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어느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 속 수아가 내뱉는 대사처럼, 나는 밤이나 낮이나 밤이라던. 그 암흑 속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 초반에는 안내견 슬기와 함께 살아가는 수아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각장애인이 흔히 겪을 수 있는 어려움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향하는,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수 없으면 집에 쳐박혀 있으라는 냉혹한 세상을 영화 속에 내던져준다.
수아는 경찰대를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사고로 동생과 시력을 잃었다. 자신이 채운 수갑때문에 동생을 잃었다는 죄책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수아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비오는 늦은 밤, 수아는 혼자 택시를 탄다. 시력대신 청력, 촉감, 그리고 느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수아는 그 택시안에서 뺑소니 사고를 느끼고 찰나의 타이밍으로 뺑소니 현장에서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 증언을 한다.

수아에겐 시력이 없는 대신에 그 시력의 부재를 대신할 만한 감각이 있다. 키는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걸로 느낄 수 있고, 그녀가 앉았던 시트의 촉감, 맡았던 향, 그리고 느낌 등, 수아는 형사가 놀랄 정도로 자세하고 섬세한 현장을 묘사한다. 반면, 그냥 우연히 뺑소니 사고를 지나쳐 보았다가 현상금을 노려 뺑소니 사고의 증언을 하는 기섭은 자신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며 수아가 말한 모범택시라는 사실을 아예 부정해버린다. 그리고 기섭은 누군가에게 쫓기게 되고 영화는 보지 못하는 수아와 두 눈을 똑똑히 볼 수 있는 범인과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영화는 수아가 볼 수 있는 세상을 검은 어둠에서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그 때의 시각적 감각을 되살려) 스크린 속에 담아놓았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세상은 기억속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범인을 꽁꽁 싸매놓는 다른 영화와는 달리 범인과 수아의 정면대결은 숨이 막힐 듯하다. 시각장애인이라는 그녀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자기기들 그리고 친구이자 동생이자 수아의 눈이 되는 안내견 슬기. 이 두가지의 장치는 범인이 수아를 쫓고 도망치는 그 관계속에서 더욱 더 빛이 난다.

자신이 좋아하면 모두 다 떠난다는 수아의 이야기에서, 그리고 수아가 시력을 잃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기섭은 조금이나마 수아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수아 또한 범인과의 숨막히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 때문에 세상을 떠난 동생처럼 기섭을 만들지 않으려고 그녀가 가진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영화 블라인드는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인 수아가 주인공이 되면서 진부할 수 있는 스토리들을 새롭게 꺼내놓았다. 그리고 아주 섬세했던 영화의 장면장면은 개연성을 가지고 혹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연쇄살인범과 시각장애인의 대결. 그리고 연쇄살인범과 시각장애인의 일상.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아, 우는 장면만 빼고) 김하늘과 늘 어리게만 보았지만 이제는 좀 든든하게 보인 유승호, 긴장감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던 조형사, 그리고 섬뜩할 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 연쇄살인범의 연기는 그 탄탄한 스토리 위에서 스크린으로 발산되었다.
부천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시사회에서까지 호평을 받은 영화라. 게다가 개인적으로 참 오랫만에 영화관에서 보게된 영화라 엄청난 기대를 하고 갔다. 스릴러면 너무 좋아요!를 외치는 나에게 기대에 만족할 만한 영화이자, 그리고 시간을 볼 새 없이 빠져드는 스토리와 긴감은 오랫만에 느껴보는 것이라 참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