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역사책을 이야기해줄게. 정통역사는 아니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면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란다. 조형근 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라는 책인데, 책 제목은 이 책에 실린 18편의 이야기 중에 한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있었어. 그래서 찾아보니 어떤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내용이 있더구나.
…
책 제목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는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 몰랐지만, 오래 전 유명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떠오르게 했단다. 이 영화는 유명해서 아빠도
제목은 알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영화이다 보니 아빠도 보진 못했단다.
그 다리에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단다.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도에 있는 다리인데 태국에 있다고 하더구나.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내용도 이 책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되었는데, 콰이강의 다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잡혀온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다리이고, 일본군 장교와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 장교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부역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으니 콰이강의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구나. 다만, 노동자로 있는 것이 아니고 포로감시원으로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려고 했어.
아빠가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에서도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단다. 일본군 밑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전범자로 분류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도 기억나는구나. 이것이 올바른 재판인가에 대해 생각했었지. 이 책에서도 그런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강제로
끌려오긴 했지만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임 몇몇은 인간적으로 대해준 사람들도 있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다루기도 했대. 이런 경우 그들을 전범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가. 만약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런 짓을 했겠는가. 아빠
생각에 그들이 전범자로 교수형까지 당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단다.
1.
이 책에 실린 18가지 이야기 중에 조선인 포로감시원 이야기처럼 예전에 다른 책들을 통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고 있었고,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있었단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이야기는 리샹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란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만주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만들었어. 만주국은 1932년에 세워져
1945년에 사라진 나라로 아주 짧은 역사를 가졌구나. 이런 만주국의 최고의 스타로 알려진
리샹란이라는 배우 겸 가수가 있었단다. 당시 사진이 실렸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구적인 미모를 가진 사람이었어. 만주국에서 만든 영화에 많이 출연하였는데, 주로 일본의 부역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가수로도 활약했는데, 등려군의 노래로 잘 알려진 <아래향>이라는 노래의 원곡도 이 사람이 불렀다고 하는구나. 리샹란의
신분이 철저히 숨겨져 있어서 중국,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리샹란의 부모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대.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리샹란의 부모가 일본 사람이고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것이 밝혀졌어. 일본이 처음부터 리샹란을 선정용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했어. 리샹란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대. 일본에 와서는 영화배우로
계속 활동하여 미국에서도 영화를 찍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을 했대.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동하였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단체 입장에서 기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하지만 2014년 그가 죽고 나서 일본 정부 위안부에 대해 쓴 야마구치
요시코의 글도 삭제되었다는구나. 일본 정부는 못 말릴 사람들이구나.
…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일제 시대에 참가하여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달렸지만, 그의 금메달 소식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었단다. 그리고
함께 달린 남승룡이라는 분도 동메달을 따서 기쁨은 두 배가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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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방송은
끊겨도 신문은 쉬지 않았다. 베를린과 계속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손기정이 1위로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 왔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새벽 1시께 다시 광화문에 사람이 모였다. 점점 더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마침내 새벽 2시께, 동아일보 사옥 2층
창으로 여자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손기정 선수가 일착으로 골인해 우승했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멍했다. 이윽고 펄펄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만세, 만세, 손기정
군 만세!” 잠시 후 제2보가 전해졌다. “다시 베를린에서 온 소식입니다. 손기정 군이 2시간 29분 12초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남승룡 군도 3위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 소리를 질렀다. 함성은 어느새 “조선
만세”로 바뀌고 있었다. 온 조선이 함께 환호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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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올림픽이 하필 베를린이었구나. 히틀러의 나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그 베를린. 올림픽을 마치고
독일에서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이 올림픽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는데 손기정도 그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는구나. 손기정을
더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친 나치이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대. 전쟁이 끝나고 레니 리펜슈팔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거장으로 거듭나지만, 나치 연루자의 꼬리표는 계속 달고 다녔단다. 레니는 자신은 그것에
대해 변명처럼 이야기하기를, 당시 자신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대. 너무 하기 쉬운 변명이 아닌가 싶구나. 레니 리펜슈팔과 달리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독일출신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하는구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 나치에 맞섰다고 하는구나.
레니 리펜슈탈처럼 처음부터 나치
연루자인 것이 알려진 사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나치 친위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이들도 있었대.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양철북>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라는 사람이야.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난 몇 년 뒤 자신이 나치 친위대였다며 양심 선언을 했다고 했어. 그 전에 나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고, 노벨문학상까지 받고 침묵했던 그가 뒤늦게 양심선언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일었다고 하는구나. 양심 선언의 용기보다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컸다는구나.
