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페친님들께서 추천하신 책이라 염두에 뒀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23년말에 출간되어서 5쇄를 찍을 정도로 잔잔한 반향을 불러온 책이었더군요.
성인이 될 때까지 기초생활수급자(2023년말 기준 전국민의 4.9%)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 가족사를 서술하며, 당시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전해주는 시나 소설의 문장들을 인용하는데, 공들인 편집 덕분에 메시지가 더 깊이 전달되네요.저자 안온님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오면서 많은 물건과 경험들을 포기해야했고, 당사자가 다 알아보고 신청하는 각종 복지제도와 혜택들에 대해서 아쉬워하기도 합니다.하지만, 책을 쭉 보니 '일인칭 가난'의 힘듬은 기초생활수급자 시절이 아니라,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지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독립생계를 꾸리면서 스무살도 되기 전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직접 벌고, 그 와중에 알콜중독자인 부친과 장애인인 모친까지 챙기면서 살아온 기간에 대한 서술이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대학 장학금 수여 조건인 학점을 유지하면서, 과외를 하고, 주4회 12시간씩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서빙과 주방일을 해온, 그러다 학원강사일까지 하면서 잠잘 시간과 과제와 시험공부할 시간을 배분해야하는 고난의 행군이 길어지면서 건강하던 20대의 신체가 어떻게 망가져가는지를 서술해주는데, 26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쉰다고 쉽사리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질병의 이름들이 왜 계속 나오는지요.제가 꾸준히 보고 있는 카카오웹툰 '평범한 자매'님의 <반지하 셋방>의 작가님의 경험과 겹쳐보이는 부분들도 보이더군요. 자살생존자(자살자의 유가족)들이 겪는, 족쇄와 같은 심리적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도 조금 알게 되었고요.미미한 금액이지만 저자 인세에 기여한 보람을 느낀 책구매였고, 이 책을 내신 저자 안온님의 마음이 치유되고, 생활도 좀 더 안정되었길 기원합니다. --------------------------------------9~10쪽타인의 사정을 세심히 헤아리기엔 살아내느라 시간과 여력이 없었고, 빈곤 관련 제도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조망하고 비평하기엔 내가 수급자여서 경험한 '배려'와 '낙인'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있을 수 없어서, 그래서 이 책의 주어는 '가난'이 아니라 '나'다.(중략)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더 쓰이고 더 팔려야 할 것은 가난이다.116쪽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22쪽사실 진짜 부족한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이었다. 다음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질 좋은 식사를 할 시간, 질 좋은 수면을 할 시간, 질 좋은 대인관계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시간이 없었고, 미래를 계획할 시간도 없었다. (중략)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도 돈과 시간은 필수다. 내가 각종 행사를 거절하는 상용구는 하나였다. 시간이 없어서요. 이 말은 곧 돈이 없어서요, 와 동의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