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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없을 때도 지구와 생물은 존재했다.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도 지구에는 아무 문제 없다. 기후위기와 핵폭만에서 우리 자신을 구하려면 인류 전체가 협력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가 그 일을 해낼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무언가 하긴 해야 한다. 우리 자신 말고는 누구도 우리를 구할 수 없으니까.
분야를 가리지 않고 통섭을 행하기 때문에 과학은 극적으로 발전했고 사회과학은 통섭을 거부하기 때문에 발전이 더디다는 말이다. 사회과학을 인문학으로 바꾸어도 이 진단은 그대로 들어맞는다. 과격하지만 옳은 지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월슨은 인문학을 사회생물학의 하위 분야로 통합하자고 하지 않았다. 인문학의 명제를 과학이 밝혀낸 생명과 인간에 관한 사실에 비추어 보고 과학의 토대 위에 인문학을 재구축하자고 했을 뿐이다. 나는 인문학자도 과학자처럼 환원과 통섭을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인문학과 생물학을 당장 통합하자거나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없애버리자고 외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도 통섭을 전제로 인문학을 생물학으로 환원해 보라는 권유라고 해석하는 게 합당하다. 인문학과 과학의 공통분모를 탐색해 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서 해가 될 일이 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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