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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mile
  • 한강 6
  • 조정래
  • 12,420원 (10%690)
  • 2007-01-30
  • : 323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6권의 이야기란다. <한강> 시리즈를 아빠가 20여 년 만에 다시 읽는 거잖아.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는 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는구나. 이번에 읽는 것이 새로 읽는 기분이거든…^^ 물론 아주 굵직한 내용이나 사건들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말이야. 자, 그럼 <한강> 6권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김광자는 서독에서 간호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의대 시험 준비를 했단다. 서독에 오기 전부터 의사의 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어. 김광자를 비롯한 우리나라에서 간 간호사들의 일상 생활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단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고 대부분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단다. 그들이 하는 일이 주로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 무척 힘들고 고된 일이었어. 그들이 성심 성의껏 일하다 보니, 서독에서는 한국 출신 간호사들에 인정을 해주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도 만들어졌단다.

하지만 간혹 안 좋은 일도 있었단다. 의대 유학생들에게 사기 당하고 버림 받은 간호사들도 있었단다. 간호사들은 광부들과 연애들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결혼한 광부가 결혼한 사실을 속이고 연애를 하는 경우도 있었어.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저런 일도 생기는가 보구나.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이나 광부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국가 이미지도 높아졌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광부 중에 박갑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김치를 잘 담궈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단다. 그 먼 타지에서 매일 독일 음식만 먹다 보니 한식 특히 김치가 얼마나 그리웠겠냐. 그런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이 인기가 좋은 것은 당연했을 거야. 박갑동은 자신의 김치 솜씨로 짝사랑하던 간호사 서미향과 사귀게 되기도 했단다.

5권에서도 등장한 전태일에 관한 이야기도 또 나온단다. 그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너무 가슴 아팠단다. 전태일은 동료 재단사들과 함께 바보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여 노동운동을 계속했단다. 피복공장들의 불법 노동의 실태를 알리는데 애를 썼지만 정부 기관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려고 했어. 5권에서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회사에서 잘리고 다른 곳에 취직도 어렵게 되었어. 그러다가 선거 기간이 다가오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태일과 바보회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치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어.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역시 안면몰수로 그들을 무시했단다.

전태일은 노동자들과 함께 몇 번의 시위를 했지만, 경찰의 강제 진압에 의해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단다. 결국 그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단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극단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 그는 자신의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을 하고 말았단다. 그는 죽기 전에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 라고 외치면서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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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전태일은 두 손에 이마를 대고 차가운 방바닥에 엎드렸다.

“주여, 약한 저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소서. 제가 저의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저의 죽음이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주소서.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돈 많고 권력 가진 자들의 서로 작당해서 속이고 또 속이고, 거기에 정부까지 한통속이 되어 있습니다. 그 벽은 높고 높으며, 두껍고 두껍습니다. 그 벽을 어찌해야 깰 수 있겠나이까. 그 벽을 깨고 모든 사람끼리 빈부도, 강약도, 귀천도 없는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한 몸을 육탄으로 날리는 길뿐이라고 여겨지옵니다. 이 미천한 몸 하나 육탄으로 날아가 산산이 부서져서 천대받고 억눌려 사는 모든 노동자들이 눈 똑바로 뜨고 자기들을 보게 하고자 하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함께 뭉쳐 일어나 그 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인간다운 세상을 이룩해 내는 데 한 톨 불씨이고자 하나이다. 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번뇌하였으나 이 길이 가장 옳은 길이라 여겨지옵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2천 년 동안 끝없이 부활하시기 위함이었나이다. 이 나약한 자 감히 주님의 가르침을 한 중 거름이 거고자 하오니 주여, 부축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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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두만은 여전히 가발용 머리카락을 사러 산골 마을을 돌아다녔단다. 이제는 나복남도 함께 다녔어. 나복남은 스테인리스 공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리고 쫓겨나고 말았잖아. 그런데 가발용 머리카락을 구하는 것이 예전만 못했단다.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웬만한 시골 구석까지 다 쓸어들 갔거든. 가발 공장도 이제는 인조 머리카락으로 많이 바뀌기도 했고 말이야. 그래도 천두만은 조금만 더 돈을 모으면 딸과 함께 가발 하청공장을 차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복남은 천두만 아저씨와 시골 원정을 다녀온 후 집에 와서 피복공장에 다니는 동생 나윤자로부터 전태일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단다. 전태일의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놀라운 이야기뿐이었어. 자신은 근로기준법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전태일은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노동 운동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자신은 충분히 먹고 살수 있는데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 운동을 한 것에 놀라웠고, 사업주의 불법 노동 실태를 알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야. 자신은 자신의 억울한 일에 대해 복수할 생각만 했지, 그렇게 법으로 해결할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복남은 그때부터 근로기준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단다.

