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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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별님의 서재
  • 싸울게요, 안 죽었으니까
  • 김진주
  • 16,200원 (10%900)
  • 2024-02-28
  • : 3,411

이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서 구매했습니다. 얼룩소는 올해 1월 15일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얼룩소의 실험과 함께 이 책을 출간한 출판사라는 사실은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2025년 제 첫 번째 올해의 책이고, 두루두루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제 주변의 변호사님들도요.

회복적 사법에 대한 책들은 몇 권 읽었지만, 범죄피해자가 겪는 PTSD를 비롯한 정서적, 현실적 어려움들을 알려주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겪는 형사사법시스템의 불합리함과 대처방법에 대한 책은 처음입니다.

성실한 청년이었던 '부산 돌려차기남 사건'의 범죄피해자인 저자가 사건 당일인 2022. 5. 22.부터 수사와 1년 4개월의 가해자에 대한 형사재판의 확정까지, 범죄피해자로 겪은 대한민국의 수사와 형사사법시스템을 문제점들을 담담히 서술합니다. 읽으면서, 제가 강력범죄 피해자가 아니었던 게 참 운이 좋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구형과 선고를 구별하지도 못했던 저자가 항소심에서 했던 피해자 최후진술 발언, 국회 법사위 의원들 앞에서 형사사건 피해자에 대한지원체계를 어떻게 개선해야할지 일련의 정책을 주문하는 부분을 보면서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한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로스쿨 입학 직전에 법제사나 법철학 책을 읽긴 했지만, 공부하면서는 공부량을 채우기 급급해서 고민없이 받아들이고 외우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책 중간에 저자와의 대담자로 등장하시는 법률사무소 법과 치유의 오지원 대표변호사님 말씀들을 들으면서 수사의 기밀성과 피해자의 알 권리의 균형,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여권과 진술의 오염우려 사이의 긴장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자의 문제제기 이후로 형사사법체계의 범죄피해자 구호 및 보호제도들이 그 전에 비해 그나마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이어서 다행입니다.

부산 돌려차기남이 만기출소하는 20년 후에는 범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출소일을 데스노스에 적힌 보복살인 예고일처럼 두려워하며 살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저자 분은 지금 본업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다른 범죄피해자들 역시 두려움에 떨지 않는 세상이 오도록 범죄피해자 지원 모임을 개설해서 그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계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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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이 책에는 뉴스에선 다 담을 수 없었던 피해자로서의 이야기를 낱낱이 적었다. 어느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아쉽게도 범죄를 피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린 모두 예비 피해자다. 대신 책을 읽고 나면 범죄피해에 잘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백신을 맞는 것처럼 이 책을 예방주사처럼 여기며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아끼는 지인들에게도 추천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네가 꼭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

142쪽

알고 보니 내 가해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게 두 번이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두 번째였고, 성매매 매수남들을 대상으로 폭행, 협박, 갈취를 해서 재판에 불려간 <그것이 알고 싶다> 889회, '비열한 거리 2부-범죄소년'이 첫 번째였다. 문신을 보여주며 모텔 사장님들에게 윽박지르는 모습은 거의 복사 붙여넣기 수준이었다. 초범이라고, 촉법이라고 감형된 남자아이는 결국 전과 18범이 됐다.

264쪽

(저자가 개설한 대한민국 범죄피해자 커뮤니티의) 한 스태프는 엄청나게 열성적이었는데 자신도 범죄피해자라고 했다. 나보다 선배였다. 재판을 이미 끝내고 민사까지 끝냈다고 한다. 그래서 내심 부러웠는데 오히려 더 힘들다고 했다. 보복 때문에 힘든 걸까 했는데 민사때문이었다. 민사를 승소했는데 왜 힘들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는데 변호사의 성공보수 때문이었다. 가해자에게서 민사를 승소했는데, 그 승소한 금액만큼의 몇 퍼센트를 변호사에게 줘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가해자가 개털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해자한테 받은 돈이 없더라도 채권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돈을 줘야 했다. 가해자에게 받은 게 하나도 없는데 되려 성공보수 때문에 투잡을 뛰고 있었다.
(중략)
심지어 이 피해자는 소득이 높아 범죄피해를 지원받지도 못한다고 했다. 소득이 높으면 범죄피해를 안 당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 피해자는 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변호사 성공보수를 갚는 데 쓰고 있었다.

270쪽

지금은 범죄피해자 관련 기금을 벌금의 8퍼센트로 징수해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저히 적은 액수이다.

292쪽 저자가 가해자에게 쓴 '회복편지' 부분

"꼭 20년이 지나고 출소해서 갚지 않은 검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구상권을 열심히 갚길 바라. 다시 범죄 저지르면 내가 또 찾아갈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죽더라도 나 같은 피해자들이 널 쫓아다닐 거야. 20년이 지나면 많은 게 바뀌어 있을 거야. <쇼생크 탈출>의 브룩스 같은 결말을 짓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내가 너무 면회를 가고 싶었는데 다들 말려서 이 책으로 대신하는 거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이 세상에서 네가 살아 있으면 하는 유일한 존재이니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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