….
너희들도 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란다. 영화 속 히로인 마리아가 쓴 책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실제보다 마리아가 너무 미화되었다고
하는구나. 폰 트랍 대령으로 나온 아이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아이들에게 무척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다고 했고, 마리아가 자신들의 집에 오기 전에 이미 악기들을 연주하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영화가 오히려 그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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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75)
아카테는
뮤지컬을 보고 울었다. 다른 가족들도 속상해했다. 무대에
오른 냉정한 남자는 아빠가 아니었다. 뮤지컬과 영화는 아름다웠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가족 이야기의 판권을 9000달러라는 헐값에 독일 영화사에 팔았고, 영화사는
다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제작사에 판권을 팔았다. 그리고 영화로 이어졌다. 가족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됐고, 기억을 빼앗긴 느낌이었다고 90세가 다 된 아가테는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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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화를 바탕으로 두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너희들과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다행히 너희들은 몰랐다고 해서 아빠의 말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이
책에 실린 몇 가지 야이기를 해주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책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단다. 하지만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구나. 바빠서 책 읽은 시간들이 없긴 하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3년 3월 28일,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리샹란(1920~2014)은 만주국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영화배우와 가수로서 만주국을 넘어 중국과 조선,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각지에 명성을 떨쳤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성 스타라면 조선의 최승희와 만주국의 리샹란을 꼽게 된다. 최승희 후원회에는 여운형과 마해송, 후일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유명인들도 속해 있었지만, 그래봐야 이들은 권력 없는 문인이었다. 그에 비해 리샹란의 후원자들은 만주국의 실세들이었다. 그녀를 키운 건 일본 제국주의였다. 마치 푸이가 그랬던 것처럼.- P20
역사적 책임에 관한 오랜 고민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그 말들 속에서 증발했다. 리샹란, 아니 야마구치 요시코와 그의 동료들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물 수 없는 편법을 추진했다고 비판받았다. 지금은 한국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젓고 있다. (역사의) 전진이나 후퇴와 같은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써야만 한다.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P31
<나비부인>은 예술의 이름을 빌려 동양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성적 환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사람 푸치니가 어쩌다 미국 장교와 일본 여성 사이의 사랑을 오페라 소재로 삼게 됐을까? 전기에 따르면 코벤트가든에서 <토스카> 초연을 보기 위해 런던에 머물던 1900년 6월 무렵, <나비부인, 일본의 비극>이라는 단막극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미국 해군 장교가 일본에 파견 나와 게이샤를 아내로 두고 자식까지 낳지만, 곧 ‘진짜’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영어가 짧은 푸치니였지만 바로 이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던 모양이다. 푸치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당시 서양 세계는 이 이야기에 미친 듯 열광했다."- P133
베트남전쟁은 20세기의 가장 부도덕한 전쟁 중 하나였다. 크리스처럼 잠시 베트남에 온 미국의 시각으로는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베트남전쟁은 30여 년에 걸친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만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오늘날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이 진주한다. 나치의 괴뢰 비시프랑스 정부의 지시를 받은 프랑스군은 전투에 없이 일본군의 온순한 포로가 됐다. 종전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베트남 남부에는 영국군이, 북부에는 중국군이 진주한다. 영국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프랑스군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지배하겠다고 선언한다. - P141
2012년 3월 29일,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50년 경과를 기념하는 연설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이렇게 전쟁을 미화했다. "베트남전쟁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피부색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지닌 채, 매우 힘겨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함께 의무를 다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사랑하는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따뜻한 가족의 품을 떠나야 했던 미국인들의 이야기다." 권투 영웅 무하마드 알리처럼 부도덕한 전쟁에 끌려가길 거부하며 감옥행을 택했던 수많은 이들, 반전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미국인 대중의 분노를 생략하는 화법이다. 미군의 총칼에 죽은 베트남인에 대해 침묵하는 화법이다.- P144
님 웨일즈와의 인터뷰 말미에 장지락은 강경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 아닐까? …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적과의 싸움에 목숨 건 혁명가들이 동지가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의혹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독립혁명의 길에서 증오가 자랐다. 미움이 서로를, 스스로를 파괴하기 일수였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쨌든 나아가야 했다. 싸우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