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를 헤매이는 당신께
cornflowerblue 2023/03/0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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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께
- 오지은
- 14,220원 (10%↓
790) - 2023-02-28
: 496
편지 하나 하나를 읽을 때마다 답장을 하고싶어 마음이 법석이는 책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쌓아온 이 편지 꾸러미를 이렇게 한달음에 읽어버려도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하고싶은 말이 많아 멈추지 않고 읽었다. 물론 재미있고 잘 읽혀서 멈출 수 없던 것이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나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고싶지만, 정말로 좋은 작품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하고싶어진다고 느꼈다. 책도 마찬가지.
책장을 덮고나서 '아 재밌었다' 하는 작품도 물론 반갑지만, 그 책을 빌미로 내 이야기를 하고싶어지는 작품은 더 오래 책장에, 그리고 마음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께는 머리 맡에 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면 한 편씩 꺼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 귀해진 시대에, 누군가 나를 떠올리고 상상하며 차곡 차곡 쌓아둔 이야기를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뻐 마음이 가득차는 듯 했다.
작가님은 자주 '작은 마음'과 '생략되는 시간'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에게 굳이 말하지 않고 어딘가에 전시하지 않는 마음, 결과에 다다르기 전까지의 별로 특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시간들 같은 것. 삭제되는 것과 남겨지는 것, 흘려보낼 것과 붙잡을 것. 그것들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만 알 수 없다.
하지만 '미적지근한 마음도 마음이라는 것. 차가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시간도 시간이라는 것. 흐린 눈에 보이는 뿌연 풍경도 풍경이라는 것.'(p.18) 이라고, '그렇다면 괜찮을지도 모른다'(p.19) 고 말해준다.
'잘 정돈된 정원'을 자랑하기보단, '머릿속의 미로'를 꺼내보이며 '헤매이는 사람'을 반가이 맞아주는 이 책을, 나는 반가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저도요', '맞아요!' 하며 맞장구 치느라 바쁜 헤맴러 여기에 있어요⋯
그런 갈 곳없는 작은 마음들을 기꺼이 나누어주며, '당신'이 가진 그런 마음들도 썩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책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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