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 이 책은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읽을만큼 가치있는 책이라고. 또한 이 책의 경우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우는 것은 마치 우리가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처음에는 이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책을 잡는 순간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빨려들더니 어느 날은 한참 책을 읽다 시계를 보니까 어느 새 새벽 4시. 그 순간 이 두터운 책 속에 빠져 흘려보낸 시간이 마치 종잇장처럼 얇아 보였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 책에는 그런 마법의 힘이 있는 듯하다. 속도감 넘치는 문장과 대화들, 마치 영화를 보듯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는 장면들로 책장 역시 그만큼 속도감 있게 넘어간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발자크의 [인간희극]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등장한다.구조조정과 폐업을 감행하려는 교활한 자본가들과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휩쓸려 들어가는 노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투쟁의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드라마는 마치 방대한 규모의 인간극장을 들여다보는 듯한 박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책에서 코스라는 이름의 공장지대를 둘러싼 투쟁의 드라마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여성인물들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겁많은 여성에서 씩씩하면서도 사려깊은 여성상으로 변해가는 달라스를 비롯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여성인물들은 종종 예전에 보았던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우리를 둘러싼 온갖 편견들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듯한 작가의 open mind는 인물들의 관계를 자유롭게 종횡하며 인간의 삶이 지닌 풍부한 육체성을 되살려낸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동성애, 혼외정사 등의 성적 욕망들 역시 그와 같은 삶의 풍부한 육체성을 구성하는 친교(親交)의 다채로운 방식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도덕적 편견에 사로잡힌 편협함보다는 삶의 다양한 양태들을 폭넓게 끌어안을 줄 아는 자유의 정신. 어쩌면 노동자들의 패배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진정한 승리자는 바로 그 자유의 정신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작가는 도덕적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는 달라스의 심리변화가 말해주듯, 인간이 도달해야 할 그 진정한 승리에 대한 희망을 여성들에게 걸고 있음이 분명하다. 감옥에 갇힌 루디를 위해 투쟁하는 달라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작가가 꿈꾸는 그 희망의 무게중심이 루디에게서 달라스로 옮겨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말, 혹은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이 지닌 의미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