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팟캐스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폭 20센티미터짜리 길이 두 개 있다.
그 길이 하나는 옥상난간 위에 있고 또 하나는 넓은 운동장에 그려져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언뜻 보면 똑같아보이는 조건 - 똑같은 폭 20센티의 길. 똑같은 출발선-
에서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너의 노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길이 아니라 그 주변의 환경, 옥상난간이냐, 운동장이냐 하는 것을 똑같은 조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옥상 난간이라면 한 발 한 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허리에 땀이 솟을
것이다. 아차 하면 떨어져 죽을수도 있다는 공포로 아예 출발을 못할 수도 있다.
운동장에 그어진 길이라면 얼마든지 자신감있게 걸을 수 있다. 뛸 수도 있다. 실수로 길을 좀
벗어난다 해도 뭐 대단히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앞에 놓인 길을 둘러싼 환경. 이것이 바로 안전자산이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 이런 것들 말이다. 꼭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 옆에
운동장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용기' 라든가 '도전정신' ' 의지' ' 열정' '자신감' 이런 것들이 과연 개인의 일일까?
옥상 난간 위 20센티 길앞에 선 청년에게 너의 용기없음을 질책할 수 있을까?
자칫하면, 한 번 실수만으로도 떨어져서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전지적 불평등 시점> 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져보면 모든 것이 불평등하다.
생득적으로 불평등하다. 그렇게 태어난 걸 뭐 어쩌라고? 할 수도 있다. 포인트는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 나서 이만큼 온거야. 너도 노력을 좀 하지 그랬니' 라는 태도가
틀렸다는 것이다. 운빨로 옥상 난간 아닌 운동장에서 태어났다면 옥상난간 밑에 매트리스를 놓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선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을 통해서 온 사회가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매트리스라도 깔아놓고 뭐 걸으라든지 용기를 내서 뛰라든지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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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열받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풀어내는 방식은 분노나 한탄이 아니라 유머와 쿨함이다. 데모하러 나가서 고통에 차 부르짖기만 하는게 아니라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며 즐겁게 보내다 오는 것과 같다.
책에 나오는 몇몇 수치는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빨 좋은 몇몇 사람들에게 말빨이라도 세워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