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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ey님의 서재
  • 자기만의 집
  • 전경린
  • 15,750원 (10%870)
  • 2025-02-20
  • : 4,610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후기입니다.

이 책은 삶과 사랑, 그리고 성장에 관한 소설이다.

어느 날 호은의 대학교 앞에 아빠 헌영이 불쑥 나타나 재혼 후 생긴 딸 승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전처이자 호은의 엄마 윤선에게 맡기라는 말과 함께. 호은은 승지를 엄마의 집으로 데려가고, 당황한 엄마는 둘을 데리고 전남편 헌영을 찾으러 나선다.

아빠를 찾아 과거의 장소를 되짚으며 호은은 여러 가지 기억과 상처를 떠올린다. 이혼 전 사이좋던 부모님과의 행복한 추억, 비밀로 간직해야 했던 잊고 싶은 기억, 이혼 후 홀로 외갓집에 얹혀살며 느낀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과 원망, 그곳에서 경험한 첫사랑의 아픔.

윤선도 이혼 전의 기억과 이혼 후 딸 호은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을 떠올렸을 것이고, 승지 또한 8개월 전 투병 끝에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셋은 각자의 기억과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 다시 디뎌야 하는 현실이 끔찍해서 무릎이 오그라들 지경이면, 우린 충분히 불행한 것이리라. 승지도, 나도, 엄마도. 나는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렸다. 다른 아침으로 바뀔 때까지 이불 속에서 버티기라도 할 듯이.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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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은 심란함을 홀로 삭일 뿐 어린 승지에게 표현하지 않는다. 밥을 잘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히고 셋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승지에 대한 감정은 복잡하다. 엄마를 잃은 승지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홀로 지내야 했던 어린 딸 호은에 대한 미안함을 투영하고, 그러다 승지 그 자체에 정이 들게 된다.

호은은 낯선 곳에서 지내게 된 승지에게서 또래보다 일찍 철든 모습을 보며 어린 자신을 떠올린다. 승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승지에 대해 알아간다. 승지는 불편해하던 처음과 다르게 점차 적응하고 편해진다. 자기도 모르게 윤선을 엄마라 부를 만큼. 그렇다면 이곳은 승지에게도 '집'이 될 수 있겠다.

🔖나의 집을 가지고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은 초월적일 만큼 즐거운 일이다.
초판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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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출간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엄마의 집>이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17년이 흐른 지금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기만의 집>이 오히려 현실의 공기를 담은 이야기로 읽힌다는 의견들이 작가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혼자 있는 사람이 외롭다는 건,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오해야."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어서 외로운 거야."
p.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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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일까. <자기만의 집>에서 '집'이란 꼭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닌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온전히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다면, 엄마 윤선의 말처럼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게 공간이든 사람이든 관념이든 집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선의 집, 호은의 집, 승지의 집이 다 존재한다. 17년이 지나 바뀐 제목이 소설을 다시 완성한다.

🔖진실은 실의 표면에 드러나 있는데, 보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그 많은 진실들을 다 놓쳐버리고, 우린 무지와 오해 속을 살아간다.
p.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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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라는 낯선 존재가 주는 어색함이 윤선과 호은 두 모녀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아주 가까운 사이일수록 누군가의 얕은 표면만 보고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때론 거리가 필요하다. 윤선은 딸 호은의 외로움을, 호은은 엄마 윤선의 삶과 사랑을 헤아린다.

🔖아무도 역사 밖으로 도망칠 수는 없다. 역사와 무관한 듯 산다는 것은, 삶의 온실 세계로 도피해 자신을 최대한 소외시킨 비존재로 사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정말 가능할까. 화실에 박혀 살았던 엄마같이 얌전하고 평범한 여자도 시대를 비켜 가지 못했다. 시대는 최루탄 뒤집어쓴 한 남자를 느닷없이 화실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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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을 하던 헌영은 추적을 피해 윤선이 있던 화실로 뛰어든다. 그게 호은 부모의 첫 만남이었다.