….

이 시절 월남, 그러니까 베트남에 많은 사람들이 파병 가기도 하고 일하러 갔다고 했잖아. 문태복이라는 사람은 도박에 빠져서 돈을 제대로 못 모으고 있다고 했지. 그는 잃은 돈을 도박에서 벌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도박을 했지만 그에게 늘어난 것은 빚뿐이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박 일행 중에 사기를 치는 일당이 있었어. 그들은 돈을 벌 만큼 번 다음에 서로 다투는 쇼를 하고 그 벌로 추방되어 귀국을 하게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계획된 것이었다는 것이 그들이 떠난 후에 알려졌단다. 문태복만 빚이 너무 많아서 월급을 받는 족족 빚을 갚느라 한 푼도 남지 않았단다. 택시를 사겠다는 그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지.

김명숙은 차장 일을 그만두고 가발공장에서 일했어. 어느덧 가출한 지 십 년이 거의 다 되었어. 이제 마음을 새로 잡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고향집에 가 보았단다. 그런 그를 어머니는 여전히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셨어. 다른 형제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단다. 큰 오빠 김선오는 검사가 되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가족과 점점 멀리하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큰 언니 김광자는 서독에서 간호사가 되었고 언니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했어. 남동생 김선태도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 고시 공부를 하고 있고, 여동생 김금숙은 사법대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고 있고, 막내 김선진은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었어. 다른 식구들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만 초라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김선태는 고등고시에 또 떨어지고 말았단다. 떨어질 때마다 형 선오에게 무시를 받았어. 누나 김광자가 멀리 독일에서 그를 지지해주었고, 돌아온 김명숙도 그를 응원해 주어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단다. 명숙도 선태와 함께 지내면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자신은 양재(디자인) 학원을 다니면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갔어.

유일표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해줄게. 그들도 어느덧 29살이 되었단다. 허진은 드디어 회사에 입사를 했고, 이상재는 신문기자가 되어 일을 했고 최주한도 입사하여 포항제철 관련된 을을 했어. 하지만 유일표는 여전히 아버지의 월북 이력 때문에 일반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없었어. 여전히 근로재건단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에게 야학을 가르치고 있었단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해결하는 일도 있어. 어느 날은 한 아이가 마약유통에 관여되어 경찰에 입건되었어. 재건단 단장인 이용진과 유일표가 경찰에 며칠씩 가서 선처를 구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유일표는 고민하다가 강숙자 누나 찬스를 썼단다. 강숙자는 유일표의 일이라면 늘 적극적으로 도와주었거든. 이번에는 강숙자는 남편 홍석주 판사에게 부탁을 했고, 그 아이는 바로 풀려날 수 있었단다.

이 시절 한강 넘어 강남이 처음 개발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 소식을 먼저 알게 된 정부 기관의 고위직의 부인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어. 강남의 땅들을 대거 사기 시작했단다. 한인곤의 동생이지만 오빠와 달리 돈 욕심이 많은 한정임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단다. 그때 그렇게 산 사람들의 땅은 그 이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 되어 강남 갑부가 되었고, 그 후세들은 여전히 그 돈의 영향력에 있을 거야.

