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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일님의 서재
  • 벨 훅스, 당신과 나의 공동체
  • 벨 훅스
  • 22,000원 (660)
  • 2022-06-30
  • : 644
희망과 공동체 이야기,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읽으며, 책 읽는 내내 작년에 고인이 된 벨 훅스의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여성 지식인으로 사는 일은 어땠을까. 지상의 70여 년은 지독히 인종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였다. 자기를 위축시키고 납작하게 만들려는 다층적인 억압에 맞서, 벨 훅스의 생각은 그만큼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너무 피곤했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벨 훅스의 목소리는 힘차고 설득력 있지만, 그 차분한 논지 전개에서 고단함이 먼저 느껴졌다. 흑인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을 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의 생각은 강의실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함께 희망을 얘기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린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쉽지 않을 그 과정에 15년 넘게 교육의 문제에 집중했던 벨 훅스의 이 책은 따뜻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흑인 페미니스트로 알고 있던 벨 훅스가 이렇게나 가르치고 배우는 공동체에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나를 비롯한 다른 많은 차별금지법 세대들은 인종차별이란 무지하고 보수주의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로 여기도록 사회화되었다. 인종차별은 주로 과거의 일이고, 백인성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어왔다....지금 여기 인종차별주의라는 유령을 기르는 것, 정치적 신념과 성적 지향이 무엇이든지간에 백인들은 백인우월주의적 사회구조에서 이익을 얻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55쪽

유령과 싸우는 건 얼마나 더 어렵고 고단한 일인가. 항상 지금은 나아지지 않았냐고, 언제까지 불평불만이냐고, 옛날같으면 넌 감옥에 갔을 거라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윽박지른다.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유령은 저항의 목소리를 거두도록 그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배회한다. 그 유령 앞에서 한두 번 고꾸라지고 나면 기운 차리기가 힘들다. 벨 훅스의 책 곳곳에서도 관계를 맺었던 다양한 사람들의 뒤에 서 있는 유령의 인종차별적 면면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훅스가 싸우고 있는 문화는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다. 이런 사회에서 식민성을 가진 비백인이 빈곤한 상태로 가부장의 억압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중첩되는 모순 속에서 한 개인은 옴싹달싹 못한 채 전방위적인 자기비하와 열등감 강요, 미래를 꿈꿀 수 없음에 시달려야 한다. 이들이 억지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상도 그다지 아름답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벨 훅스의 고민도 전방위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제국주의적 백인우월주의적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문화"에서 이제 막 사회시스템을 내면화하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합법적인 경멸과 혐오, 지배와 약탈을 주입시킬 뿐이다. 벨 훅스가 교육과 공동체를 더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벽 앞에서 교육이나 공동체를 꿈꾸는 건, 섬김과 돌봄을 얘기하는 건 너무 나약한 자기만족적 행위로 보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소리치고 물리적으로 저항하고 적에게 작은 피해라도 입을 수 있는 일도 하나의 수단이지만, 결국 저항도 모순을 깨닫는 일부터 시작된다. 교육의 그 첫발을 뗄 때부터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 일이다. 혹시나 지금 처한 차별의 현장에서 상처받았다면 한 발 물러서 여기 벨 훅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시길. 이토록 섬세하고 깊게 교육함과 교육받음을 고민한 사람에게 기대 이상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교육하는, 혹은 교육받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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