둘은 세속적인 모든 것에 반하는 신념을 가지고 살지만 자식을 낳고 먹고살려면 세속에 반할 수 없었다. 헌영은 신념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지 못하고 그 속에서 계속 방황하고 윤선은 좋아하는 그림을 포기하고 작은 미술 학원을 열어 생계에 뛰어든다.

🔖에고로 인해 생이 점점 애잔해지고 애잔함으로 인해 에고가 점점 더 깊고 성숙해지는 듯하다. 그림을 버린 엄마의 에고는 허탈하다 못해 해탈할 지경일 텐데, 이제 엄만 무슨 의지로 사는 것일까.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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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은 엄마의 삶을 생각한다. 그림을 버린, 신념의 버린 엄마의 삶엔 뭐가 남았나. 그 삶은 괜찮을까.

🔖"넌, 타락이 뭐라고 생각해?"
"타락이란,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사는 거야."
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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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뒤 또 불쑥 찾아온 아빠가 승지를 데려간다. 떠나기 전 승지는 호은에게 타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윤선이 생계를 핑계로 진짜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타락한 것이라고. 그것은 비난이라기보단 걱정이다. 친적 아줌마라 부르며 정이 든 윤선에게 그림이 위로가 되었으면, 또 다른 집이 되었으면 하는.

🔖"맞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너무 사랑하게 되면 그것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며 살게 되겠지. 무섭다."
그러자 엄마가 말한 삶에의 복무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꿈에서 깬 뒤로 진심으로 세속적으로 산다는 의미도.
p.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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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린 승지도 언젠가는 본인이 타락할 것을 안다.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면 타락하는 것이라고. 그 대화에서 호은은 엄마의 타락에 자신을 향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다. 4년간 홀로 외가에서 지냈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엄마에게도 상처였음을 안다. 호은과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며 세상과 타협했음을 이해한다.

🔖"그만해라. 네가 아무리 애써도 엄마와 아빠를 다 이해할 수는 없어. 그냥, 그들의 인생이라 여기고 존중하는 예의를 지키렴. 결국은 그렇게 될 거니까."
그 말이 기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나이를 먹어야, 타인의 인생처럼 엄마 아빠와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그때에 이르면, 나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p.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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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눈 아빠와의 대화에서 호은은 부모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위로를 받는다.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하면 된다. 거리를 두고 그들을 바라보면 된다. 호은은 그럼으로써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빠 헌영 또한 이혼 후 거리를 두고서야 전처 윤선을 이해한다. "무엇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타락하는 건 나름대로 또 훌륭한 거야." 세상과의 타협, 타락과 동떨어진 것 같던 헌영은 그 바탕에 결국 사랑이 있음을 받아들인다. 본인 또한 진창 깨졌음을 인정한다.

🔖"호은아."
“...”
"미안하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이지만,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아빠는 사랑한다는 말을 사과로 대신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빠의 화법으로, 나도 미안해, 아빠, 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알았다, 오버."
p.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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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은 아빠에 대한 오랜 의심을 털어버린다. 아빠의 신념보다 자신이 항상 뒤에 있는 건 아닐까. 우리를 떠나 아빠는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찾은 걸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중한다.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확인한다.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난 이 따분한 방에 앉아 있어. 일요일 오후에 또 비가 내려. 난 하는 일 없이 그냥 서성이며 너를 기다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어찌된 일인지 왜 그런지 궁금해. 너는 어제 파랗고 파란 하늘을 이야기했어. 하지만 내가 볼 수 있는 건 노란 레몬 트리뿐, 고개를 위아래로 돌려봐도,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내게 보이는 건 단지 또 다른 레몬 트리뿐인걸..."
p.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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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은 한없이 외로워질 때면 부모님을 생각하고 의심했다. 부모님은 서로 사랑했을까. 나를 낳을 때 그들에게 사랑이 있었을까. 나를 왜 낳았을까. 그들은 왜 헤어졌나. 나를 사랑하는 게 맞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엄마에게 날 왜 낳은 거냐 묻고 싶어지면 그러지 않기 위해 눈물을 참으며 노래를 불렀다.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레몬 트리뿐"