박정희는 3선 개헌을 강행했단다. 원래 대통령은 2번까지만 가능했는데 그 법을 바꿔 세 번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3선 개헌이었어. 이 법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주 강했단다. 지금이야 3선 개헌이겠지만, 또 대통령이 되면 4선, 5선 계속 개헌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더 이상 국민이 대통령을 뽑지 않고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유신 헌법이 만들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된단다. 이 때 야당 대통령 후보로 젊은 김대중이 나서게 되는데 김대중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단다. 그 때 박정희가 들고 나온 것이 지역 감정이었단다. 아주 노골적인 지역 감정 작전으로 경상도에서 몰표를 얻게 되는데 이것으로 박정희는 3선에 성공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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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56)

“바로 그거요. 모든 신문들도 은근히 그런 냄새를 풍기고 있고, 세상 인심도 그리 돌아가고 있듯이 이번 선거는 분명 우리 경상도와 전라도의 싸움일 수밖에 없소.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유권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해요. 우리끼리니까 터놓고 하는 얘긴데, 유권자 설득작전에서 그냥 막연하게 우리가 같은 경상도니까 경상도를 찍자 해서는 효과가 좋지 않아요. 특히 지식수준이 낮고 단순한 사람들일수록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이건 된장이고 간장이고 고추장이다 하는 식으로 꼭꼭 찍어서 쉽게 말해야 효과가 나요. 다시 말하면, 우리 경상도가 이렇게 잘살게 된 건 누구 덕이냐? 다 각하 덕이다. 왜냐하면 각하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1차, 2차 단행하시면서 덕을 제일 많이 입히신 데가 우리 경상도 아니냐. 부산, 대구를 양대 중심으로 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더 말할 것 없고, 울산을 개발했고, 마산에 수출자유지역을 만들었고,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지 않았느냐. 다 이런 혜택으로 딴 데보다 더 잘살게 된 것이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폐일언하고 우리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똘똘 뭉쳐 또다시 각하를 찍어 대통령으로 받들어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아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누렸던 그 모든 혜택이 다 전라도땅으로 가버린다. 여러분, 이런 사실들을 명백하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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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천두만 아저씨는 여전히 나복남에 대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어. 나복남의 아버지 일도 그렇고 나복남의 취직자리도 자신이 알아봐 준 것이고 그곳에서 사고로 손가락이 잘려났으니까 말이야. 천두만은 고민하다가 서동철을 찾아가 나복남의 취직 자리를 부탁하려고 했어. 서동철은 나복남의 사연을 듣더니 그 억울함에 분개를 했어. 당장에 스테인리스 회사의 사장을 찾아가서 주먹으로 해결했단다. 서동철은 그 자리에서 거금의 보상금을 뜯어내서 나복남에게 주었단다. 법이 못한 일을 서동철이 한 방에 해결해 준 거야. 서동철이 한 행위가 비록 정당하지는 못했지만, 속은 다 시원하더구나. 어차피 당시 법이라는 것이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 자본가의 편이니 법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으니 말이야. 나복남은 서동철의 도움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었어.

이규백은 여전히 처가살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 아내의 쌀쌀맞음과 처가 식구들의 멸시는 참을 수 없었지. 사고를 치고 다니는 처남이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단다. 처남이 사고를 치고 다니면 이규백이 처리를 해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처가 식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야.

한인곤을 야당 국회의원으로 쓴소리를 계속 하다가 결국 어디론가 끌려가 며칠 고문을 당하고 약점이 잡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어.

이상재는 기자가 되었다고 했잖아.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어. 서울 판자촌을 개발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성남으로 내쫓게 되는데 성남으로 내쫓긴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 공장을 300개 짓기로 약속을 했단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 그렇다 보니 성남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생계 위협을 느꼈어. 당시만 해도 교통이 안 좋아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은 불가능했어. 성남 지역을 취재를 간 이상재는 충격을 받았어. 그곳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어. 돈을 벌기 위해 십대 소녀들이 몸을 팔기도 했고, 굶주리다 못해 아기를 삶아 먹었다는 소문도 있었어. 결국 폭동이 일어났지만 정부를 방관했어.

….

