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비 #눈가리고책읽는당 #구병모작가 #버드스트라이크 #나 #독서
보통 책을 읽을 때에는 책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고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없이 단지 단서만으로 책을 읽는 일은 사실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흥미가 들었다. 외관을 보고 책에 대한 기대치를 가지고 보통 50에서 시작해 100으로 만족감을 느끼며 독서를 끝낸다면, 이 책은 0으로 시작해서 100까지 도달해야하는 일이니까.
외국 작가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이름도 낯설고, 책을 둘러싼 배경 역시 다 낯설었다.
하지만 낯설음은 곧 호기심과 궁금함이 되고, 자꾸만 책장을 넘기게 했다.
소설 속에는 도시의 사람과, 고원지대의 익인들. 그리고 그들의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문명을 이용해 욕심을 키우는 도시의 사람들과, 욕심을 가지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익인들.
익인들의 날갯짓은 순수하다. 그 자체로 유토피아였다.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그래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을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는 어떤 어른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순수하지 못한 삶에서 나는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가, 에 대한 그런.
그리고 주목할만한 점은 여성 등장인물인 '루'인것 같다. '루' 는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약하지 않다.
루가 비오를 만나, 익인 사람들을 만나 진정한 '루'라는 인간 그 자체로 성장하는 모습은 이 책을 보면서 주시해야할 점이다.
도시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어서 조용히 살아야만 했다면 익인을 만나면서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목소리를 내고, 옳음과 옳지 않음에 대한 목소리를 분명히 한다.
그리고 도시 사람들과 익인과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루가 가지고 있는 용기있는 행동은 단순히 성장소설에서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는 클리셰적인 요소가 아니라, 진짜 오늘날 우리 여성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부분을 소개한다.
그녀는 비오를 만나기 위해 비행을 배운다. 타고난 약점에도 그녀는 그 약점을 이겨내고, 기필코 이겨낸다. 책 초반의 루를 생각하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벅찬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무모하다고 여길 수 있는 걸, 무모한 게 아니라 충분히 가능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루의 행동은, 그녀의 앞에 막힌 벽을 하나씩 깨부수는 것이었다.
다 커버렸다고 생각하는 건조한 일상에 잠시 순수한 익인들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바람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었다.나른한 토요일 오후,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좋을 거라고 자신한다.
다만 만나러 간다. 만나서 그다음에 어떻게 할 건지는 사실 루 자신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멱살 잡아 끌고 오나? 그게 가능할 리 없고 서로가 원하는 결론과도 거리가 멀 것이다.
레버를 당겼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순간 그를 만나고 싶다. 창공에서 무언가가 루를 끌어당기며 루는 거시 대답하지 않기 위해 날아갈 뿐이다.
네가 어디 있건, 어디서 날고 있든 간에 기다려 둬. 지금 곧 거기로 갈게.
고도계를 세팅하고 브레이크를 풀다가 루는 문득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어디든 날아가라. 내가 따라가면 되니까. 너무 멀리 너무 높이 날아간 까닭에 이 세상을 벗어났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격만큼 내가 쫓아갈 것이다.-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