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기필코 서바이벌!
열매 2016/12/2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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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필코 서바이벌!
- 박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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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6-05
- : 570
중학교 2학년 때 내가 반 전체 왕따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우리반 공부 너무 못한다고 각성하라고 반 전체 점수와 석차를 교실 게시판에 붙였다(지금 생각하니 이거 완전 인권침해인데... 20세기 일이라..). 애들은 욕을 하면서도 게시판에 가서 자기 앞뒤에 누가 있는지를 봤다. 그런데 내 입이 방정이었다. 12과목이라 총점이 1200점이었는데 명단을 쭉 보다가 1004점 맞은 애 이름을 한 번 입 밖에, 500점 맞은 애 이름을 또 한 번 입 밖으로 낸 것이다. 1004점 맞은 애는 자기도 신기하다며 같이 웃었지만 500점 맞은 애는 자기를 무시한다고 난리가 났다. 그애는 노는 애였고 친언니가 바로 한 학년 위의 노는 언니였다. 우리반 노는 애들이 다~ 내 책상 앞에 몰려왔다. 나한테 직접 얘기한 건 아니고 자기 친구 편들어준다고 ˝공부 못하는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겁을 줬다. 그애 언니도 우리반 교실 앞에 와서는 ˝어느 가시나고? 주디를 찢어뿐다!˝ 하면서 큰소리를 내고 갔다.
내가 아무 배경(?) 없는 애였으면 진짜 끌려가서 몇 대 맞았을 것이다. 나는 전혀 노는 애가 아니었지만 집에서 내놓은 친오빠가 근처 인문계 남고 일짱이었다. 애들은 몰랐으면 했지만 노는 애들 사이에선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 아무도 나한테 직접 따지지 못했던 것이다. 일생에 도움된 적 없는 오빠의 존재가 유일하게 고마웠던 순간이었다. 그래도 분위기는 살벌해서 며칠 간은 우리반 애들이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쉬는 시간마다 눈물이 찔끔 나는 걸 참고 교과서 글씨만 뚫어져라 보는데 그 기분은 차마 말로 다 설명 못한다. 결국 내가 그 500점 소녀에게 정말 미안하다, 나는 점수가 높고 낮고를 떠나서 500점을 딱 맞춘 게 신기했을 따름이지만 그것도 상대방 기분은 생각을 못한 것 같다. 상처 받았으면 정말 미안하다. 하고 구구절절이 사과를 하고 끝났다.
<기필코 서바이벌>은 주인공 장서란이 전따가 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무 이유도 없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이의 가해자로 지목된 것이다. 장서란은 결백했고 자신이 왜 함정에 빠졌는지 생각해보다가 깨달았다. 네가지가 없어서 그렇다는 걸. 그렇다고 억울한 누명을 쓸 수는 없는 일. 장서란은 자신이 누명을 쓰게 된 이유를 파고 들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이는 중학교 때 친했던 그룹의 아이들 사이에서 생긴 다른 문제로 죄책감을 느끼던 중이었고, 그 비밀을 공유하는 한 아이가 그걸 덮으려고 평소에 싸가지 없던 주인공을 끌어들인 거였다. 아니 맘에 안 들면 안 놀면 되지 왜 누명을 씌워? 기집애 엄청 못됐네. 하고 내가 흥분하는 이유는 어릴 때 그 일 때문이겠지. 여론 몰이 하는 것들이 제일 나빠! 그러면서. ㅎㅎㅎ
작가는 그 과정을 추리소설처럼 단서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면서 끌어간다. 교통사고난 아이 병원에서 알게 된 단서로, 또 다른 아이들을 찾아 나가며 그애들에게 단서를 수집하고 그것들을 모두 조합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아이에게 덫을 놓아 마침내는 걸려들게 한다. 범인에 대한 심증은 처음부터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간다.
어른스럽고 냉철한 한편 섬세한 주인공의 심리를 잘 풀어내는 서술이 훌륭했다. 복잡한 사건들은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도 보였지만 그래도 끝에 가서 잘 마무리를 지었으니 됐다. 살림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한다. 2017 책따세 추천도서라고 하니 많은 아이들이 읽었으면. 그리고 당당해지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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