서동철은 옛 조폭 두목이 십 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를 했어. 그러면서 조폭간의 세력 다툼이 있었어. 서동철파가 이기긴 했지만 서동철도 칼에 등을 찔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단다. 면회 간 유일민… 서동철이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어. 그 이유는 유일민에 예전에 방탄조끼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서동철의 유일민의 말을 듣고 그 방탄조끼를 입었기 때문이란다. 조폭 서동철과 유일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삶을 그려가지만 그들은 진정한 친구인 것 같구나.

….

6권까지의 이야기는 대략 이 정도란다. 6권으로 4권부터 이어진 제2부 유형시대가 끝이 났단다. 마지막 3부 불신시대는 7권부터 10권까지의 이야기인데, 이것도 조만간 이야기해줄게. 어느덧 4월이구나. 몇 주 전 탄핵도 인용되어 이제 진짜 봄이 찾아왔구나. 이 봄도 금방 지나가겠지만, 함께 이 봄을 즐기자꾸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비켜요, 난 독일사람이에요!”

책의 끝 문장: 수상하잖아?



"응, 나도 이번 사건으로 모든 걸 알게 된 건데, 우리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근로조건이라는 게 있어. 하루에 일은 여덟 시간만 한다. 야근을 시키면 야근 수당을 따로 지급해야 한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쉬어야 한다. 공장 안의 작업환경은 건강을 해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식으로 정해놓은 거야. 그밖에도 노동자들을 위한 법이 많은데, 그 법들을 다 합해놓은 게 근로기준법이라는 거야. 그런데 사장들은 그 법을 하나도 안 지키잖아. 그래서 그 사람은 모든 걸 법이 정한 대로 하게 하려고 우리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들고일어나게 하는 일을 시작했어. 그걸 노동운동이라고 해."- P57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일까…… 배운 것이 많은가…… 아니지, 스물두 살에 벌써 재단사 노릇을 했다면 아무리 짧아도 5년은 봉제공장밥을 먹었을 것 아닌가. 그럼 아무리 많이 배웠어야 중학교밖에 더 나왔겠는가. 그렇다면 많이 배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스텐공장은 일하는 모든 조건이 봉제공장에 비해 나빴으면 나빴지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은 막소주나 마시며 불평을 했을 뿐이지 그 사람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공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 어린 사람이 남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다니…… 그게 똑똑한 것인가…… 어리석은 것인가…… 이 야박하고 약아빠진 세상에서 그런 사람이 있다니……- P60
월출산은 바위산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빼어난 산이었다. 월출산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은 두 가지 사실이 합해져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방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줄기라고는 없이 질펀한 들녘일 뿐인데 어찌 그렇게 거대한 바위산이 솟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바위산이 되 무작정 커서 위압적인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산을 이루고, 그 산들은 겹겹이 큰 산을 이루어내며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조화되어 있었다. 넓은 들판 가운데 솟아 더욱 우람해 보이고, 그러면서 수많은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섬세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월출산은 바위산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그 겹겹의 봉우리에 안개가 감겨 있을 때는 범접하기 어렵게 신령스럽기 그지없었고, 눈이 하얗게 내려 있으면 신선의 세상이 저기가 아닌가 싶게 신비스러움은 절정을 이루었다.- P95
그 길을 따라 사나이의 젊은 꿈도 접고, 야속한 운명에 절망하며 절룩절룩 걸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외롭고 슬픈 모습이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지금의 영상이 아니라 그 시를 외웠던 중학생 때의 영상이었다. 그 영상은 변함이 없는데 왜 시는 떠오르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 간간하게 말하면 세월 따라 잊혀진 것이었다. 그런데 최주한은 야릇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마치 누구한테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의 배면에는, 그럼 나는 서울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그것을 빼앗아간 것은 서울이었다. 중학생 시절에 비해 서울에서 보낸 세월은 긴 세월이었다. 그 세월은 중학생인 어린 시절 한때 외웠던 시를 잊혀지게 할만도 했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상실감이 드는 것은 자신이 처한 궁색한 처지 때문일 수도 있었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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