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들었던 책이었는데, 서른 장 읽고 책을 덮었다. 망자의 이름을 부르고, 그가 겪었던 끔찍한 폭력을 마주하는데 감정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는 해결해야 할 일도 있었을 때라 잠시 책을 덮어야 했다. 다시 책을 펼쳤을 때는 12월, 논문을 마치고 나서였다. 차분하게, 덤덤하게 읽자고 다짐했는데 매번 실패했다. 소중하고 빛났던 그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숨 쉬는 것조차 미안했다. 같은 하늘, 비슷한 시간대에 이들과 함께 숨 쉬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윤승주, 이예람, 홍정기, 변희수. 그리고 군대에서 폭력과 차별에 맞섰던 수많은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이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를 한다. 윤승주도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윤승주는 동료 전우에게 온몸이 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살인적인 폭력은 윤승주만의 문제도 아니었고, 윤승주가 있는 부대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군’이라는 곳곳에서 식고문,
물고문, 성고문이 동료 전우로부터 가해졌다. ‘고문’이라는 단어 앞에 ‘동료’, ‘전우’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고문은 ‘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토를 방위하기 위해 군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여군 이예람은 상관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이예람은 성폭력 신고 이후에도 가해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가해자를 보호하는 군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되고자 했던 변희수는 트렌스젠더 여성이 되자마자 사회와 군대로부터 배제되었다. 지금도 변희수 하사 뉴스 댓글에는 그의 삶과 선택을 부정하는 폭력이 반복되고 있다. 사회로부터 단절된 군대라는 장소에서 ‘사람’은 파편화된다. 국가는 징집을 이유로 청년들을 군대로 끌고 가는데 유능하지만, 병사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는다. 특히 규율과 통제 아래 폭력이 은폐되면서 피해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폭력이 일상이 돼버린 장소에서 버티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 여겼을 그들이 끝내 목숨을 거둘 때까지 심경은 무엇이었을까. 군대란 ‘원래’ 그런 곳, ‘바뀔 수 없다’는 체념이었을까. 정말 숨이 막힌다. 군인이 되는 순간 인간의 권리를 압수당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 군인 또한 사람의 권리를 가지고 살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군은 사회로부터 단절된 공간이 아닌 사회의 공간 속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동료 전우를 적보다 못한 취급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군은 끝까지 피해자로 삶을 마감한 망자를 사람의 지위로써 인정하지 않는다.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건을 부실수사했던 전익수는 12월 28일 장군으로 전역했고, 변희수는 여전히 군으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는 군을 우리 사회의 공간으로 품고, 그렇게 군인과 인권을 연결한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가 담겨 있다. 활동가들은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를 들었고, 절망스러운 눈빛을 읽었다.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군인의 진정한 동료가 되고자 했다. 턱없이 부족한 결과에 답답할 때도 있고, 변화의 순간 사무치게 그리운 이름들이 있겠지만. 활동가들 덕분에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삶과 군대를 변화시킨 이들이 분명 군대와 사회 곳곳에서 함께하고 있다. ‘용기’에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오늘도 활동가들은 현장을 뛸 것이다. 활동가들이 피해자와 함께 이룬 변화를 응원하고 싶다. 마음과 삶으로 꾹꾹 누른 글이었다. 잘 읽었다.
#군인권열외 #기억해야할_네사람 #그래도_걸어온_여덟걸음 #더_나은_군을_위한_세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