살펴주었어. 어쩌면 ‘좋은 남편’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

빌런 인숙을 통해 희련은 언니 희정이 곗돈 사기를 당하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출판사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는 사실을 듣게 돼. 희정이 그렇게 망해가는 것을 인숙은 알면서도 방조했다고 볼 수 있지. 빌런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안 좋은 일은 얼른 가서 이야기를 하고… 희련도 이제서야 그동안 희정의 감정이 들쑥날쑥 했었는지 이해가 됐단다. 동생 모르게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했던 거야. 희련은 언니 희정에게 그 문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집을 팔아서 빚을 갚자고 했단다.

희정도 더 이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 보니, 희련의 말에 반대를 할 수 없었어. 그리고 자신이 사기를 당해 폭삭 망한 것을 이제 희련도 알게 되어서 오히려 심적으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았어. 이게 가족이지.. 어떤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끙끙대면 오히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점점 어려워질 수 있어. 그 문제점을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게 되면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가 된단다. 더 금방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이 점 명심^^

 

3.

희련은 은애가 요양하는 곳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은애 병간호도 하기로 했어. 당시는 전화도 쉽게 할 수 없는 시대라서, 편지로 알리고 길을 떠났단다. 그래서 먼저 와 있던 강은식을 그곳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었지. 며칠 머물면서 강은식과 더 친하지는 계기가 되었지. 하지만 한편으로 한번 이혼의 경험이 있는 희련은 남자를 만나는데 있어 조심하려고 했단다. 그에 반해 은식은 희련과 좀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런 둘 간의 속도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단다.

한편, 인숙은 희련이 강은식과 사귀는 사이가 되자, 둘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어. 그래서 강은식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지. 강은식은 인숙의 이간질에 넘어가 희련에게 차갑게 대하기도 했단다. 집 문제도 그렇고 강은식 문제도 그렇고 만사가 복잡한 희련은 시골 고모네 집에 내려갔단다. 핸드폰은커녕 집전화도 많이 없던 시절이라 뒤늦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안 강은식이 희련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어. 일본에서 하고 있는 일이 있어 계속 한국에 머물 수 없는 상황, 그는 희련에게 연락을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단다.

은애는 요양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고, 희련도 한 달 만에 서울로 돌아왔어. 집은 지인의 도움으로 팔리고 언니와 함께 조그마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로 했단다. 그런데 그 아파트에 뜻밖에 사람을 만났어. 은애의 남편 정양구였단다. 그 아파트는 정양구의 불륜 상대가 남미가 살던 집이었고, 정양구도 남미 생각이 나서 하필 그날 그 곳에 왔던 거야. 정양구는 당황했겠는데? 복덕방에서 이야기하기를 이전에 살던 아가씨는 암에 걸려 어디론가 사렸다고 했어. 다들 이런 저런 아픔들을 갖고 사는구나. 그래도 아빠는 이 소설이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충격적인 결론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은애가 아닌, 희련이 우울증에 심신이 약해져서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아빠가 이 소설이 왜 아침드라마 같다고 했는지 알겠지? 너무 뜻밖의 결말이라서 아빠도 살짝 당황했단다. 굳이 결말을 이렇게 하실 필요까지 있었나 싶었어.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고 하지만, 희련이 너무 불쌍하구나. 지은이들이 다들 아픔을 갖고 죄를 안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이 소설의 배경인 1960년대말 우리나라 사회상이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죄인들의 숙제>라는 소설은 지금까지 읽은 박경리 님의 소설과는 결이 다른 소설이라서 오히려 신선함마저 들었단다. 지은이가 박경리 님이 아니면 다소 식상한 소재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드라마 한 편 잘 본 기분이다. 2025년에 1960년대를 그린 소설을 읽는 것도 좋았단다. 그 시절의 사회상과 문화도 접할 수 있고 말이야. 앞으로 50년 후 지금 출간된 소설들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앞으로도 박경리 님의 소설들은 간간히 찾아 읽어봐야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여덟 시가 지나면 득실거리던 다방 안은 휑뎅그렁해진다.

책의 끝 문장: 덜렁이 사원 마스터 한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말이야, 태곳적부터 사람은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말을 내지르다 보니 문자가 생겨났고 답답증 때문에 소리를 내지르다 보니 음악이 생겨났고 모양을 나타내어 보고 싶은 답답증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 같은 게 생겨났을 성싶은데, 그래서 그놈의 답답증 때문에 종교니 철학이니 윤리 도덕이니, 그게 다 춥고 배가 고파서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야. 답답증, 다시 말하면 마음이 춥고 배고파서 생겨난 건데 그래서 인간은 동물보다 복잡해졌단 말이야. - P570
"여덟이에요. 나인 그렇다 치고, 난 엉큼하질 못해서 탁 털어놓는 거예요. 마음은 간절하면서 안 그런 체하는, 소위 그 숙녀라는 물건들을 보면 메스꺼워서 원, 나같이 솔직만 하다면 세상은 아주 살기 좋고 밝아질 거예요. 한국 사람들의 병이 바로 그거 아니에요? 남이 갖다주어서, 그래야 겨우 먹고 싶지도 않지만 권하니까 먹는다는 식으로 말에요. 배 속은 비어서 꾸럭꾸럭 소리가 나는데 한 푼어치 가치도 없는 체면치레는 사실 치사한 거예요. 난, 결혼 문제에도 그래요. 따지고 보면 목적은 간단한 데 공연한 사탕발림을 한단 말예요. 결혼이라는 것도 수지계산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P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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