🔖"호은아, 사람이 진짜 어른이 되면 말이야. 타인에게서 사랑을 바라지 않게 된단다."
"그럼, 사랑 없이 사는 거야?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데?"
농담이 섞인 내 말에도 엄마는 웃지 않았다.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너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 햇빛 속을 걸을 때나 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칠 때, 한밤중에 창문 밖에 걸린 반달을 볼 때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차 한 잔을 마시거나, 홀로 먹을 밥을 끓일 때에도, 아침 일곱 시와 오후 두 시와 밤 열한 시에, 사랑은 늘 거기 있어. 많은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깊은숨을 쉬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p.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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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은은 더 이상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다. 사랑이 늘 존재함을 받아들인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또한 존재한다. 호은은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비로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호은이 마지막까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건 엄마의 새로운 사랑이었다. 엄마의 남자친구란 존재는 빈 시간을 채워야 하는 엄마와 호은의 사이에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내심 그들의 사랑이 깨지길 바라기도 했다.

🔖"호은아. 사랑이든 삶이든, 난 그게 내 몫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 같아. 그 물은 내 존재로부터 솟아 나와 큰 강을 이루어. 누구에게나 혼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거야. 언젠가 아저씨와 내가 헤엄쳐 건너야 할 물을 다 건너고 햇살 따스한 기슭에 닿아 옷을 말리면 좋겠다. 그게 결혼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아. 넌 사랑의 결실이 뭐라고 생각하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흔히 말하듯 아이, 하나의 가정 같은 거 아닐까...
"사랑의 결실은 변태야. 변화를 겪고 달라지는 것. 계속 사랑하는 건 계속 달라져 가는 거야."
p.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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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은이 부모님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변화해 갔듯이 엄마도 사랑으로 달라져 갈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것이다.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그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 것이다.
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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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누워 레몬트리를 부르며 눈물을 참던 호은은 이젠 그 레몬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버리겠다 한다. 데이트를 나가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줄 정도로 성장한다. 아빠에게 아빠로서의 삶만이 있는 게 아님을 인정할 정도로 성장한다. 언니라 불리길 거부했지만 승지의 언니가 되기로 결심할 정도로 성장한다.

🔖한 줄기 저녁 바람이 청량한 샘물줄기처럼 나의 얼굴 위로 흘러갔다. 내 존재로부터 솟아나 흐르는 물결 속에 얼굴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결은 점점 더 깊고 큰 강물이 되겠지. 나만의 강물이...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엄마와 아빠와 아무리 무수히 헤어져도, 그건 삶일 뿐 이별이 아니라는 것을.
p.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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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 호은에게도 비로소 호은만의 강이 생긴다. 호은은 자기만의 강을 꿋꿋이 건널 것이다. 삶이 신 레몬 같은 절망을 줘도 레모네이드로 갈아버리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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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유튜브를 보며 딴짓을 했는데 Fool's Garden의 Lemon Tree 가사 뜻이 멜로디만큼 신나지 않다는 쇼츠를 봤다. 다시 책을 읽는데 신기하게도 호은이 기숙사 방에 누워 눈물을 참으며 레몬 트리를 부르는 장면이 딱 나왔다. 쇼츠를 보지 않았다면 호은이 부르는 노래가 저 노래인지 몰랐을 것이다. 신나는 멜로디에 슬픈 가사를 가진 저 노래가 호은의 당시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책에서 레몬이란 존재는 꽤 상징적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맨 앞장에 "If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란 문구가 있는 걸 발견했다. 레몬이 서양에서는 삶의 어려움을 암시하는데 저 격언도 꽤 유명하다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며 자신이 건널 강을 넓혀간다.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자기만의 집'을 찾으며, 동시에 서로의 집이 되어준다. 그 집 안에서 편히 쉬며 삶이 레몬을 던져줄 때 레모네이드로 만들 힘을 얻을 수 있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인생의 질문 앞에 섬세한 문장을 담은 이 성장기가 잠시라도 '자기만의 집'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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